그림에는 문외한이지만 이따금 미술관을 찾는다. 3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고요’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은 돈을 들인 만큼만 누릴 수 있는 법. 3000원어치 고요는 기껏해야 한 시간이면 막을 내린다. 그렇게 다시 거리로 나서면 온갖 소음이 기다렸다는 듯 나를 덮친다. 도로를 질주하는 오토바이 굉음, 휴대폰 매장 앞 스피커에서 터져나오는 유행가, 깔깔거리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한데 섞인 도시를 걷다 보면 속세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그러나 나는 스님더러 목탁 좀 살살 치라고 역정을 부리고도 남을 인간이므로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궁리 끝에 공유 오피스를 결제했다. 일에 집중하려는 성인이 모인 장소이니 소음 따위는 발붙일 틈이 없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네엣, 네엡. 앗, 혹시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어렵겠지만서도, 간밧데미마쓰!” “땡큐, 땡큐 쏘 머치!” 끝날 줄 모르고 이어지는 다국적 미팅 사이로 “프엣취!”, “이힛취!”, “헤에… 헤에… 헤에에에엑, 큼!” 하는 아저씨들의 기침이 폭탄처럼 무자비하게 터질 줄이야. 게다가 기계식 키보드를 쓰는 사람은 또 어찌나 많은지. “오도도독, 탁! 오도도도독, 탁탁!” 키보드가 부서져라 두드려대는 사람들을 향해 이럴 거면 차라리 속기사로 전향하는 편이 낫지 않겠냐고 권유하고 싶은 지경이었다.
소음 유발자들을 향한 분노가 가득했던 어느 날, 도저히 일에 집중할 수 없었던 나는 신경질적으로 짐을 싸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곧장 침대에 드러누워 임하룡과의 에피소드를 풀어놓는 신동엽의 유튜브를 보며 머리를 식혔다. 임하룡은 자그마한 소리만 들려도 공이 맞지 않는다는 핑계로 자신의 부족한 골프 실력을 덮으려 한단다. 지저귀는 새소리와 사람들의 대화 소리는 물론 멀리에서 아득하게 들려오는 음악마저 탓하는데 심지어는 하수구에서 물이 졸졸졸 흐르는 소리마저 책잡았다는 말에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자연히 들려오는 소리를 원망하며 일손을 놓아버리는 내 모습이 그와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코미디는 코미디언에게 맡기고 나는 이제 그만 본업으로 돌아오련다. 공유 오피스는 어제와 같은 소음으로 가득하지만, 헤드폰 블루투스 연결을 깜빡한 누군가의 노트북에서 흘러나오는 축구 중계 소리에 정신이 다 혼미하지만, 거기에 나의 불평까지 보태 속을 시끄럽게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소란한 마음을 가다듬고 나니 “오도도독, 네엡, 프엣취, 탁! 넵넵, 혼또니, 오도도도독, 탁탁!” 다 함께 만들어내는 소리가 사회인 밴드의 합주처럼 제법 흥겹게 들려왔다. 나라고 이 잔치에 빠질쏘냐. 기회를 노리던 나는 적당한 틈을 타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자, 기대하시라. 키보드, 솔로!

이주윤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린다.어쩌다 보니 맞춤법을 주제로 한 책을 여러 권 출간했다. 국어사전 속에서 온종일 헤매는 일이 싫지 않은 걸 보면 아무래도 체질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