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업의 위기는 인류의 위기다. 지구온난화로 지구촌의 땅은 사막화돼가고 인구는 계속 늘어나 식량난을 예고하고 있다. 반면 농촌의 고령화 속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귀농·귀촌하는 사람들에게 의존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위기의 농업 현장,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스마트팜(Smart Farm)이 희망의 불씨가 되고 있다.
김제시 국내 첫 스마트팜 혁신밸리 건립
미래의 농업에서 성장잠재력이 가장 높은 분야는 스마트팜이다. 스마트팜은 ICT를 접목해 작업 효율을 높인 ‘지능형 농장’이다. 비닐하우스나 유리온실, 축사 등에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첨단 과학기술을 적용, 자동으로 온도·습도·햇빛·이산화탄소·토양 등을 측정·분석해 최적의 생육환경을 만들고 언제 어디서든 농장을 실시간으로 관리하는 게 핵심이다.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기기로 원격 관리도 가능하다.
최근 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마다 스마트팜에 대한 관심이 크다. 전통적인 농법에서 벗어나 과학적 농법으로 지역 산업을 살리기 위해서다. 특히 전북 김제평야의 광활한 들녘이 스마트팜 혁신밸리로 변신 중이다. 스마트팜은 정부의 8대 혁신성장 핵심 과제 중 하나다.
1970년대만 해도 김제는 인구 20만 명이 넘었고 최대 곡창지대로 명성을 떨쳤다. 그러다 산업화에 밀려 인구 8만 명의 중소도시로 전락했다. 지금은 스마트팜과 종자·종묘산업으로 농업 분야의 르네상스를 열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농사를 지을 토지 면적이 넓지 않아 귀농한 청년들이 빠르게 자리 잡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해 김제시는 총 963억 원을 투입해 2021년 말 백구면 월봉리 일대 21.3헥타르(㏊) 부지에 스마트팜 혁신밸리를 건립했다. 청년창업보육센터, 임대형 스마트팜, 실증단지, 빅데이터센터 등 네 개의 시설이 핵심이다.
청년창업보육센터는 스마트팜을 이용해 농사를 짓고자 하는 예비 청년 농업인을 길러내는 교육시설이다. 매년 전국에서 50여 명의 청년 교육생(만 18∼39세)을 선발해 20개월 동안 스마트팜에 특화된 이론과 실습 등을 국비로 진행한다.
교육 이수자들에게는 저렴한 임대형 스마트팜을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스마트팜 설치 비용이 매우 고가이기 때문이다. 예비 청년 농업인이 초기 투자에 대한 부담 없이 최장 3년간 임차해 재배 경험과 경영 노하우를 쌓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현재 10개 팀, 30명 안팎의 청년 농부들이 입주해 토마토, 딸기, 상추 등을 재배하고 있다. 올해 1월 청년창업보육센터에 따르면 이들의 연매출은 15억 원 안팎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생산된 농산물은 대형마트와 공판장 등을 통해 판매된다.
농업기술진흥원이 운영하는 실증단지에는 1.6㏊ 면적에 유리온실 20개가 설치돼 있다. 이곳에 21개 기업이 입주해 농업용 로봇과 드론, 신품종, 기능성 물질 등을 스마트팜에 적용하면서 검증 작업을 하고 있다. 이곳에 입주한 청년 농업인의 경우 이런 혜택을 누리면서 영농의 꿈을 위한 다양한 도전을 할 수 있다. 지자체로서는 청년들의 활동 공간을 마련해줌으로써 인구 유입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스마트팜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농장이다. 따라서 빅데이터센터에서는 혁신밸리 안에서 집계된 데이터를 활용해 최적의 생육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이는 농산물의 품질 향상은 물론 단위 면적당 생산량도 크게 늘릴 수 있어 고부가가치 창출로 이어진다. 또 빅데이터는 청년 농부들의 시행착오를 줄여줄 수 있다. 김제시는 현재 선진국의 80% 수준에 머물러 있는 국내 스마트팜 관련 기술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선두주자는 네덜란드, 농사 99%가 스마트팜
스마트팜의 선두주자는 단연 네덜란드와 일본이다. 네덜란드는 다양한 ICT를 접목해 전 세계의 스마트팜 시장을 이끌고 있다. ‘농업의 95%는 과학기술이고 나머지 5%만이 노동력’이라고 믿는 이 나라는 전체 온실의 99%가 유리온실이다. 이미 1977년부터 온실을 컴퓨터로 관리하는 복합 환경제어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온도, 습도, 일사량, 이산화탄소 등을 조절하는 ICT와 에너지 관리 및 재해방지기술을 결합한 시스템이다. 네덜란드에서 소비되는 토마토와 파프리카의 80%가 이 시스템을 갖춘 식물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농업에 ICT를 융합한 기술 개발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일본은 최근 농업 종사자의 고령화와 후계자 부족 문제로 휴경지 증가 및 농가소득 감소가 뚜렷한 상황이다. 이에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모든 농가에 ICT 보급을 목표로 하는 스마트팜 종합패키지 시책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에서 스마트팜이 가장 활발히 진행되는 분야는 식물공장이다. 식물공장은 노지에 비해 위생적이고 세균 수가 적어 소비자 선호도가 높다. 또 자연재해 영향 없이 수확량이 일정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일본에서는 스마트팜이 농업 종사자나 청년층에게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스마트팜의 단점은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생산비를 대폭 줄일 수 있어 전망이 밝다. 세계의 스마트팜 시장 규모는 2018년 75억 달러에서 2023년 135억 달러에 이를 만큼 빠르게 성장 중이다. 국내 스마트팜 면적도 2017년 4010㏊에서 2022년 7000㏊로 늘어났다. 따라서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려면 전문인력 양성과 체계적인 지원시스템을 서둘러야 한다.
스파트팜은 지금의 농업과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으로 전개될 것이다. 잠재력이 큰 ICT 농장은 더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청년들에게 훌륭한 일터를 줄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지구온난화가 농업을 미래 최고의 직업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김형자
<Newton> 편집장 출신으로 과학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 과학 칼럼니스트. <구멍으로 발견한 과학>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