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6월 9일 서울 서초구 세종학당재단에서 열린 2021년 세종학당 신규지정 발표 행사를 마치고 참석자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문화체육관광부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7월 2일 195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우리나라의 지위를 ‘개발도상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했다. 1964년 UNCTAD 창설 이래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가 변경된 나라는 우리나라가 처음이다. 국민적 자긍심을 가질 만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지위 격상은 급성장한 경제 규모와 국제적 위상 제고 등이 반영된 결과로 평가된다. 우리나라는 경제와 외교 등 국제사회에서 사실상 선진국으로 분류됐다. 이런 점에서 이번 지위 변경은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하게 선진국으로 인정받았다는 걸 의미한다.
선진국 지위 격상에 따라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리더십의 정립과 함께 우리나라의 역할과 책임도 그만큼 커졌다. 개도국에 경제 지원과 협력을 지금보다 강화해야 하고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가교 역할도 더 많이 요구받을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얻는 유·무형적 혜택과 권리도 무시할 수 없다. 국내적으로도 선진국 위상에 걸맞게 국민의 삶의 질이 경제·사회적으로 두루 향상되도록 정부는 노력을 다한다는 방침이다. 바야흐로 선진국의 길로 접어든 대한민국. 그에 따른 새로운 리더십 정립과 국제적 책임 및 역할을 시리즈로 짚어본다.
선진국 리더십 위한 정부 정책
전 세계 186개 재외공관장들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7월 14일 ‘우리의 국제 위상에 걸맞은 선진외교를 위한 공관의 역할’을 주제로 화상회의를 했다. 정 장관은 최근 유엔무역개발회의에서 우리나라의 지위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바뀌는 등 높아진 국제 위상에 걸맞은 선진외교를 펼치는 데 재외공관의 역할을 당부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 세계 평화와 공동 번영을 위한 국제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는 선도적 역할, 탄소중립과 과학기술 등 새로운 과제에 대한 능동적 대응을 위해 본부와 공관이 유기적으로 협력할 것을 강조했다.
국제 무대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기대와 역할이 매우 높아진 만큼 책임도 늘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면서 유연한 외교로 높아진 우리의 위상을 지속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외교적 과제가 됐다.
이날 재외공관장들은 외교 활동을 수행하면서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과 평가가 높아졌음을 체감하고 있다며 국제 평가를 바탕으로 펼칠 선진외교의 추진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특히 신남방정책과 같은 대표 외교 전략 마련, 기후변화와 보건안보 등 글로벌 현안 해결을 위한 적극적 기여와 이를 통한 국익 증진, 기업 진출 지원 및 재외국민의 안전 확보 등을 강조했다.
오영주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장은 “이번 선진국 지위 격상은 우리나라의 국제 위상과 역할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와 기대가 한층 높아진 시점에 이뤄진 결정이기에 의미가 더 크다. 이제는 명실상부한 선진국 그룹의 일원으로서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고민해야 할 때”라며 “한때 원조받던 나라였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원조는 다른 선진국과 차별적 지향성을 가져야 한다. 개발도상국의 어려운 사정을 경험한 우리나라가 그들의 성공 스토리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원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가 얻게 될 국제 위상과 평가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선진 한국의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적개발원조 규모 2030년까지 두 배 이상 확대
정부는 공적개발원조(ODA)에서 선진국과 개도국을 잇는 가교 역할을 넘어 국제사회의 리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2030년까지 총 ODA 규모의 두 배 이상 확대를 목표로 한다. 2022년 ODA 예산은 2021년보다 12.3% 늘어난 4조 1680억 원으로 편성했다. 정부는 7월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김부겸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38차 국제개발협력위원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2022년 국제개발협력 종합시행계획’ 등을 의결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보건 위기를 고려해 2021년 3359억 원이었던 보건 분야 지원액을 4584억 원으로 36.5% 늘렸다. 인도적 지원 분야 규모도 1930억 원에서 2916억 원으로 51.1% 대폭 증액했다. 여기에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등 정상외교 성과를 토대로 한 코백스 선구매공약매커니즘(COVAX AMC) 공여 1억 달러가 포함됐다. 이에 따라 전체 ODA 예산 가운데 보건 분야가 13.4%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이어 교통(13.1%), 교육(9.8%), 인도적 지원(8.4%) 순이다.
또 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현재 약 20%인 기후변화와 환경 분야 ODA 비중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 수준(28.1%)으로 확대하기 위한 ‘그린 뉴딜 ODA 추진전략’도 의결했다. 이 전략에 따라 2025년까지 기후변화와 환경 분야 ODA 수준을 대폭 확대하고 개발도상국의 수요를 토대로 국가별로 맞춤형 프로젝트를 발굴, 프로그램 차관이나 정책 상담을 진행하기로 했다. 특히 개도국의 수요가 크고 한국에 강점이 있는 그린 에너지, 친환경 이동 수단(모빌리티)에 지원을 집중할 계획이다. 또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ODA 추진 체계를 정비해 사업간 연계·통합을 활성화하기로 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이날 회의에서 “우리가 강점을 보유한 보건·의료, 에너지,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의 역량을 바탕으로 보건 위기 종식, 녹색전환, 디지털 전환 등 글로벌 현안을 극복하는 데 주도적으로 나서겠다”며 “대한민국의 국가 위상에 걸맞은 대한민국 ODA의 참모습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우리나라는 유엔(UN)에 가입한 1991년 개도국의 빈곤 감소와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주기 위해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설립했다. 출범 당시 174억 원이었던 KOICA 예산은 30년 만인 2021년 9722억 원으로 50배 이상 늘었고 해외 사무소도 6곳에서 44개국으로 증가했다. 사업 유형 또한 인력 파견 위주 사업에서 프로젝트, 연수, 인도적 지원, 혁신적 개발협력사업 등 여러 방면으로 확대하며 양적·질적 성장을 일궈왔다.
손혁상 KOICA 이사장은 “30년 동안 KOICA와 대한민국 개발협력의 성장은 괄목할 만하지만 지금의 위치에 안주하지 않고 선도적 글로벌 개발협력기관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노력을 이어나갈 것”이라며 “이를 위해 그린 뉴딜 ODA를 선도적으로 추진해 기후변화와 환경 ODA가 차지하는 비중을 늘리고 기후변화 대응 사업을 적극적으로 발굴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엔인권이사회, 한국 주도 결의안 채택
우리나라는 인권과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국제 논의를 선도하고 있다. 7월 13일(현지 시간) 열린 제47차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우리나라가 주도해 상정한 ‘신기술과 인권’ 결의안이 채택됐다. 결의안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오스트리아와 덴마크, 브라질, 싱가포르, 모로코가 핵심 제안국으로, 일본과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이스라엘 등 65개국 이상 공동 제안국으로 참여했다.
이번 결의는 2019년 인권이사회에서 처음 채택된 결의의 후속으로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디지털 신기술이 인권 보호와 증진에 미치는 영향을 전체적으로 조명했다. 특히 신기술에 대한 인권 기반 접근의 중요성, 다양한 행위자 간 협력 필요성, 취약 계층을 포함한 코로나19 상황에서 포용적 회복을 위한 신기술의 역할 등을 다뤘다.
2013년 우리 주도로 인권이사회에 최초로 상정한 ‘지방정부와 인권’ 결의를 채택시킨 데 이어 2019년에는 ‘신기술과 인권’ 결의도 주도적으로 통과시킴으로써 인권 분야 다자 무대에서 우리 위상을 더욱 높여 나가고 있다. 정부는 “2019년에 이어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신기술과 인권 결의의 상정과 채택을 주도함으로써 국제사회 내 인권 문제의 외연 확장에 기여하고 ICT 강국으로서 신기술과 인권 관련 논의를 주도하는 국가로서 위상을 확고히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전했다.
APEC과 함께 성장한 경제외교 리더십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비격식 정상회의가 7월 16일 화상으로 열렸다. 2021년은 11월에 개최되는 정상회의와 별도로 정상들이 한 번 더 모인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보건 위기, 경제 침체, 기후 위기의 삼중고에 처한 국제사회가 위기 극복 해법을 찾기 위해서다.
이날 김부겸 국무총리를 비롯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호주, 캐나다, 베트남 등 21개 APEC 회원국 정상들은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백신의 생산 확대와 공정한 접근, 글로벌 경기회복을 목표로 한 협력을 논의했다.
1989년 창설된 APEC은 초기에 무역투자 자유화와 경제협력에 매진하다 기후변화, 디지털 혁신 등 다양한 국제 현안을 다루는 회의체로 성장했다. APEC의 외연 확장은 우리 경제외교의 외연 확장과 맥을 같이한다. 현재 경제외교는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이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같은 통상협정을 넘어 한국판 뉴딜과 같은 주요 경제정책과 연계해 신성장 동력 발굴을 위한 국제 협치(거버넌스) 구축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최종문 외교부 제2차관은 “아시아태평양지역 경제회복을 위해 APEC 내 정책 공조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우리나라의 10대 수출국 가운데 8개국이 APEC 회원국이다. 우리 경제에 APEC 협력이 중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2025년 APEC 정상회의를 개최한다. 2005년 부산 APEC 이후 20년 만이다.
세종학당 지정 열기… 한류 재확인
국제 위상만큼 우리 문화에 대한 세계인의 높은 관심은 2021년 신규 세종학당 지정 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해외에서 한국어와 우리 문화를 알리는 세종학당은 현재 코로나19로 비대면 강의를 진행할 수밖에 없는데도 모두 43개국 85개 기관이 신청했다. 이는 코로나19가 나타나기 전이었던 2019년에 견줘 약 60% 증가한 것이다.
세종학당이 처음 문을 열었던 2007년에는 3개국 13곳이었고 수강생은 740명이었다. 2020년 76개국 213곳으로 늘어났고 수강생은 7만 6528명으로 2007년의 100배가 넘는다.
강현화 세종학당재단 이사장은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멈춘 상황에서도 세종학당 신규 지정에 큰 관심을 보여 깜짝 놀랐다. 해외에서 한국어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엄청나다”며 “우리 문화가 가진 콘텐츠의 힘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2021년 18개국에서 26곳의 세종학당이 새로 지정되면서 82개국 234곳으로 늘어났다. 모로코와 탄자니아, 볼리비아, 슬로베니아, 네팔 등 5개국에는 처음으로 세종학당이 들어선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세종학당재단은 2022년까지 전 세계 세종학당을 270곳으로 늘리고 맞춤형 현지화 교원 파견 확대와 현지 교원 양성 과정 운영, 세종학당 문화 강좌를 통한 문화 교류 활성화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원낙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