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해·공 사관생도 합동순항훈련을 가다
11월 4일, 1만 4500톤급 수송함 마라도함이 해군 진해기지(경남 창원시)를 출항했다. 마라도함은 순수 국내 기술로 만든 독도급 대형 수송함으로 상륙전 병력, 장갑차, 차량 등을 수송하고 헬기, 전차, 고속상륙정 등을 탑재해 고속상륙작전 때 지휘함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날 마라도함에는 특별한 전사들이 탑승했다. 미래 국군을 책임질 육군·해군·공군·국군간호사관학교 2학년 생도 719명이다.
2024 사관생도 합동순항훈련전단(전단장 해군준장 김학민)이 본격적인 순항훈련에 돌입한 것이다. 이들을 실은 마라도함은 진해기지를 출발해 일본 요코스카항과 미국령 괌을 거쳐 최남단 영해인 이어도를 지나 진해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우리 군은 2018년부터 합동순항훈련을 실시하고 있으며, 합동순항훈련을 통해 해군에 대한 이해와 각 군 간 친교를 도모하고 있다. 합동성은 각 군(육·해·공군)이 상호 협력해 통합된 전투력을 발휘하는 군사작전 수행 원칙을 말한다. 사관생도들은 합동성 훈련을 통해 정예 장교로 거듭나게 된다.
생도들은 19박 20일 동안 군함에서 숙식하고 실습·훈련을 하며 4300마일(7740㎞)을 항해했다. 한미동맹의 중요성, 동북아 안보 환경을 체험하며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강력한 합동성(육·해·공군의 협력)과 해양력의 중요성을 깨닫는 기회다. 이번 합동순항훈련전단에는 마라도함(1만 4500톤급)을 비롯해 천자봉함(4900톤급), 대청함(4200톤급)이 참여했다. 우리 해군이 보유한 가장 큰 배인 마라도함(함장 김정철 해군 대령)이 기함(지휘관이 탄 배) 역할을 했다.
합동순항훈련전단은 해군사관학교 앞 부두에서 출항 기적을 울렸다. 사관생도 대부분은 군함을 타고 순항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배는 파도에 따라 좌우로 흔들리는 ‘롤링’과 앞뒤로 흔들리는 ‘피칭’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시각과 귀 평형기관에 혼동을 유발해 뱃멀미를 부른다. 주로 롤링이 심할 때 멀미를 한다.
일본으로 가는 길엔 황천(비바람이 심한 날씨)을 만났다. 여기에 너울도 겹쳐 뱃멀미를 호소하는 생도들이 많았다. 특히 대청함에 탄 이들이 고생했다. 배 크기가 작을수록 요동도 크기 때문이다.
항해 속도는 12~17노트(약 22~31㎞). 4일 차인 11월 7일 마라도함은 요코스카항에 도착했다. 합동순항훈련전단이 일본을 방문한 것은 2018년 이후 처음이다. 합동순항훈련전단 입항 환영 행사에는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국방부 장관에 해당)과 사이토 아키라 일본 해상막료장(해군참모총장에 해당)이 참석했고 마라도함에도 승선했다. 일본 방위상이 우리 해군 함정에 승선한 것은 역사상 처음으로 알려졌다.
미 7함대 사령관 프레드 카처 해군 중장도 배에 올라 사관생도들에게 한미동맹을 주제로 강연했다. 미 7함대는 서태평양구역을 담당한다. 평시 한반도 전쟁 억제에 기여하고 유사시에는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군사 지원에 앞장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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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대신 군함에서 자고 상륙
생도들은 항구에 정박해도 호텔이 아닌 배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해군에게 배는 집이자 곧 생활공간이다. 매일 아침 조별로 점호를 받고 상륙해 체험 활동을 마친 후 오후 8시면 배로 돌아와 저녁 점호를 받는다.
일본에서 4일간 시간을 보낸 합동순항훈련전단은 괌으로 향했다. 괌에는 미 해군기지와 공군기지(앤더슨)가 있다. 11월 14일 오전 10시 마라도함을 선두로 사관생도와 승조원이 탑승한 배 세 척이 괌 아프라 해군기지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침부터 괌 한인회에선 꽃목걸이를 준비하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훈련전단을 맞았다.
합동순항훈련전단은 11월 15일 오전 괌 스키너 광장에 있는 6·25전쟁 참전기념비를 참배했다. 각 군 사관생도 등 약 100명과 6·25참전 한국군, 미군 용사 3명이 참석했다. 김학민 전단장은 참전용사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기념품을 전달했다. 괌 앤더슨 공군기지를 견학하고 괌 주지사도 만났다.
11월 15일 오후에는 국군간호사관학교(국간사) 생도들이 괌 해군병원에서 실습을 진행했다. 국간사 오서원(여) 생도는 “군인의 강인함과 간호사의 소명의식이라는 두 가치에 모두 도전해보고 싶어 국간사에 입학했다”고 말했다. 오 생도는 “괌 해군병원 시설이 훌륭해 놀랐다”면서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실제 현장에서 실습할 수 있어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그날 저녁에는 마라도함에서 함상 리셉션이 열렸다. 리셉션에는 사관생도를 비롯해 약 200명이 참석해 친교 시간을 가졌다. 뷔페식과 해군 군악대 공연이 어우러진 축제였다. 우리 해군은 다른 나라 방문 시 기항지에서 함상 리셉션을 개최한다. 이 자리에 6·25참전용사와 현지 군인, 외교관, 교민, 주민 등을 초청해 교류한다. 이는 한국과 우리 해군을 알리는 군사 외교의 장이기도 하다. 해군 장교는 ‘국제 신사’라는 평을 듣는데 이러한 배경에는 리셉션 전통이 있다.
40년째 괌에 살고 있는 교민 조은영 씨는 “우리 해군이 예전에는 훨씬 작은 배를 타고 왔다. 이제는 번듯하고 웅장한 배를 타고 괌에 들른다. 대한민국 국력이 그만큼 성장함을 느낄 수 있어 교민으로서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해군이 대견하다”고 말했다.
생도들은 조별로 해변에서 해수욕을 하거나 쇼핑센터를 방문하며 여가를 보냈다. 사관생도의 방학은 연간 8주 밖에 되지 않는다. 학기 중에는 수업을, 방학을 앞두고는 군사훈련을 하기 때문이다. 사관생도들에게 기항지 문화체험은 타군 사관생도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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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 맥캠벨함과 연합훈련
11월 17일 오후 괌을 떠난 합동순항훈련전단은 이어도를 관찰한 후 진해로 돌아오는 항로였다. 휴대전화도 안되는 망망대해에서 생도들은 국방 현안에 대해 발표하며 합동성 강화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밤에는 함교(함정 지휘소)에 올라 당직 체험을 한다.
생도들은 각종 교육훈련과 복지시설 이용으로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여기에 실습, 친교행사와 장기자랑, 체육활동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다. 러닝머신을 뛰거나 스테퍼(일명 천국의 계단)를 걸으며 운동을 하는 생도도 눈에 띄었다. 매일 저녁 7시에는 해군 해난구조대(SSU)와 함께 체력단련 시간을 가졌다. 합동순항훈련전단은 한국으로 돌아오며 미 해군 맥캠벨함과 연합훈련을 했다. 일반인들은 알아듣기 어려운 군사용어가 스피커로 흘러나왔다. 마라도함장이 맥캠벨함에 지시하는 내용이었다. 곧이어 맥캠벨함이 속도를 내며 마라도함 오른편으로 따라붙었다. 맥캠벨함이 신호를 나열하자 천자봉함과 대청함도 합류해 정사각형 대형으로 작전 태세를 갖췄다.
김 전단장은 “한미연합훈련을 꾸준히 해온 덕분에 원활한 작전을 할 수 있다. 평소 훈련을 통해 한미연합 작전 능력을 기르는 게 중요한 이유”라며 연합훈련의 중요성을 생도들에게 설명했다.
11월 16일 오전에는 우리나라 최남단 이어도 종합해양기지를 시각 관찰하며 해양주권 수호의 중요성을 체감했다. 바다를 지키는 강력한 힘은 해군력에서 나온다. 사관생도들은 해양력의 중요성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11월 17일 오전 8시 32분. 마라도함이 진해기지에 도착하자 함 내 스피커에서는 휘파람 소리와 함께 “입항~”이라는 소리가 힘차게 울렸다. 미래 국방을 책임질 사관생도 719명의 19박 20일, 4300마일 항해의 성공을 알리는 소리였다.
김 전단장은 “합동순항훈련은 미래 국군의 주역이 될 호국간성이 합동성을 강화하고 국제적 안목을 키우는 무대다. 생도들은 바다 위 함정이라는 협소한 공간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소통하며 국군 리더로서 자신감과 전우애를 키우는 체험을 했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경훈 기자

사관생도가 말하는 2024 합동순항훈련
“평생 기억에 남을 경험”
“함정에 정통한 장교 되고 싶어”
합동순항훈련에서 전체 사관생도를 대표하는 자리인 연대장 생도를 맡은 해사 김연수(남) 생도는 국가전략 자산인 군함을 지휘하는 함장이 될 수 있다는 매력에 해군을 택했다. 그는 “이전에도 여러 배를 타봤지만 마라도함처럼 생활환경이 쾌적한 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공사 강민정(여) 생도의 아버지는 육군이다. 그는 배에서 보낸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아쉬워 배에서 내리기 싫을 정도라고 말했다. 강 생도는 “평소 학교생활에만 집중했는데 배에서 일기도 쓰며 다양한 생각을 여러 생도와 나누며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평생 기억에 남을 듯하다”고 했다.
육사 유오성(남) 생도는 함상 리셉션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은 미 육군 대령과 나눈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 대령은 이라크·아프가니스탄전에 참전했는데 유 생도에게 실제 전투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대처 방법 등을 들을 수 있어 인상 깊었다고 했다.
해사 박소연(여) 생도는 영화 ‘연평해전’을 본 후 해군에 관심을 갖게 됐다. 박 생도는 “이번 실습으로 ‘공부를 많이 해 함정에 정통한 장교가 돼야 한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비행갑판에서 남태평양 ‘네이비 블루(navy blue)’ 바다를 바라본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육사 구수민(여) 생도는 괌 해변에서 다른 사관학교 동기들과 함께한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사관생도들이 훈련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이끈 훈련전단과 승조원들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구 생도는 ‘난로 같은 장교’가 되길 희망한다.
코로나19 당시 국가 재난상황에서 간호 장교들이 자진해 현장으로 가는 것에 감명을 받아 국간사를 택한 정현우(남) 생도. 그는 “괌에서 신분증을 보고는 군인 할인을 해줬다. 다른 나라 군인인데도 대우해주는 게 인상적이었다. 미국의 군인 존중 문화를 경험했다”고 말했다.
국간사 김이현(여) 생도는 아버지의 추천으로 국간사에 입학했다. 김 생도는 “해군 간호장교도 배를 타는 기회는 흔치 않다. 군함에 설치된 각종 시설을 둘러보며 배가 전시에 어떻게 활동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공사 김찬진(남) 생도는 아버지를 따라 군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김 생도는 국가를 위해 생명을 기꺼이 바치는 군인, ‘위국헌신 군인본분’을 실천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이번 합동순항훈련은 훗날 국군의 합동작전에 필요한 결속의 밑바탕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