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초등학생 자녀를 둔 가정이 겪고 있는 돌봄의 어려움과 사교육비 부담 등을 해소하기 위해 올해 전국 모든 초등학교에 늘봄학교를 도입한다. 1학기에는 전국 2000개교 이상, 2학기에는 전국 모든 초등학교에서 희망하는 1학년 학생 누구나 늘봄학교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2월 5일 경기 하남시에 위치한 신우초등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아홉 번째, 따뜻한 돌봄과 교육이 있는 늘봄학교’를 개최하고 이 같은 내용이 담긴 ‘2024년 늘봄학교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이날 민생토론회에는 초등학생 학부모, 교원 등도 참석해 초등학생 자녀 교육과 돌봄 문제에 대한 생생한 현실과 ‘국민이 바라는 늘봄학교의 모습’에 관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늘봄학교 2026년까지 모든 학교로 확대
그동안 정규수업 이후 초등학교 자녀 돌봄은 부모의 몫이었다. 교육부에 따르면 3~5세 유치원·어린이집의 오후 이용률은 90.3%에 달하지만 초등 방과후·돌봄은 각각 전체 학생의 50.3%, 11.5%만 이용 중이다. 이 때문에 초등학교에서 ‘돌봄 공백’이 발생하거나 사교육에 의존하는 현상이 강해져 부모의 경력단절, 출산기피 현상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늘봄학교’를 도입한 것이다. 늘봄학교는 원하는 학생이라면 최장 저녁 8시까지 교육·돌봄을 한 번에 받을 수 있는 종합 교육프로그램이다. 2024년 2학기부터 전국 초등학교에 전면 확대되고 2026년까지는 모든 초등학생이 지원받게 된다.
늘봄학교는 부모들의 요구사항을 충실히 반영한 정책이다. 2023년 교육부 조사에서 선호하는 돌봄 기관을 물어본 결과 ‘학교 돌봄’이 81.4%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실제로 2024년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을 둔 예비학부모를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늘봄학교에 참여하겠다’는 응답도 83.6%에 달했다. ‘늘봄학교에서 제공할 프로그램들에 다양하게 참여하겠다’는 응답도 압도적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기존의 초등 방과후와 돌봄을 없애고 늘봄학교 하나의 체제로 운영할 예정이다. 방과후 프로그램과 돌봄서비스도 ‘늘봄과정’이라는 이름으로 통합된다. 늘봄학교를 이용하고자 하는 학생은 누구나 정규수업 전 아침 또는 정규수업 후 최장 저녁 8시까지 희망시간 동안 이용할 수 있다.
교육과 돌봄이 한자리에서 이뤄지지만 교사의 업무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에 늘봄학교 전담조직인 ‘늘봄지원실’이 운영되기 때문이다. 늘봄지원실에는 전담 행정인력이 배치된다. 지원실에서는 지방공무원 혹은 교감이 담당하는 늘봄지원실장을 필두로 여건에 따라 공무원, 단기계약직, 퇴직교원 등을 활용한 늘봄실무직원이 행정업무를 담당한다. 이렇게 되면 교사는 방과후·돌봄 행정업무를 맡지 않아도 된다. 대신 돌봄은 기존에 돌봄전담사라고 불렸던 늘봄전담사가 담당한다. 방과후프로그램은 늘봄프로그램강사가 맡아 진행한다.
이 같은 방안은 2024년 1학기부터 시작될 전망이다. 늘봄학교가 본격 도입되기 전인 1학기에는 교사가 기존의 방과후·돌봄 행정업무를 맡을 수 있지만 2학기부터는 늘봄실무직원이 관련 업무를 담당한다. 2025년부터 늘봄학교 전담조직·인력을 운영해 전담체제를 완성하는 것이 정부의 목표다.
프로그램 다양화하고 질은 높이고
이렇게 완성된 늘봄학교 체제는 학생과 학부모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2024년에는 초등 1학년, 2025년에는 2학년을 대상으로 두 시간 이내 맞춤형 프로그램이 무료로 제공된다. 정규수업과 달리 늘봄과정을 이용하는 것은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에 달려 있어 맞춤형 프로그램을 희망하지 않는 학생은 돌봄서비스 등 다른 늘봄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초등 1학년 맞춤형 프로그램에서는 학교 적응을 지원하고 놀이 중심 예체능, 사회·정서 등이 제공된다. 정부는 지역대학을 중심으로 사업단을 공모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할 예정이다. 예를 들어 음악 연주와 감상, 문예창작, 영화·사진 등의 예체능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인공지능(AI), 수학적 사고 등의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수 있다.
강사를 섭외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을 중심으로 강사를 섭외하고 학교와 강사 간 연결한다. 교육부가 한국과학창의재단이나 대한체육회 등과 연계·협력하는 등 인력을 발굴하고 교육청이 학교 수요에 맞게 강사를 지원하는 등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교육자원을 적극 활용해 늘봄프로그램의 질을 높이고 다양화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지방자치단체, 기관, 대학, 기업 등과 협력해 우수한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곳을 계속 확대해간다. 지자체의 경우 도서관이나 박물관 같은 시설과 연계해 다양한 교육경험을 지원하는 방안이 있다. 지역대학에서는 우수 인적·물적 인프라를 이용해 전문성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일례로 부산 동의대에서는 지역 늘봄학교에 대학교수가 참여하는 펜싱, 드론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도 구축된다. 2024년 하반기에 개통될 가칭 ‘늘봄허브’는 전국의 우수프로그램을 탐색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구성된다. 지금까지는 학교와 고정적으로 연계된 곳에서 프로그램을 공급해왔다면 이제는 대학·기업·기관 등의 공급자가 경쟁을 벌여 학교에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지역·학교 간 격차도 줄일 수 있다.
다른 교육사업과 연계해 늘봄학교를 운영하는 방안도 있다. 학생 체육·예술동아리를 늘봄학교에서 활용해 동아리 활동을 활성화하고 늘봄학교 프로그램의 내실을 다지는 계기를 만든다. 교육부는 2023년 2854개교에 개설된 초등학교 체육동아리가 2024년에는 6000여 개교에 설치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에 진행 중인 ‘디지털 새싹’ 사업도 늘봄학교에 우선 지원된다. 디지털 새싹 사업은 학생의 디지털역량 함양을 위해 민·관이 협력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지역사회의 다양한 진로체험기관을 활용해 진로체험 프로그램도 마련하고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을 위한 학습지원 프로그램도 개설될 수 있다.
‘늘봄학교지원특별법’ 제정 추진
이런 프로그램은 학교 안팎의 다양한 자원과 연계해 운영된다. 학교 내에서는 기존 돌봄교실로 쓰이던 늘봄교실을 확충하고 특별실, 도서관 등을 늘봄과정에 맞게 활용한다. 학교별 여건에 맞게 공간을 재배치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게 늘봄교실 1개당 학생 수를 자율에 맡기고 특별교부금 등의 지원을 늘린다.
학교 밖의 교육자원도 폭넓게 활용될 전망이다. 거점형 늘봄센터가 늘어나 공간이 부족하거나 수요가 넘치는 인근 학교에 대응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지역 대학 내 유휴공간도 폭넓게 사용하고 아파트 단지 내의 공간이나 지자체의 체육공간, 도서관 등을 늘봄학교와 연계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예를 들어 대구에서는 ‘늘봄형 공공도서관’이 운영돼 초등 3~5학년 학생을 수용하고 있다. 전남에서는 아파트 단지 내에 돌봄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센터를 세워 연계한다.
지역사회와 연계된 늘봄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협의체가 필요하다. 전국에 존재하는 초등돌봄협의체를 교육청·지자체·교원단체 등이 참여하는 가칭 ‘지역늘봄협의체’로 전환해 운영할 방침이다. 또 관련 법적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늘봄학교지원특별법’ 등을 제정하는 것을 추진한다.
무엇보다 늘봄학교에서는 안전이 중시된다. 정부는 늘봄학교에 대한 안전관리를 강화할 방침이다. 학교는 학교 안팎으로 이동이 있는 늘봄학교 운영방식에 맞게 매년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하고 평가한다. 거점형 늘봄학교나 지역의 늘봄프로그램 운영공간 등을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안전한 교통수단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통학버스 등도 지원한다. 여건에 따라 늘봄 안전인력도 채용해 배치하고 폐쇄회로텔레비전(CCTV)·비상벨·인터폰 등을 설치하고 안전장치를 보강한다.
이 같은 늘봄학교 운영 방안은 2026년까지 완성될 예정이다. 2024년에는 이용을 희망하는 초등 1학년 학생을 모두 수용하고 1학년 학생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두 시간 무료로 제공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2025년에는 이를 고도화한다. 늘봄학교는 희망하는 초등 1~2학년 학생 모두를 수용하고 이들에게 두 시간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2026년이 되면 모든 초등학생이 원한다면 누구나 늘봄학교를 이용할 수 있다.
정부는 이를 통해 누구나 누리고 누구나 만족하는 늘봄학교를 만들 방침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월 5일 민생토론회에서 “아이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에 가고 아이들을 가장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 학교가 돼야 한다”며 “좋은 학교시설을 활용한 국가돌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국가가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방과후에 풀이 죽은 아이들이 방황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될 것”이라며 “돌봄은 우리 공동체 모두의 책임이고 또 국가와 지방정부의 책임이다. 늘봄학교를 책임 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효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