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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기동대에 근무할 때는 피의자와 눈을 마주치기 어려웠어요. 밤샘조사하고 송치할 때가 되면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거예요.”
경찰청 미아찾기센터 김수진(36) 경사의 얘기를 듣다 보면 ‘여경’(女警)이라는 단어는 ‘여린 경찰’의 준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그가 물렁물렁한 검증 과정을 거쳐 경찰에 입문한 것은 아니다. 김 경사는 1992년 여경 사상 처음으로 선발한 형사기동대원 100명 중 한 사람. 당시 경쟁률 134대 1은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깨지지 않은 여경 공채 최고의 경쟁률이다. 그러나 피의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강력계 형사였고 보면, 오래 근무하기는 힘들었을 듯. 그가 형사기동대에 근무한 기간은 1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랬던 그녀가’ 지난 2월 경찰청 미아찾기센터에 몸담으면서 본인의 적성도 함께 찾았다. 그의 업무는 신원 미상의 변사체나 각종 수용시설에 보호된 무연고자 가운데서 실종자를 찾아내는 일. DNA 확인을 거쳐 사망자는 사망자대로, 생존자는 생존자대로 가족 품으로 돌려보낸다. 피의자와는 ‘시선 처리’가 난감했던 그이지만, 심하게 일그러진 변사체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일은 아무렇지 않다고. 집에서는 물론 출퇴근 지하철 안에서까지 변사체 사진들을 들여다보곤 한다.
지난 6월에는 10년 전에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달라는 어머니 김모(55) 씨의 실종 신고를 받고 단 여섯 시간 만에 요양원에 있는 강모(15) 군을 찾아내기도 했다. ‘여린 경찰’ 김 경사는 강 군의 어머니에게 ‘찾았다’고 말하는 순간 울음이 터져나와 같이 엉엉 울어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네 살짜리 아들 지담이에게는 미안할 때가 많다. 하루는 집에서 변사체 사진을 뒤적거리는데 지담이가 다가오더니 “어, 죽은 사람이다” “무섭다”고 말했다. 김 경사는 그때 받은 작은 충격을 이렇게 털어놨다.
“네 살이면 죽는다는 게 뭔지도 모를 나이잖아요? 아이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어요. 하지만 그건 제 일에 대한 보람과는 별개의 문제예요. 나중에 지담이가 자라면 엄마의 일을 이해할 수 있겠죠.”
21세기는 여성의 시대라고 했던가. 경찰 제복 안에 담긴 그녀의 여성성이 그 말을 잘 웅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