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공사로 길을 넓히면서 내가 있던 건물이 헐렸어. 그래서 여기 온 거야. 1974년에 왔으니까 벌써 몇십 년 됐네. 낙원상가에서 일생을 보냈다고 봐야지. 악기계의 산 역사야. 근데 애들은 이걸 안 해. 안 한다고 하는데 어떡하겠어. 별수 없지. 어떤 직업을 갖든 성의를 다해서 하면 그게 좋은 직업이야.”
국내에서 가장 오랫동안 플루트 수리 일을 해온 플루트 수리 명장 지병옥(80) 씨가 영상 속에서 악기를 고치며 말한다. 그가 일하는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의 신광악기 매장은 10평이 채 되지 않는다. 매장 안에는 전국에서 그의 손길을 기다리며 배달된 플루트가 쌓여 있다. 1956년 종로의 한 악기판매점 종업원으로 이 세계에 입문한 그는 1969년 자신의 가게를 열었고, 1974년 낙원상가로 이전했다. 1970~1980년대 낙원상가는 악사들의 천국이었다.
1968년 건축돼 반세기 역사를 자랑하는 낙원상가에는 수십 년간 악기와 함께한 사람들이 살아간다. 플루트 수리 명장 지 씨의 일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은 20대 청년이 찍은 작품이다. 김준겸(26) 씨는 어느덧 50주년을 맞은 낙원상가의 사연을 영상으로 표현했다. 서울시는 ‘제5회 나와 함께한 건축, 스토리텔링 공모전’에 접수된 총 1098개의 작품 중 28개를 8월 18일 선정했다. 김 씨가 촬영한 ‘낙원상가’ 영상이 대상을 차지했다. 20대 청년이 바라본 낙원상가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김 씨를 9월 2일 서울 염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서울 염리동의 한 카페 앞에서 만난 김준겸 씨
서울시 ‘건축, 스토리텔링 공모전’ 대상 -오래 일한 분들의 이야기는 어땠나요?
=자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이다. 보스턴 전자음향 최성훈 사장님의 경우에는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데 젊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유명한 정치인들의 오디오를 담당했다. 음향 장비를 판매하는데 유머러스했다. 내가 오후 1시에 가게에 붙잡혀 6시 30분에 가게 문을 나섰으니까(웃음). 음향 장비를 만지러 옛날에 청와대 다닐 때 패용하던 출입증도 보여줬다. 신문 보고 책 읽는 걸 좋아해서 그동안 정리해둔 신문 스크랩도 보여주고. DMZ(비무장지대)에 가서도 오디오를 설치하는 등 다양한 삶을 살았다. 플루트를 수리하는 지병옥 사장님의 경우에는 마지막에 한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어떤 직업을 갖든 성의를 다하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라는. 올해 여름 대학을 졸업하는데 취업 준비생으로서 위로가 되었다.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 낙원상가에 있는 분들을 보면서 남들이 어떻게 보느냐를 떠나 한 가지 일을 끝까지 한다는 것, 자기가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사실 선입견이 좀 있었다. 이렇게 골방에서, 공기 순환도 안 되는 곳에서 전자기기를 수리하는 것에 대한 선입견이었다. 장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당당한 모습이었다. 멋있었다.
-낙원상가의 나이만큼 50년간 같은 일을 하신 분들도 만났나요?
=지병옥 플루트 장인은 낙원상가 생기기 전부터 했고, 내가 인터뷰했던 분들은 30년 이상 한 가지 일을 했다. 학성악기 사장님은 낙원상가에서 일을 시작해 가족을 다 부양하고 자식들 대학교 보낸 것을 뿌듯하게 여겼다. 낙원상가에 새롭게 온 분들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오래 있었다.
▶김준겸 씨가 촬영한 영상 ‘낙원상가’의 장면들│김준겸
-이 영상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건축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건물을 다루려고 했다. 서울 은평구 구산동도서관, (남영동) 대공분실처럼 의미 있는 건물, 역사가 있는 것을 하려고 했는데 주제가 딱딱하고 방대해지는 것 같아서 작지만 친근한 소재를 다뤄보자고 방향을 바꿨다. 고민을 하다 낙원상가가 50주년이 되었다는 것을 보고 사회 속에서 잊혀가는 것들의 의미를 전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낙원상가라는 이름만 떠올릴 뿐이지,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모르니까 올해만큼은 영상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20대 때 청년의 꿈과 상상력을 갖고 온 분들이 장년이 되면서 멋있고 아름다워 보이는 그런 스토리를 담고자 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낙원상가의 역사가 이어지면서 달라진 점 등을 담고 싶었는데 내가 원하는 만큼은 영상으로 소개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운 점도 있다.
▶김준겸 씨가 촬영한 영상 ‘낙원상가’의 장면들│김준겸
“추억과 향수 부르고 아직 살아 있는 곳”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악기 전문 낙원상가에 현재 300여 업체가 입점해 있다. 낙원상가는 악기 연주자들에게 불멸의 고향이다. 전성기를 누리던 1970~1980년대에는 일자리를 찾아 전국에서 모여든 음악인들의 인력시장이 형성됐다. 상인들은 한국 대중음악사의 한 축을 이룬 당사자이자 산증인이다.
-상인들이 악기에 대해서도 소개를 하던가요?
=취재한 가게가 세 곳밖에 없었다. 수십 곳에서 거절을 당했기 때문이다. 지병옥 씨는 플루트에 대해 알려주면서 이 일을 하려면 최소 10년은 버텨야 한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플루트를 만지는 일을 중간에 그만둔다고 하더라. 그분 가게에 지방에서 온 플루트가 쌓여 있다. 한 분야에서 인정받아 악기를 믿고 맡긴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연주자들에게는 생명줄을 맡기는 건데 신뢰를 받는 모습이 멋있었다. 아들들은 이 일을 안 하고 며느리가 이어받겠다고 해서 몇 년간 배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김준겸 씨가 촬영한 영상 ‘낙원상가’의 장면들│김준겸
-과거를 이어온 낙원상가의 미래는 어떠할 것으로 보이나요?
=학성악기 사장님 말씀이 과거에는 사람이 많았는데 확실히 요즘은 줄었다고. 가게도 공실이 생긴다고 얘기했다. 굉장히 아쉬워했다. 하지만 미래에도 완전히 사라지긴 어려울 것 같다. 세계에서 하나뿐인, 악기상들이 모인 상가라 단골손님들이 있다. 악기는 소리를 들어야 하기 때문에 온라인 매장에서 사기가 어렵지 않나. 사람들이 다시 한번 낙원상가를 찾아오게끔 하는 장치나 건축학적인 공간을 조성한다면 더 좋아지지 않을까. 서울의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간이고 아직도 살아 있는 곳이다.
서울문화재단이 발행한 <서울 건축 읽기>에서 조한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는 낙원상가의 콘셉트를 이렇게 설명한다. “지하에는 구수한 청국장과 시원한 잔치국수를 먹을 수 있는 재래시장이 있고, 지상에는 자동차와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사거리가 있고, 2·3층에는 온갖 빛깔의 악기들이 교향악단처럼 늘어선 악기 매장이 있는가 하면, 4층에는 예술영화와 뮤지컬을 볼 수 있는 전용관이 3개나 있으며, 9층부터는 빛이 가득한 중정을 품고 있는 아파트가 있다.”
낙원상가는 1969년 준공된 우리나라 1세대 주상복합건물이다. 2000년대에 들어와 도심 재개발 명목으로 철거 위기에 놓이기도 했지만 세계 최대 악기상가라는 상징성과 건물의 안전성 등 보존 가치가 재평가되며 2013년에는 서울 미래유산에 등재됐다. 독특한 구조의 낙원상가는 복잡한 건물 형태로 인해 4층, 5층, 6층, 16층 등 총 7개의 옥상이 있다.
▶김준겸 씨가 촬영한 영상 ‘낙원상가’의 장면들│김준겸
“발로 뛰어 만든 영상으로 소통하고 싶어”
-낙원상가를 영상으로 표현할 때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나요?
=이야기가 있는 영상이어서 발랄하고 유쾌하기보다는 감성적으로 만들려고 했다. 최대한 낙원상가 내부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려 했다. 아쉬운 점이라면 다양한 이야기, 활동적인 영상을 더 담지 못한 것이다.
영상에는 악기를 다루는 이들의 이야기가 주축을 이루지만, 낙원상가는 음악인만의 전용 공간은 아니었다. 낙원상가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 최대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인기가 높았다. 3층에 자리했던 낙원볼링장이나 4층 허리우드극장에 가는 것은 1970~1980년대 청춘들의 데이트 코스 중 하나였다. 그러나 밴드 뮤직의 쇠락으로 악기 수요가 줄어들면서 낙원상가에도 한파가 몰아쳤다. 뜻밖에 이 수요를 대체한 곳은 대형화된 교회였다.
낙원상가는 조만간 도심 명소이자 공원으로 다시 태어날 전망이다. 서울시는 2017년 ‘낙원상가 공용공간 개선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 수행 업체로 ‘조진만 건축사사무소’를 선정했다. 북악산, 창덕궁, 종묘, 동대문, 남산 등 서울의 자연·역사문화 경관을 둘러볼 수 있어 조망이 빼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낙원상가 옥상은 공원으로 바뀔 예정이다.
프로듀서를 지망하는 김 씨는 앞으로도 유튜브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 생각이다. 대학교 3학년 때 영상을 만들기 시작한 그는 신촌 도시재생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기도 했다. 택시를 타서도 운전기사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할 만큼 타인들의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이야기를 많이 담고 싶어요. 직접 발굴하는 탐사보도나 발로 뛰면서 만들어내는 영상 같은 것도요. 영상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요.”
어떤 이들의 눈에는 별것 없어 보일지라도 영상을 담는 이의 눈에는 각별한 공간이다. 그래서 김 씨가 촬영한 영상 ‘낙원상가’는 오래된 건물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청년의 뜨거운 고백이 담겨 있다. 애정 어린 시선 덕분에 낡아 보이는 낙원상가는 화려한 시절을 품은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글·사진 박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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