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가을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전 세계에 금융위기가 몰아닥쳤다. 당시 나는 인터넷 포털 회사인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임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 2월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에 즈음해 보스턴의 라이코스 CEO로 임명되어 부임했다.

▶ 라이코스가 인도의 와이브랜트에 매각된다는 발표를 직원들에게 한 후 가진 축하 파티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맨 왼쪽이 필자, 두 번째가 와이브랜트 이스라엘 CEO 코비, 네 번째가 와이브랜트 슈레쉬 회장. 이때만 해도 모든 일이 잘될 줄 알았다. ⓒ임정욱
카네기멜론대학에서 잉태된 검색엔진 라이코스는 1990년대 말에 검은 개를 마스코트로 해서 급성장한 인터넷 회사다. ‘닷컴버블’의 절정기였던 1999년에는 야후와 함께 시대를 대표하는 인터넷 회사로 각광받았다. 2000년 스페인의 통신회사 텔레포니카에 120억 달러(약 13조 5,000억 원)라는 엄청난 가격에 인수됐다. 그런데 그 후 인터넷 회사들을 떠받치고 있던 나스닥 증시가 폭락하면서 야후, 아마존 등 다른 인터넷 회사들과 함께 라이코스의 가치는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바로 라이코스에, 아니 인터넷 비즈니스에 흥미를 잃은 텔레포니카는 라이코스를 다시 팔아버리려 안간힘을 썼다. 그 결과 2004년 당시 한국의 인터넷 포털인 다음이 1억 달러(약 1000억 원)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라이코스를 인수했다. 닷컴버블 당시의 10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에 라이코스를 산 것이다.
하지만 당시 미국에서는 구글, 한국에서는 네이버가 검색엔진의 주도권을 잡고 쑥쑥 성장하던 시기였다. 라이코스를 방문하는 사람은 계속 줄어들었다. 라이코스를 되살려보려는 다음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매년 라이코스는 큰 폭의 적자를 내면서 그렇지 않아도 네이버에 크게 밀리고 있던 다음을 괴롭혔다. 그러던 차에 금융위기가 터지자 새로 다음의 수장이 된 최세훈 대표는 내게 “라이코스에 가서 어떻게든 흑자를 내라”고 지시했다.
내가 가서 본 라이코스는 철 지난 늙은 포털에 지나지 않았다. 워낙 위기 상황이라 80여 명의 직원을 60여 명으로 줄였다. 온갖 비용을 다 줄였다. 그리고 그동안 신경 쓰지 않았던 검색, 웹퍼블리싱, 게임 등 기존 서비스를 개선해서 매출을 더 올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미국은 정말 큰 시장이었다. 구글, 야후 같은 공룡회사가 아니어도 우리처럼 작은 회사에게도 잘만 하면 기회가 있었다. 미국 경제가 바닥을 치고 회복되면서 광고 매출이 오르기 시작했다. 덕분에 2009년 소폭이지만 15년 라이코스 역사상 첫 흑자를 냈다.
신기한 것은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라이코스를 사고 싶다는 인수 희망자까지 나타났다. 와이브랜트라는 인도 회사였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인도 회사가 최소한 몇 백억 원의 인수대금을 마련할 것인가.
매각 협상은 고통스러웠다. 직원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큰 동요가 일어날 것이었다. 몇몇 핵심 임원들에게만 알리고 협상을 진행했다. 그들이 요구하는 자료, 질문이 끝없이 이어졌다. 한국, 미국, 인도, 이스라엘을 연결하는 컨퍼런스 콜 회의가 수없이 이어졌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에 딜이 깨질 것이라고 생각한 일도 많았다. 어쨌든 이 지루한 6개월간의 협상이 끝났다. 2010년 8월, 인도의 와이브랜트가 라이코스를 420억 원에 인수했다고 언론에 발표됐다. 그리고 인수회사와 매각회사의 경영진이 함께 이런 화기애애한 사진을 찍었다. 나는 회사의 안정화를 위해 최소한 1년간 CEO로 일을 돕는 조건으로 라이코스에 남았다.
여기서 라이코스 스토리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세상일이 그렇게 쉽지 않았다. 처음에 약 200억 원을 선금으로 내고 나머지 잔금은 실적에 따라 지급하기로 매각 딜이 계약됐다. 그런데 라이코스의 비즈니스가 잘돼서 그들이 추가로 내야 할 돈이 400억 원 이상으로 늘어나자 와이브랜트는 딴소리를 하며 잔금 지급을 미루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이듬해 2월 CEO직을 사임했고, 치열한 법정싸움과 싱가포르에서의 중재재판 끝에 다음이 이겼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금을 완전히 받지는 못했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해 글로벌 비즈니스의 어려움을 몸으로 체험하는 경험을 쌓았다.

임정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