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외교원에 세워진 고려시대의 외교가 서희의 동상 앞에선 민정훈 교수
문재인 대통령은 10월 30~31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이어 11월 1, 2일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6)에 참석하는 등 유럽에서 정상외교를 펼치고 있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글로벌 현안을 다루기 위한 다자외교 무대의 결정판인 G20 정상회의에서 글로벌 선도국가로서 우리나라가 어떠한 위상을 갖고 있고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에 대한 비전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민 교수는 “문재인정부 기간 외교 다변화로 시작해 디지털·바이오 역량의 강점을 바탕으로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 우리나라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는 세계를 선도하는 성과를 거뒀다”며 “문재인정부가 여러 대륙에 뿌린 씨앗이 다음 정부에서 실질적 이득과 혜택으로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10월 말부터 유럽에서 이어지고 있는 G20 정상회의와 COP26 등 정상 외교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G20 정상회의는 글로벌 현안을 다루기 위한 다자외교 무대의 결정판입니다. G20 회원국은 주요 7개국(G7)에 대륙별 주요 신흥국과 유럽연합(EU) 의장국을 합쳐 20개 국가입니다. G20 국가의 인구를 합치면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되고 국내총생산(GDP)은 전 세계 GDP의 80%가 넘기 때문에 주요국은 다 들어가 있는 다자외교 무대라고 할 수 있죠.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는 보건, 무역, 기후변화, 개발 협력 같은 분야에서 국가 간 협력을 강화하고 포용적이고 지속 가능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만들어내기 위해 20개 주요국이 어떻게 협력해나갈 것인지를 논의한 것이고요. 이 부분에서 우리나라가 기여할 부분이 대단히 크죠. 지난 6월 11~13일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우리가 가진 디지털 역량이나 바이오 역량을 바탕으로 G7 국가 정상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런 역할을 이어갔습니다. 글로벌 선도 국가로서 우리나라가 어떠한 위상을 갖고 있고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에 대한 비전을 보여준 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대유행에 대비하기 위해 보건 역량 배양과 세계적 정보 공유를 강화하고 ▲저소득국에 대한 코로나19 백신을 지원하고 ▲경제성장 회복을 위해 디지털경제를 활용하고 ▲2050 탄소중립 선언 등 우리 정부의 성과와 역할을 잘 부각해 앞으로 국제 무대에서 글로벌 현안을 적극적으로 다루고 대처하는 데 중요한 일원으로 활동하겠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영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6월 12일(현지 시간) 영국 콘월 카비스베이 양자회담장 앞에서 참가국 정상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한 후 이동하고 있다. | 청와대
▶9월 10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우흐나 후렐수흐 몽골 대통령과 화상 정상회담
-이번 정상외교는 지난 5월과 6월에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과 G7 정상회의 등과 어떻게 연계되나요?
=G7 정상회의는 보건이나 기후변화 같은 전 세계가 직면한 어려움에 선진국이 어떻게 함께 대처할지 논의하는 장입니다. 우리나라가 G7 정상회의에 2년 연속 초청받은 것은 우리나라도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으니 선진국과 동등하게 국제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선진국으로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앞으로 개발도상국에 코로나19 백신을 공급하는 데 있어 생산기지 역할을 하고 2억 달러의 현금·현물 공여를 통해 전 세계가 코로나19에 대응하고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의 경제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했습니다. 더 살기 좋은 세계를 만드는 데 우리나라가 글로벌 선도 국가로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준 것 같습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안보,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 특히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중점을 두고 있는 과학기술, 공급망 복원, 기후변화 등에서 한미 협력이 확대됐습니다. 과거에는 북한의 위협에 대한 안보, 군사에 중점을 뒀었는데 이번에는 코로나19 백신을 생산한다든가 대중국 견제에 있어 반도체나 배터리 같은 첨단기술의 공급망 등 본격적으로 우리나라가 잘할 수 있고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부분에서 미국과 함께하는 핵심 동맹으로서 모습을 보여줬죠. 한미동맹이 안보 동맹, 군사 동맹뿐 아니라 다방면에 걸쳐 심도 있게 협력할 수 있다는 이정표를 제시한 것입니다.
▶5월 31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2021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 정상토론세션 회의
▶문재인 대통령이 5월 21일 오후(현지 시간)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은 국제 무대에서 북핵 해법으로써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호응을 끌어내는 데 주력했고 지난 9월 열린 유엔총회에서 종전 선언을 다시 제안했습니다. 국제 사회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코로나19 이전에 다른 나라에 가서 전략적 대화라든지 강연을 해보면 독일, 아세안, 중남미 국가 모두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위한 우리나라의 노력을 굉장히 극찬하고 지지를 보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문재인정부는 굉장히 활발한 양자·다자적 외교 노력을 통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었죠. 그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지금도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북한과 미국의 셈법이 달라 교착 상태를 지속하고 있지만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유럽, 아세안 등 다른 국가들의 인식은 굉장히 좋습니다.
지금 문재인정부에서 북미 대화 재개를 통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재개한 것은 이미 임기 초에 야심 차게 출발한 부분을 정리하고 다음 정부로 계승하는 마무리 작업을 하는 것이거든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한 정부에서 끝낼 수 있는 계획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중장기적 로드맵이고 이제 초기 단계를 벗어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발전시켜나가느냐는 차기 정부의 숙제입니다. 문재인정부는 5년 동안 보여줬던 성과와 한계를 갈무리하고 재조명해 다음 정부로 넘겨주기 전에 달성하고 싶은 부분에 대해 박차를 가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문재인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강조한 것이 미·중·일·러 4강 외교에 머물지 않고 외교의 폭을 확대하는 ‘외교 다변화’인데요. 그와 관련해 어떤 성과가 있었나요?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4강뿐 아니라 아세안(ASEAN), 인도, 호주 등 많은 국가에 특사를 보냈고 아세안 10개 국가를 모두 방문하고 중남미와 아프리카 국가까지 포용했습니다. 신남방·신북방정책을 통해 일본, 중국에 이은 우리나라의 무역·투자 진출 시장을 적극 개발하며 한반도 신경제지도를 확장했습니다. 아세안 회원국은 굉장히 젊고 역동적인 나라들이기 때문에 중국 다음으로 교역량이 커질 수 있는 지역이고 올해 교역량도 중국, 미국에 이어 세 번째를 차지할 정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K-방역 등 우리나라가 가진 능력을 전 세계가 확인하면서 경제와 과학기술 분야에서 협력을 원하는 국가가 많아졌습니다. G7 정상회의에서 열린 독일·호주 등과 양자회담도 그쪽에서 원해 급작스럽게 이뤄진 회담이죠. “바이오와 디지털을 어떻게 그렇게 잘할 수 있느냐”며 호주, 중남미, 동남아시아, 유럽의 많은 국가가 우리의 경험을 요청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최근에도 들었습니다. 중남미 국가들이 “경제개발을 도와달라”, “같이 협력하자”는 제안을 많이 보내지만 여력이 없어 일일이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인 걸 고려한다면 말로만 외교 다변화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여러 대륙에 씨앗을 뿌려놓은 겁니다. 다음 정부에서 하나하나 수확하면서 우리 위상을 높일 계기를 문재인정부에서 만들어놓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양자·다자 간 협상을 통해 경제와 외교에서 우리에게 실질적 이득과 혜택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27일 청와대 충무실에서 화상으로 진행된 제16차 동아시아정상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청와대
-문재인정부 기간 동안 국제 무대에서 우리나라의 외교적 위상과 역할은 어떻게 변화했다고 생각합니까?
=1996년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지만 그래도 우리 국민의 마음 한편에 우리가 과연 선진국이고 선진국 국민인가하는 의구심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재인정부는 외교 다변화로 시작해 디지털·바이오 역량의 강점을 바탕으로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는 세계를 선도해나가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역할과 위상을 인정하는 걸 보면서 많은 국민이 이제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왔고 대단한 역량을 가진 나라라고 느끼면서 글로벌 선도 국가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저 역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고 어느 정도 인정하게 됐습니다. 해외를 나가보면 확실히 달라진 위상을 느낄 수 있거든요. 우리나라 하면 기술이 굉장히 발전한 나라, 규칙이 잘 지켜지는 모범 국가, 민주주의 국가라는 공감대를 전 세계로부터 얻게 됐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 국민은 이에 대해 인색한 것 같아요. 일각에서 “여전히 개발도상국이고 아직 멀었는데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리는 거 아니냐”고 우려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받기만 할 게 아니라 줄 때가 됐고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단계가 됐습니다.
정부에서 외교 다변화와 통상 다변화를 통해 우리가 가진 역량을 전 세계에 보여주고 그에 걸맞은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것에 이제 자긍심을 가져도 됩니다. 더 포용적이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베푸는 선진국의 국민으로서 당당한 모습을 즐겨도 됩니다.
글 원낙연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