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전환 마을 성대골을 가다
“그린 뉴딜? 성대골을 보라!”
에너지 전환 운동을 하는 이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실제 ‘에너지 전환 마을 성대골’은 그린 뉴딜이나 에너지 전환 관련 토론회 자리에서 단골 메뉴로 거론되는 사례다. 여러 지역의 에너지·공동체 운동 활동가들의 견학이 줄을 잇는다. 학생들이 수학여행 코스로 방문하기도 한다.
성대골은 서울 동작구 상도3·4동 일대를 일컫는다. 성대골 주민들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2011년부터 마을 차원에서 에너지 전환 운동을 펼쳐왔다. 국내에서 그린 뉴딜이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기 이전부터 일찌감치 2050 탄소중립을 목표로 내걸었다.
성대골 에너지 전환 운동의 핵심축은 협동조합이다. 성대골에는 에너지 협동조합이 세 곳이나 있다. 2013년 11월 설립된 마을기업 마을닷살림협동조합은 마을 주택 에너지 효율 개선, 미니 태양광 설치 등 성대골 에너지 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2016년 2월에는 성대골 에너지 활동가들이 에너지·기후변화 교육을 진행하던 국사봉중학교에 생태에너지 사회적 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생태에너지 전환 카페(생태 매점)를 운영하고 옥상에서는 햇빛발전(태양광)을 통해 전기를 생산한다. 발전 수익은 전액 장학금으로 쓰인다.
2018년 9월에는 동작구 가상발전소 사업을 위한 성대골에너지협동조합이 출범했다. 여러 곳의 건물 옥상에 소규모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한 뒤 그곳에서 생산된 전기를 모아 큰 발전소처럼 전력 중개시장에 전기를 내다 파는 사업 모델이다. 발전 수익을 지역 주민들과 나누는 이익 공유형 재생에너지 사업이다. 시민들이 전력회사의 주인으로 나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21년 3월 11일 열린 성대골 마을기술학교의 ‘우리집 그린케어’ 강좌에 참여한 주민들이 마을 기술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 성대골 전환센터
주민 참여 늘리기 위해 협동조합 활용
그런데 왜 협동조합일까? 성대골의 에너지 전환 운동을 이끌어온 마을닷살림협동조합의 김소영 대표는 “더 많은 주민을 에너지 전환 운동의 이해당사자로 끌어들이고 싶었다”고 했다. 주민 참여를 위한 멍석으로 협동조합을 활용했다는 얘기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에너지 전환 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평범했던 주민들이 마을 교육을 통해 에너지 운동 활동가로 거듭났다. 성대골에 마을 연구원, 마을 기술자, 마을 에너지진단사, 에너지·기후변화 강사 등 마을 활동가가 많은 이유다.
김소영 대표는 동네 에너지 일자리 창출과 지역순환경제, 곧 ‘마을에서 에너지로 먹고살기’가 에너지 전환 운동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에너지 전환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려면 그 활동이 수익으로 연결되고 일자리가 생겨야 하기 때문이다. 공동 소유와 민주적 운영을 원칙으로 삼는 협동조합은 이런 목적에 가장 적합한 조직이라 할 수 있다. 김 대표가 2019년 말, 마을에서 인테리어, 전기, 설비 등의 업체를 운영하는 기술자들을 모아 마을기술네트워크를 꾸린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들은 첫 사업으로 마을 주택의 건물 에너지 성능 개선을 위한 집수리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9월에는 마을기술학교도 열었다. 주민들에게 에너지 성능 개선 집수리 기술을 가르치는 ‘우리집 그린케어’와 집수리 기술자를 양성하는 ‘마을기술 창업스쿨’ 과정으로 나눠 진행됐다. 2020년 사업 성과를 지켜본 뒤 2021년쯤 ‘마을기술협동조합’ 설립을 추진할 계획이다. 건물 에너지 성능 개선, 주민 참여형 이익 공유 태양광 사업 등은 정부가 내놓은 ‘그린 뉴딜’ 사업의 핵심 과제이기도 하다.
성대골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그린 뉴딜은 문재인정부의 국정 과제 중 하나인 사회적 경제 활성화와 궁합이 잘 맞는다. 이는 사회적 가치(기후위기 대응)와 경제적 가치(이익 공유)를 동시에 추구하는 사회적 경제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협동조합은 사회적 경제조직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1주 1표’가 아닌 ‘1인 1표’를 기반으로 한 민주적인 관리,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 등을 중시한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전환은 주민 참여를 바탕으로 한 에너지 민주주의와 함께 갈 때 지속성을 가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에너지 민주주의를 실현하기에 가장 유용한 조직 형태가 바로 협동조합이다. 에너지 전환을 핵심으로 하는 그린 뉴딜이 사회적 경제조직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주민 참여형으로 ‘가상발전소’ 건설을 추진하는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의 주민들과 학생들이 에너지 자립 활동을 하는 마을기업인 ‘에너지슈퍼마 ’ 앞에 모여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한겨레
주민 참여와 이익 공유로 주민 수용성 높여
실제 2012년 국내에 처음으로 햇빛발전협동조합이 만들어진 이래 태양광 발전에 참여하는 협동조합은 점점 늘고 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협동조합 목록에서 ‘햇빛발전’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76곳, ‘태양광’으로 검색하면 71곳이 나온다. 이 가운데 시민참여형 에너지 협동조합(시민햇빛발전소)은 50곳가량인 것으로 추산된다.
시민햇빛발전소는 다수의 시민들이 낸 출자금으로 공공기관의 건물 옥상 등을 임대해 운영하는 태양광 발전소를 의미한다. 수익금은 배당금 형태로 시민들에게 돌려준다.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분명한 지향점을 갖고 발전소를 운영하며, 에너지 시민의식을 높이기 위한 교육과 캠페인 등의 활동을 한다. 2011년 일찌감치 ‘탈원전’을 선언하고 에너지 전환에 나선 독일은 850여 개의 지역협동조합이 재생에너지 생산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2018년 기준으로 독일에서 생산된 전체 전력 중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은 40%에 육박한다.
주민 참여와 이익 공유는 재생에너지 시설 유치를 둘러싼 갈등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외지 자본이 대규모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시설을 설치하려 할 때 지역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히기 쉬운데 계획 단계부터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익을 나눌 경우 주민 수용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전남 신안군 사례가 대표적이다. 신안군은 2018년 10월 국내에선 처음으로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 공유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자라도 태양광발전소 건립을 둘러싸고 발전사업자와 주민 사이에 갈등이 불거지자 신안군이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꾸려 사업에 참여하는 방안을 추진한 것이다. 조례는 공적 자원인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얻은 개발이익을 군민들이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주민과 신안군이 발전사업 지분의 30% 이상을 갖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조례에 따라 ‘안좌면 신재생에너지 주민·군 협동조합’이 꾸려졌다. 신안군은 자라도의 태양광발전소(67MW 규모)가 준공되면 주민 1명당 연간 400여만 원의 소득이 창출될 것으로 전망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7월 국무회의 자리에서 “해상풍력과 태양광 등 그린에너지 사업은 지역의 새로운 먹거리가 되고, 지역 밀착형 일자리를 창출하며 주민 참여형 이익공유 방식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새로운 소득을 보장하는 기회를 만들어줄 것”이라며 신안군이 추진하는 ‘신재생에너지 이익공유제’를 예로 들기도 했다.
▶성대골 주민들이 성대시장 상인회 옥상에 설치된 태양광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 한겨레
지역 주민 의사 반영해 사전에 갈등 예방
재생에너지 강국인 덴마크의 세계적인 해상풍력발전단지 미들그룬덴도 사업 시작 단계부터 지역 주민의 의사를 반영해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고 주민들을 사업에 참여시켰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이 만든 풍력발전협동조합이 큰 역할을 했다. 소음을 비롯한 환경문제, 경관 훼손, 어업에 미칠 여향 등을 꼼꼼하게 고려했다. 협동조합이 전체 발전 터빈 중 절반의 소유권을 갖고 있으며 전력 판매 수익을 주민들에게 배분한다. 조합원 수가 8600여 명에 이른다.
김병권 정의정책연구소 소장은 “에너지 전환을 위해선 재생에너지 비율을 앞으로 10년 안에 현재의 최소 10배로 늘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주민들이 살고 있는 생활권 반경에서 소규모 재생에너지 시설을 곳곳에 설치해야 한다. 단순히 주민들의 공감과 동의를 얻는다는 차원을 넘어서 주민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고 이해관계 내부에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동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또 “분산형이 특징인 재생에너지를 만드는 데 사회적 경제가 어떻게 지역과 결합하고 참여할 것인지가 관건”이라며 지역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이익 배분으로 풍력발전을 활성화한 덴마크 사례를 참고하자고 제안한다. 덴마크는 ▲지역 이해관계자가 50% 이상 소유 ▲의사 결정에 지역 주민 의견 반영 ▲이익의 절반 이상 지역 환원 등을 풍력 사업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이종규 <한겨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