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윤섭 기자
손동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전문위원
주 52시간 근로제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비교적 원활하게 정착되는 양상이다. 하지만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 확대 적용 문제를 놓고 경영계와 노동계가 이견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20일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산하에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를 발족하고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위원회는 이달 안에 이해당사자 간 결론 도출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정부는 위원회의 논의 결과를 반영해 법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탄력근로제는 주 52시간 근무를 별도로 정한 단위기간에 맞추는 제도다. 예를 들어 단위기간이 2주일인 경우, 첫 주에 주 58시간을 일했다면 다음 주에는 46시간만 일해 평균 근무시간을 주 52시간에 맞추는 방식이다. 현행 탄력근로제는 단위기간이 최대 3개월(12주)이다. 경영계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현행 2주·3개월에서 6개월·1년으로 확대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장시간 노동과 임금 감소를 이유로 반발하고 있어 접점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위클리 공감>은 1월 7일 노동시간제도개선위 간사를 맡고 있는 손동희 경사노위 전문위원에게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의 구체적인 쟁점과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손 위원은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사가 윈윈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단위기간이 탄력적 근로시간제 핵심”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라는 이름이 생소하다. 노동시간 제도 개선이란 무엇을 의미하고, 위원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노동시간제도개선위는 지난해 11월 22일 경사노위 출범과 동시에 개최되었던 제1차 본위원회 의결을 통해 지난해 12월 20일 발족한 의제별 위원회이다. 논의 의제의 범위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비롯한 ‘노동시간 관련’ 의제이다. 노동시간은 노동시간 그 자체뿐만 아니라 임금을 비롯한 다양한 주제와 밀접히 상호작용하는 의제로 노동조건의 핵심 요소이다. 따라서 노동시간 제도 개선이란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포함한 노동시간 관련 의제의 제도적 개선을 의미한다. 노·사·정·공익 등 총 9명으로 구성된 노동시간제도개선위의 역할은 조직 경쟁력과 노동자의 삶의 질을 동시에 고려하는 합리적 대안을 집중 논의를 통해 도출하고 그 결과를 국회 입법과정으로 연계하는 것이라 하겠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흔히 ‘탄력근무제’라고 표현하는데 같은 의미인가?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노동시간’의 탄력적 활용을 통해 기업이 수주, 납기, 업무 등의 계절·주기적 변동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로 근로기준법 제51조에서 명시하고 있는 법상 용어이다. 특정 기간(단위기간)의 평균 노동시간이 법정 노동시간에 부합할 경우 그 단위기간 내에서는 기준을 넘어서는 초과 노동이 가능하다. 따라서 ‘단위기간’을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탄력적 근로시간제에서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반면 ‘탄력근무제’는 실무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말 그대로 ‘근무’를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제도이다.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와는 의미가 다르다. 어감이 비슷해 혼용되기도 하는데 구분할 필요가 있다. 고용노동부의 ‘유연근무제’ 가이드라인에서는 ‘선택적 근무제’ ‘재량근무제’ ‘원격근무제’ ‘재택근무제’ 등을 제시해놓고 있기도 하다. 이들 각각은 노동시간뿐만 아니라 노동이 이루어지는 장소 등 근무의 유연성을 배경으로 하는 제도들이다.
▶새해 첫 출근길에 오른 시민들이 1월 2일 오전 서울 광화문 네거리 일대에서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한겨레
“노동자 건강권과 임금 보전 맞닿아”
-경영계가 탄력적 근로시간의 단위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 또는 1년으로 연장하자는 주장을 내놓는 근거는 무엇인가?
=경영계는 주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를 적용할 경우 시장 변동이나 수주 경쟁, 기술 개발과 계절적 수요 등 기업의 내·외부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을 근거로 단위기간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또한 기업이 1년 단위로 사업계획, 인력 운영, 투자계획 등을 수립하고 있다는 점과 분야에 따라 성수기에 계약직 등 비정규직을 대체 투입하는 문제는 숙련도 등의 요인으로 어렵다는 점을 들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연속공정과 주문생산 방식의 철강과 건설산업, 집중노동이 요구되는 IT나 게임업의 기술개발 부문 등을 제시하고 있다.
-노동계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대해 장시간 노동에 따른 산업재해와 노동자의 건강권을 우려한다. 또 임금 감소분에 대한 보전 문제를 제기하면서 ‘포괄임금제’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의 확대는, 장시간 노동에 따른 노동자의 건강권 문제와 연장근로수당을 포함하는 임금 보전 문제와 맞닿는다. 현행 단위기간 3개월 기준의 경우 1주 최대 64시간 운영이 가능하다. 단위기간을 6개월 또는 1년으로 확대할 경우 최대 노동시간 운영이 그만큼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과로사에 해당하는 업무상 뇌심혈관질환 인정 기준은 12주 평균 60시간 또는 4주 평균 64시간 이상이다. 단위기간 3개월 이상인 경우라면 이에 해당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주 40시간, 일 8시간 근무 상황에서 연장 노동을 하게 된다면 연장근로수당이 발생한다. 그러나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 시 단위기간 평균 노동시간이 기준이 되어 별도의 연장근로수당이 발생하지 않아 그만큼 임금손실이 생길 소지가 있다.
‘포괄임금제’는 법상 명기된 바 없는 제도이다. 노동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 임금 산정의 편의를 위해 미리 정해진 수당을 급여에 합산해 지급하는 방식이 대법원 판례에 기초해 허용된 이후 이른바 포괄임금제가 산업현장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돼왔다. 문제는 초과 노동에 따른 수당 없이 장시간 노동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최근 대법원 판결은 이 같은 포괄임금제를 매우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추세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포괄임금제는 노동시간의 체계적 관리가 전제되어야 할 필요를 보여준다. 노동계가 연장근로수당을 이슈로 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임금 저하 우려와 포괄임금제의 오남용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고 있는 배경이다.
“제도의 도입 절차 개선 요구 높아”
-경영계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도입이 쉬워지도록 ‘취업규칙’ 변경 또는 ‘근로자 대표와의 합의’ 조건 등의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현행 탄력적 근로시간제 ‘2주 이내’의 단위기간 적용은 ‘취업규칙’ 변경으로 가능하며, ‘3개월 이내’의 단위기간은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합의’가 필요하다. 취업규칙 변경의 경우에도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적용이 노동조건의 ‘불이익 변경’으로 판정될 경우라면 ‘과반수 노조’ 또는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에 경영계는 단위기간 3개월까지는 취업규칙 변경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하되, 불이익 변경이 아님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한편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합의에 대해서도 개별 노동자 동의와 해당 부서, 팀 단위 대표와 협의를 통해 도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전체 근로자 대표’ 또는 ‘노조’가 반대할 경우 원천적으로 제도 적용이 어렵다는 취지이다. 이 밖에 절차 간소화에는 단위기간 내 ‘근로일’과 ‘근로일별 근로시간’에 대한 사전합의 요건을 ‘기본계획 협의’ 수준으로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단위기간 내 노동시간의 조정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이다.
-지난 해 12월 20일 노동시간제도개선위 1차 회의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 활용 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조사대상 기업 중 도입 비율이 3.2%에 그쳤고 미도입 기업 중 향후 도입 계획이 있는 비율도 3.8%에 불과하다. 또 제도 도입 사업체의 75.7%는 현행 제도로도 근로시간 단축에 대응이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이런 상황에서 탄력적 근로제 단위기간의 확대가 필요한 것인가? 실태조사 결과에 다른 의미 있는 내용이 있다면.
=이번 실태조사는 2436개 사업체의 인사노무 담당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함께 집단심층면접(FGI)을 통한 정성적 조사 결과를 포함하고 있다. 전수조사가 아니라는 측면에서 조사 결과에 대한 이해당사자의 입장과 해석은 온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예컨대, 노동계에서는 제도 도입 또는 도입 계획이 저조한 상황에서 단위기간 확대가 불필요하다는 주장이 가능한 반면, 경영계에서는 제도 도입 후 95%의 사업체가 임금 변화가 없었다고 응답했다는 점을 들어 노동계의 임금 저하 우려가 기우라고 주장할 수 있다. 실태조사에서 나타난 또 다른 특징 중의 하나는 제도 미활용 사업체 중 개선점에 대해 제도의 도입 절차 개선 요구(근로일별 근로시간 설정 유연화 46%,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합의 요건 완화 35%)가 상대적으로 높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합의 못해도 다수결 결정 아닌 구조 ”
-경영계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개선을 요구한 것이 계기가 돼 노동시간제도개선위가 발족했고, 현재 노동계 몫 위원 2명에 민주노총이 불참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노동자에게 불리한 결론이 도출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둘러싼 노사의 이해관계와 입장 그리고 핵심 쟁점이 이미 사회적으로 공론화되었다는 점과 논의 결과가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에라도 다수결의 원칙으로 결정되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현재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계 위원의 전문성을 고려할 때 노동계 위원의 1명 부족 그 자체가 노동계에 불리한 결론 도출로 연결될 것이라는 추측은 무리다. 더욱이 예정된 집중 논의 기간 중 민주노총의 참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노동계 위원 1명의 추가 선임을 예정하고 있어, 위원 구성의 불균형 문제가 결론의 유불리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위원회가 지난해 12월 20일 발족했는데 올해 2월 말까지 운영하되, 국회 입법 일정을 감안해 1월 말까지 이해당사자 간 결론을 도출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일정이 상당히 촉박한데 합의 도출이 가능하겠나.
=쟁점의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의 마당으로 위원회는 기본적으로 합의를 지향하는 협의적 성격을 갖는다. 사회적 대화가 사회적인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반드시 어떤 결론에 도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의제의 성격에 따라서 결론에 이르지 못할지라도 논의 과정의 사회화 그 자체가 의미를 지닐 수도 있다. 노동시간제도개선위에서 핵심 쟁점으로 다루고 있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관련 안건들은 이미 대부분 공론화한 상황이다. 비록 논의 시한의 제약 속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노사의 승승(win-win) 게임을 위한 결단을 기대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위원회의 발족 배경이 그렇듯이 논의 프로세스는 2월 임시국회 일정과 맞물려 있다. 1월 말까지 의미 있는 결론 도출을 위한 노력 이후에는 그 결과와 무관하게, 그대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로 전달될 예정이다.
한광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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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