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육전문가 김선호 교사의 ‘스마트폰 중독’ 처방
‘도파민 중독’의 시대. 특히 아이들의 스마트폰 중독 양상이 심상찮다. 만 10~19세 청소년 10명 중 4명, 만 3~9세 유아동 4명 중 1명은 ‘스마트폰 과의존’이다. 10대의 하루 평균 인터넷(모바일·PC) 이용 시간은 479.6분에 이른다(2022 10대 청소년 미디어 이용 조사, 한국언론진흥재단). 하루의 약 8시간을 화면 속 세상에 접속한 상태로 사는 것이다. 태어난 순간부터 ‘손 안의 세계’에 골몰하는 요즘 아이들을 일컫는 ‘호모 스마트포니쿠스’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특히 1분 이내의 짧은 영상인 ‘쇼트폼’이 대세가 되면서 더 즉각적인 자극을 원하는 도파민 중독에 빠지기도 쉽다. 온라인 동영상 이용자 중 70% 이상이 쇼트폼을 보는데 그중에서도 청소년과 유아동은 가장 자제력이 떨어진다. 10명 중 3명이 스스로 이용시간을 조절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김선호 교사(서울 유석초)는 스마트폰 과의존의 가장 큰 문제로 ‘어휘력 저하’를 꼽는다. 현직 초등학교 교사이자 초등교육전문가인 그가 현장에서 직접 피부로 느끼는 현상이다. “스마트폰 세상에선 전 세계 어떤 정보든 접할 수 있지만 외려 청소년들의 기초지식은 줄고 갈수록 어휘력은 더 떨어지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교과서를 읽고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학생이 드물 정도”라고 했다.
그가 지적하는 또 다른 문제는 스마트폰 과사용이 학습저하는 물론 교우관계 악화와 학교폭력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언뜻 스마트폰은 소통의 도구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 자신의 관심사와 한정된 네트워크에만 몰두하는 한 지식과 관계가 확장되기는커녕 ‘그들(자신)만의 리그’를 더욱 공고히 하는 악순환을 초래한다는 설명이다.
이에 김 교사가 스마트폰 중독에 대항해 내민 처방전은 부모와의 대화, 독서, 자존감이다. 그는 앞서 ‘초등 자존감의 힘’, ‘내 아이는 괜찮을까’, ‘초등사춘기, 엄마를 이기는 아이가 세상을 이긴다’ 등의 저서를 통해 꾸준이 이 같은 내용을 강조해왔다. 개인 유튜브 채널 ‘김선호의 초등 사이다’에서는 ‘초등 학부모가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학교폭력를 당한 아이, 친구관계를 힘들어하는 아이, 배움이 느린 아이 등 저마다의 고민을 지닌 아이들과 부모들을 위해 교실의 지혜를 나눈다. 당장 오늘도 뺏고 뺏기는 ‘디지털 전쟁’을 치르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먼저 초등학생의 스마트폰 사용에 관한 궁금증을 물었다.
아이들이 스마트폰에 중독되기 쉬운 이유는 뭔가?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뇌는 많은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즉 뇌가 스마트폰 사용을 편안하게 느끼기 때문에 쉽게 중독되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초고속인터넷이 광범위하게 보급돼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보다 스마트폰 접근성이 훨씬 좋다. 두세 살짜리도 손가락으로 화면을 밀고 당기면서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나. 중독의 시작이다.
스마트폰 과사용으로 인한 가장 큰 문제는?
스마트폰 중독에 이르면 뇌의 모양이 달라진다. 마약에 중독된 사람과 스마트기기에 중독된 사람의 뇌가 비슷한 모양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모두 한번 중독되면 이전 상태로 되돌리기 힘들다는 뜻이다. 온라인 세상에는 수많은 정보가 넘쳐난다.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문화, 역사, 정치 등에 대한 기초지식이 넓어져야 하는데 정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자신의 관심사에만 머물도록 온라인 세계의 알고리즘이 짜여 있는 탓이다. 더욱이 초등학생의 경우 또래 아이들과의 활동에만 머무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고의 확장이 일어나기가 더욱 어렵다.
학교 현장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초등시기는 생애주기에서 가장 많은 책을 읽는 때다. 문제는 스마트폰을 손에 쥐는 순간 독서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든다는 거다. 우리나라에 스마트폰이 보급된 게 10년이 좀 넘는데 초등학생의 독서량이 급격이 저하된 때가 이 시기와 맞물린다. 독서량이 줄면 어휘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학교에서 토론수업을 해보면 토론에 참여하는 아이는 대여섯 명에 불과하다. 질문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도 있다. 가령 1970년대 우리나라 조선산업이 발달했다고 하면 ‘조선시대 산업이 뭐지?’라고 묻는 식이다. 학생 간 어휘력 격차도 심해 또래 아이들끼리도 대화가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면 스마트폰은 언제 사주는 게 적절한가?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뇌의 용량은 태어난 후 10년 사이에 결정된다. 이 기간에는 뇌에 다양한 자극을 줘야 하는데 스마트폰을 볼 때는 뇌가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는 탓에 뇌의 성장이 더디다. 따라서 스마트폰이 뇌 발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시기에는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나는 12세 이전에는 스마트폰을 사주지 말라고 말한다. 청소년에게 술이나 담배는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지 않나. 그러면서 스마트폰을 한두 시간 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초등학생에게 담배 한 대, 술 한 잔은 괜찮다고 하는 것과 같다.
내 아이만 사용을 막기 어려운 환경 아닌가?
아이들은 스마트폰이 없으면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다며 부모를 설득한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자녀의 따돌림이 걱정된다면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아야 한다. 청소년의 따돌림은 누리소통망(SNS)에서의 괴롭힘(‘사이버 불링’) 등 스마트폰을 통해 오히려 강화된다. 스마트폰이 없어도 학교생활을 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온라인 접속이 필요하다면 가정에서 공용 태블릿PC를 거실이나 주방에 두고 사용하면 된다.
이미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사실상 자녀와 약속한 사용 시간은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 접근이 제한된 정보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접할 수 있다. 애초에 ‘관리’라는 게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는 것이 답이지만 이미 사용을 허락했다면 접속한 사이트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SNS에서 누구와 대화하고 무슨 사진을 전송했는지 등을 살펴야 한다. 아이가 집 밖에 나갈 때 부모에게 알려야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온라인 세계에서 누구를 만나고 어떤 정보를 접하는지 부모가 알권리가 있다. 자녀도 매번 허락을 받기는 번거로우니 언제든 부모가 점검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스마트폰 과사용이 자존감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한 이유는 뭔가?
자존감, 즉 자아 존중감의 바탕은 자아 존재감이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느끼는 자아 존재감이 있어야 자아 존중감을 형성할 기둥이 생긴다. 그런데 스마트폰에 계속 노출된 아이들은 그런 감각을 느끼지 못한다. 스마트폰은 시선이 없고, 상호작용에 의한 응답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온라인 세계에서의 ‘검색’은 ‘사색’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즉각적으로 답을 주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뺏는다.
그러면 스마트폰 대신 무엇을 줘야 할까?
상위 1% 초등학생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3세가량부터 부모가 매일 책을 읽어줬다는 거다. 유아기부터 책을 매일 읽은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알고 있는 단어 개수가 2000~3000자 정도 차이가 난다. 언어를 세상을 보는 창이라고 하지 않나. 책을 많이 읽은 아이에게는 세상을 보는 창문이 3000개 더 많다는 뜻이다. 유아기부터 매일 두 시간 이상 책을 읽은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면 수업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할 뿐 아니라 뭘 해도 집중력이 좋다.
시간 내 책을 읽어주기 어려운 부모도 많은데.
저녁에 TV 뉴스를 함께 보는 것도 좋고 부모가 회사에서 겪은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좋다. 많은 이들이 자녀에게 누구와 놀았는지, 뭘 먹었는지 ‘질문’하는 데 몰두한다. 대신 부모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다. 회사에서 누구와 어떤 일을 하는지, 부모는 어떤 고민을 갖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줌으로써 세상을 간접경험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배경지식이 쌓이면 어느 순간 아이는 스스로 질문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2025년부터 초등학교에 인공지능(AI)교과서가 전면 도입된다. 스마트기기 과의존을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AI교과서 도입은 찬반을 논할 수 없는, 디지털전환 시대에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다. 장점은 개인별 학습능력에 따른 맞춤 교육이 가능하다는 거다. 반면 아이들이 스마트 기계에 노출되는 시기가 빨라진다는 문제가 있다. 사용방법에 대한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 아이들은 10세 이전엔 규칙을 알려주면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 그 시기에 디지털 윤리에 관한 교육을 집중적으로 해야 한다.
이밖에 초등교육에서 부모가 반드시 챙겨야 할 일은?
초등교육의 최종 목표는 ‘자녀와의 분리’다. 초등학교 졸업 전까지 아이 스스로 공부할 동기를 찾고 필요한 공부를 알아서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는 얘기다. 공부정서가 없어 부모가 끌고 가야 하는 아이들은 어떻게든 대학에 진학한다고 해도 주체적인 성인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자녀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쯤에는 부모 나이가 45~50세 정도다. 부모도 삶의 목적을 새로 세워야 하는 시기다. 이때 자녀와 제대로 분리되면 아이도 자유롭고 부모도 건강하게 인생 2막을 시작할 수 있다.
조윤 기자
박스기사
2023년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3월 발표한 2023년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전국 1만 가구 대상)에 따르면 우리나라 스마트폰 이용자 중 23.1%가 과의존 위험군(고위험군+잠재적위험군)인 것으로 드러났다. 스마트폰 과의존이란 ▲일상에서 스마트폰이 가장 우선시되고 ▲이용량을 조절하는 능력이 감소하며 ▲신체·심리·사회적 문제를 겪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연령별 스마트폰 과의존 비율은 유아동(만 3~9세) 25%, 성인(만 20~59세) 22.7%, 60대 13.5%였다.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인 연령은 청소년(만 10~19세)으로 40.1%로 조사됐다.
아울러 온라인 동영상 이용자 중 73.5%는 1분 남짓 짧은 길이의 영상을 의미하는 ‘쇼트폼’을 이용하고 있었다. 이 중 23%는 이용시간 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청소년(36.7%)은 전 연령대 중 가장 어려움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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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