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뇌성마비 딸 위해 무릎 꿇은 엄마 임수정 씨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별 헤는 맘으로 없는 길 가려네.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길 가려 하네.”
2019년 10월 인천 남동구에서 열린 제1회 장애인 노래자랑 현장. 아홉 살 고담희 양이 워커(장애인 보조장비)를 짚고 무대에 올랐다. 담희 양이 노래를 부르는 내내 엄마 임수정(52) 씨는 무릎을 꿇은 채 딸의 허리를 붙잡고 있었다.
미숙아였던 담희 양은 태어날 때부터 경직성 양하지 뇌성마비를 앓고 있다. 보조장비 없이는 설 수 없고 장비에 지탱해 선다 해도 금방 자세가 불안정해진다. 엄마는 무대에 선 딸이 끝까지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버팀목이 돼주겠다는 생각으로 함께 무대에 올랐다. 딸의 무릎에서 힘이 빠지는 게 느껴지면 골반을 붙잡은 손에 힘을 더했다. 딸은 엄마의 신호를 알아채고 다시 몸을 세워 소리를 냈다. 엄마는 딸이 부르는 ‘꿈꾸지 않으면’을 조용히 따라 불렀다.
2024년 또 다른 대회의 무대에 선 담희 양은 여전히 엄마와 함께였다. 엄마는 딸이 넘어질까 허리를 부둥켜안아 받쳤고 딸은 엄마의 힘을 받아 목청껏 노래했다. 이 영상은 온라인에서 조회수 수백 만 건을 기록했다. 5월 말 자택에서 만난 모녀는 “우리 가족에게 대박 사건이 터졌다”며 웃었다.
엄마가 담희 양의 허리를 부둥켜안고 무대에 선 영상이 화제가 됐어요.
누리소통망(SNS)을 전혀 하지 않아서 영상이 올라간 지도 몰랐어요. 대회 MC를 맡았던 개그맨 이정규 씨가 영상을 좋은 곳에 쓰고 싶다며 동의를 구하길래 강의용인가보다 했어요. 뒤늦게 알고 깜짝 놀랐죠. 많은 분들이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무대에서 노래하는 딸을 보면 어떤가요?
담희가 무대를 통해 용기를 얻고 세상에 한 발짝 나아갔으면 해요. 처음 무대에 서게 된 이유도 그래서였어요.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이상행동을 보일 만큼 힘들어하더라고요. 담희한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인천의 동심노래자랑(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의 통합 문화축제) 공고를 보게 됐어요. 그 대회를 계기로 방송 프로그램에서 출연 요청도 받고 또 다른 대회에도 나가게 됐어요.
담희 양에게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아이유와 함께 무대에 서보는 것이 꿈이다”라고 답했다. 담희 양은 요즘 아이유의 노래 ‘자장가’를 자주 듣고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너무나 사랑하지만 다신 볼 수 없는 사람이 꿈에 나타나 자장가를 불러주며 인사하는 노래예요. 네가 나를 잊어도 괜찮으니 더 힘들어하지 말라고 이 밤 동안 편안히 잠들면 좋겠다고 해요. 상대를 얼마나 사랑해야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지 들을 때마다 슬프고 감동받아요.”
담희 양에게 누굴 가장 사랑하는지 묻자 “너무 당연해서 말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담희 양은 엄마를 ‘이불’에 비유했다. 매일 함께 하다보니 소중함을 잃고 살지만 고단할 때면 꼭 찾게 되는 귀한 존재라고 했다. 딸의 말을 듣던 임 씨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임 씨는 2녀 1남을 뒀다. 큰딸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고 담희 양이 막내다. 그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두 딸을 복지관과 학교에 바래다주고 데리고 온다. 아무리 바빠도 춤을 좋아하는 큰딸과 노래를 좋아하는 막내딸을 위한 일정은 절대 잊지 않는다.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입원 기간을 단축하면서까지 뒷바라지를 했다. 두 딸이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게 살아가기를 바라지만 모녀가 마주해야 하는 현실은 녹록지 않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여전한가요?
큰딸을 헬스장에 보내려고 갔더니 장애아라서 등록이 안된다고 했어요. 우리가 밖에 나가면 주변에서 저를 엄청 불쌍하게 보는데 그것도 불편해요. 누구나 다름을 갖고 있어요. 밖으로 드러나느냐 안 나느냐의 차이일 뿐이죠. 하지만 그런 마음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어도 매일 한계에 부딪혀요. 한계를 극복하려고 하면 더 힘이 들더라고요. 굳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맞추면서 살지 않으려고 해요.
담희 양은 태어난 직후 장애 판정을 받았다고요.
아이에게 뇌출혈이 일어났고 뇌성마비 진단이 내려질 것 같다는 소리에 번개를 맞은 것 같았어요. 의사가 그다음에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충격이었죠. 담희를 집에 데려오고 2주 정도 지났을 때예요. 애한테 분유를 줘도 손을 흔들어봐도 반응이 없더라고요. 두 딸을 데리고 세상을 떠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소파에서 아이를 안고 ‘마지막 분유’라는 생각을 하면서 울고 있었어요. 갑자기 담희가 목을 가누면서 눈을 정확히 맞췄어요. 2㎏도 안되는 그 작은 아이가 저를 바라보는 순간 정신이 바짝 들었어요. 나부터 마음을 굳게 먹어야겠다, 우리 애들을 잘 키워보자고 마음먹었어요. 세상에 기적이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최선을 다해 달려왔던 것 같아요.
옆에서 엄마의 말을 듣고 있던 담희 양에게 이 이야기를 알고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는 처음 들었어요. 그때 엄마와 눈을 맞춘 저에게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엄마 입장에선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라는 말이 딱 우리 엄마 이야기예요.”
임 씨는 “2~3년 전만 해도 아이들 이야기를 하면 눈물부터 흘렀다”고 말했다. “둘째 아들은 안 아프니 괜찮겠다”고 위로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들 또한 아픈 두 딸 사이에서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임 씨는 “아이들은 제가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준 존재예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다보면 밝은 날도 오겠거니 생각하고 살아요”라고 말했다.
담희 양이 거들었다. “저는 엄마의 눈을 보면 엄마가 지금 얼마나 힘든지 느껴져요. 눈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가끔은 엄마의 고단함을 알면서도 더 장난을 쳐요. 언젠가 엄마가 ‘담희야 너무 일찍 자라지 않으면 좋겠어. 빨리 성숙하지 말아줘’라고 했거든요. 제가 어린아이처럼 구는 게 오히려 엄마를 덜 아프게 하는 것 같아요.”
담희 양은 처음 만난 기자에게 환히 웃으며 먼저 질문을 던지는 외향적인 소녀다. 좋아하는 연예인과 과목에 대해 얘기할 땐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밝은 얼굴로 얘기를 하다가도 엄마의 표정을 살피고 행여 슬퍼 보이면 “괜찮아”라며 등을 토닥였다. “세상에 조금 더 천천히 나오지 그랬어”라는 엄마의 얘기에 담희 양은 “엄마가 보고 싶어서 일찍 나왔지”라고 말했다. 담희 양에게 물었다.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를 때 떨리지 않아요?
전혀 무섭지 않아요. 오히려 관객이 많을수록 재밌어요. 엄마 유전자를 많이 닮은 것 같아요. 엄마가 흥이 넘쳐서 같이 노래방에 있으면 제 기가 빨릴 정도거든요(웃음).
엄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요?
최근 들어 엄마한테 고맙다는 표현을 많이 못했어요. 너무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말 못하고, 너무 사랑하면 사랑한다는 말이 잘 나오지 않잖아요. 엄마는 제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고마운 사람이라서 더 표현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가요?
제 이야기를 담백한 음악으로 풀어내고 싶어요. 꼭 무대에 오르는 일이 아니어도 좋아요. 죽을 때까지 음악을 통해 무언가 해낼 수 있는, 좋은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임 씨는 “담희가 꿈을 이룰 수 있는 데까지 도와줄 것”이라고 말했다. 크면서 꿈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이 모든 과정이 담희의 성장에 단단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 믿고 있다. 임 씨의 소망은 ‘아이들이 스스로 나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고 꽉 찬 마음으로 구김살 없이 살아주는 것이다. 담희 양은 올겨울 수술을 앞두고 있다. 지팡이라도 짚고 혼자 설 수 있게 만드는 게 목표다. 임 씨는 딸을 향해 말했다.
“엄마는 항상 네 뒤에 있을 테니까 두려워 마. 엄마가 너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줄 거야.”
이근하 기자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뉴스레터 구독신청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