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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페이지 내용 : 1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 헌책방과 네잎클로버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계절을 오독하 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여행이든 나들이 든 밖에서 활동하기 가장 좋은 시기에 가 만히 책을 붙들고 있는 건 인간적이지도, 자연스럽지도 않다. 미학적인 언어처럼 아름답지도, 무한한 상상처럼 자유롭지 도 않다. 가을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그 투명함이 어디서 오는지, 왜 잠자리가 코 스모스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지 알고 싶다면 잠시 책을 덮어두자. 가을은 방학 으로 생각하고 대신 미세먼지가 극성인 봄, 태양이 이글거리는 여름, 칼바람이 부 는 겨울을 독서의 계절로 명명하자. 가을 에 야외 활동도, 독서도 포기할 수 없다 면 전국 각지의 책방을 거점으로 여행을 떠나는 게 절충안이 될 수 있다. 제주로 이주하며 소장하고 있던 책들 을 대부분 기부하거나 폐기했다. 삶과 문 학에서 떼어 낼 수 없는 영원한 주제는 아이러니인데, 책을 처분하고 나니 책이 다시 필요하게 됐고, 다시 읽어야 했고, 몰랐던 책의 가치를 다시 발견하게 됐다. 처음에는 책을 대량으로 구입하기 위해 헌책방을 찾았는데, 글이 잘 써지지 않아 오래된 책들을 뒤적이며 이야기를 찾았 는데, 정작 이야기는 책 밖에 있었다. 책 내용과 무관하게 책방 주변에서 하나둘 씩 이야기가 펼쳐졌다. ‘동림당’은 제주에 있는 헌책방 중에 압 도적으로 많은 책을 보유하고 있다. 그만 큼 관리 요소가 많은 곳이다. 유쾌한 장 년의 남자, 무슨 얘기든 막힘없이 이어가 는 사장님에게서 오랜 시간 책방을 지탱 해 온 내공이 전해졌다. 지금까지 그 어떤 책에서도 보지 못한, 이성 중심 사고 체계 의 근간을 뒤흔드는 말까지 듣게 됐다. “와, 책이 엄청 많네요?” “독서에는 책이 좋죠.” “…….” 이곳에 진열된 책에서 비상금으로 추 정되는 지폐가 다량 발견되기도 했는데, 누군가 돈이 든 책을 팔았다는 것도 기막 히고, 그걸 발견한 손님이 판매자를 찾아 달라고 스스로 밝힌 것도 대단했다. ‘구들책방’은 함덕해수욕장 인근에 위 치해 있다. 여행자들이 유명 관광지에 와 서도 책방을 찾는다는 걸 알려준 곳이다. 이곳에서 양귀자의 천년의 사랑 을 구 입했는데, 책 속지에 명문 의과대학 이름 과 학생 이름이 적혀 있었다. 문득 그것이 사실일까, 아니면 그저 자신의 바람을 새 긴 것일까 의문을 갖다 포털 사이트에 그 이름을 검색했는데, 학생은 20여 년의 시 간이 흐른 뒤 모 의과대학 교수가 되어 있 었다. ‘그늘중고책방’은 그야말로 소규모 책 방이지만 마음이 가는 곳이다. 연로한 할 머니가 작은 공간을 지키고 있는 것도 마 음이 쓰였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 린 시간을 찾아서 를 이곳에서 찾았다. 한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발견해 보물 을 찾은 기분이었는데, 책 속에 짙은 초 록을 간직한 네잎클로버가 들어 있었다. 이게 무슨 행운인가 싶어 휘파람이 절로 나오던 그때, 가만 보니 그것은 네잎클로 버가 아닌 세잎클로버였다. 왜 책 속에 들 어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흔하디 흔한 세 잎클로버였다. 나는 세잎클로버 잎 가운데 하나를 조 심스럽게 둘로 나눴다. 헌책방이 오래 유 지되길 소원하며 네잎클로버의 행운을 가장 오래돼 보이는 책 속에 남겨놓았다. 그리고 이야기를 가져왔다.  우희덕 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 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벗어나 본 적 없는 도시를 떠나 아무것도 없는 제주 시골 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다. 제주 금오름에서 가을을 나는사람들│우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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