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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페이지 내용 : 1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 여름에 만난 사람들 1.제주국제공항과 인접한 아름다운 해안 도로. 제주시 도두동에 있는 무지개해안 도로를 걷는다. 한 청년이 무슨 영문인지 나를 반기며 달려오다시피 한다. 어리둥 절해하는 내게 그는 거침없이 무언가를 건넨다. 휴대전화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말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사진 촬영 이 그렇게 들뜬 목소리로 해야 하는 부탁 인가 생각하던 찰나 한 사람을 더 발견한 다. 몇 걸음 뒤에서 여자 친구로 추정되는 인물이 옷매무새를 분주히 가다듬고 있 다.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밝은 기운 이 뭔가 불길하다. 이 시간 이후부터 인류 최고의 발명품 은 셀카봉과 삼각대다. 하트! 뽀뽀! 제주 최고! 그들은 남들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없 이 커플이 할 수 있는 모든 포즈를 연출 한다. 지나친 애정과 풍부한 표현력을 과 시한다. 부끄러움은 누구의 몫인가. 족히 스무 장은 찍어준 것 같다. 그들에게는 그저 멍하니 걷는 내가, 혼자인 내가 사 진을 대량으로 찍어줄 적임자로 보인 것 이다. 먼바다를 바라본다. 내가 이러려고 모든 걸 내려놓고 제주에 왔구나. 산전수 전 다 겪으며 모진 세월을 견뎌왔구나. 나 를 불타오르게 만드는 건 한여름의 태양 만은 아닐 것이다. 2. 무더위와 짜증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시원함. 서귀포시 돈내코유원지 안에 위 치한 원앙폭포는 물놀이하기 좋은 계곡 이다. 제주에서 이곳보다 시원한 장소는 찾지 못했는데 마음속 번뇌가 한순간에 오그라들 정도로 물이 차갑다. 나는 발 목만 담그고도 득도할 것 같은 기분에 빠 져 있었고, 계곡 한가운데에는 겁 없는 아이처럼 첨벙이던 남자가 있었다. 처음 엔 긴가민가했지만 그였다. 제주 여행에 한창 빠져 있던 시절 종종 들르던 게스트 하우스 사장이었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뜻밖의 얘기를 들 었다. 그는 10년 넘게 하던 일을 접고 이 제 곧 서울로 올라간다고 했다. 누군가는 서울로 가고, 누군가는 제주로 온다. 누 군가는 제주에서 첫 여름을 보내고, 누군 가는 마지막 여름을 보낸다. 얼음장 같은 계곡물이 흐르는 원앙폭포에서 여름과 겨울이 교차했다. 3. 아이스크림 하나로 행복해질 수 있다 면 여름이 그렇게 괴롭지만은 않을 것이 다. 제주 동문시장에 자주 들르면서도 그 런 풍경은 처음이었다. 시장 안쪽 상점에 서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닌, 시장 주변 인 도를 따라 좌판을 벌여놓고 물건을 파는 할머니들. 주로 채소나 나물, 소소한 것 들을 취급하는 네다섯 명의 할머니가 붕 어 모양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으며 환하 게 웃는다. 제주 할머니들은 늘 무뚝뚝 한 이미지였는데 저렇게 밝게 웃는 모습 은 처음이다. 할머니들의 대화에서 웃음 꽃이 피어난다. 제주 방언이 상당수 섞여 있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데 행 복을 표현하는 언어라는 것은 알 수 있 다.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다.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나온다. 뜨겁던 여름이 녹아내린다. 결국 여름의 괴로움은 지나갈 것이고 행복은 찾아올 것이다. 언제 찾아올지 알 수 없는 커다란 행복을 기다리기보다 언 제든 찾아올 수 있는 작은 행복을 지나치 지 않는다면.  우희덕 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 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벗어나 본 적 없는 도시를 떠나 아무것도 없는 제주 시골 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다. 제주공항과 인접한 아름다운 해안도로. 제주 도두동 무지개해안도로│우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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