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말 가운데 하나가 ‘밥이나 한 번 먹자’다. 또 그런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을 나는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허투루 지나가는 말로, 편하게 하는 말 같아서 그렇다. 말하자면 진정성이 많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밥이나 한 번 먹자’고 말하는 것도 하나의 약속이다. 다만 언제, 어디서 먹자는 것에 대해서 약속이 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누구도 그 약속을 기억하지 않고 또 약속을 왜 지키지 않느냐고 채근하지도 않는다. 그냥 지나가는 말이고 인사치레로 한 말이라서 그런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언어습관도 조금 조심해서 들여다보고 고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좋은 인간관계에서 그렇게 지키지도 못할 말을 하면서 살아야 하고 또 그런 허위의식으로 우리 인생을 살아야 한단 말인가!
하기는 예전 우리가 어렸던 시절에는 밥 한 번 같이 먹는 일이 매우 중요한 일로 취급되던 때가 있었다. 그야말로 끼니 걱정을 하면서 살던 시절의 이야기다. 오죽했으면 아침마다 마을 길에서 만나는 어른들에게 고개 숙여 드리는 인사말이 ‘진지 잡수셨어요?’였을까.
이러한 사정을 요즘 젊은 세대들은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인 걸 어쩌랴. 생일날 잘 먹기 위해 사흘 굶는다는 말이 또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고 본다. 그렇다고 끼니 걱정을 하지 않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니지만 말이다.
가끔 나는 생각한다. 우리 삶에는 두 가지 태도나 생각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살기 위해서 밥을 먹는 삶. 또 하나는 밥을 먹기 위해서 사는 삶. 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밥을 먹는다면 모르되 밥을 먹기 위해서 산다면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나는 젊은 시절부터 먹기 위해서 사는 삶을 거부하며 살았다. 왜 살기 위해서 밥을 먹는 것이지 먹기 위해서 산단 말인가? 어디까지나 밥보다는 삶을 우위에 두면서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로부터 ‘밥 한 번 먹자’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귀에 거슬리곤 했던 게 사실이다.
정말로 우리 아버지만 해도 춥지 않게 살고 배고프지 않게 사는 삶이 당신 인생의 목표였던 분이다. 지극히 궁핍했던 시절, 우리의 선대들은 그렇게 살았다. 그 노력과 보람과 결과로서 오늘의 우리가 있게 됐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의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겠는가?
단호히 말하고 싶다. 우리는 스스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사는 삶이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춥지 않게 배고프지 않게 사는 것을 지상목표로 삼으며 살았던 우리 아버지의 삶에 대한 보답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이제는 우리 아무한테나 아무 때나 만나서 하는 허튼 인사로 ‘밥이나 한 번 먹자’는 말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것이 새해를 맞는 또 하나의 다짐이다.
나태주 시인_ 풀꽃 시인. 한국시인협회장. 100여 권의 문학 서적을 발간했으며 충남 공주에서 풀꽃문학관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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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