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성여대 주변을 걸으며 쓰레기를 줍고 있는 18학번 홍유진 학생과 21학번 유혜림 학생
환경과 건강 함께 챙기는 ‘플로킹’
코로나19 대유행 시대를 맞아 부지런한 습관이 하나 생겼다. 쓰레기 버리기다. 아침밥 먹고 한 번, 저녁밥 먹고 또 한 번. 하루에 적어도 두 번은 버려야 집에 쓰레기가 쌓이지 않는다. 삼시 세끼를 집에서 해 먹으면서 자주 장을 본 것이 원인 같다. 일주일에 평균 두세 번 식료품 꾸러미를 택배로 받는다. 때 되면 돌아오는 밥시간만큼이나 뒤돌아서면 쓰레기가 쌓인다.
쓰레기 버리기에 집착하기 시작한 시점은 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된 2020년 봄이었다. ‘집순이’ 생활을 하면서 문득 매일 분리수거로 버리는 플라스틱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내가 만들어내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뭔지 살펴봤다. 즉석식품 용기와 생수통이었다.
그래서 생수 대신 옥수수와 보리, 돼지감자를 끓여 마셨다. 식사도 2~3일치 밥과 반찬을 만들어 소분해 두고 먹는다. 노력해도 쓰레기는 늘었다. 온라인 장보기의 흔적인 포장재가 많아서다.
불편한 마음에 행동의 폭을 좀 더 넓혀보기로 했다. 쓰레기를 주우러 집 밖으로 나서 보기로 한 것. 달리면서 길거리의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Plogging)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플로깅은 이삭줍기를 의미하는 스웨덴어 플로카 웁(Plocka upp)과 달리기를 뜻하는 영어 조깅(Jogging)의 합성어로 전 세계적 관심사로 떠오른 환경운동이다. 우리말로는 줍깅(줍다+조깅)이라 한다.
달리기 말고 걸으며 쓰레기를 줍는 플로킹(Plocka upp+Walking), 수영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 스윔픽(Swimming+Pick up), 해변의 쓰레기를 줍는 비치코밍(Beach+Combing) 등 방법도 다양하다. 마침 덕성여대 사회봉사과에서 비대면 플로킹 행사를 열어 신청했다.
▶쓰레기는 남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더 많았다. 전봇대 뒤편에서 한 뭉치 주웠다.
쓰레기 주우며 달리고 걷는 사람들
준비물은 간단하다. 널브러진 쓰레기를 담을 봉투와 손을 보호해줄 장갑과 편한 옷차림이면 충분하다. 학교에서 쓰레기봉투와 쓰레기를 집을 때 사용할 목장갑과 집게를 준비해주기로 해 가방은 가벼웠다. 작은 물병에 마실 물을 담고 손수건과 모자를 챙겼다. 마스크도 필수다.
5월 26일 오후 2시. 덕성여자대학교 정문 앞 잔디마당에서 플로킹을 함께할 두 학생을 만났다. 18학번 홍유진 학생과 21학번 유혜림 학생이다.
“코로나19 때문에 나갈 기회도 많지 않잖아요. 그래서 신청했습니다. 이왕 나갈 거면 좀 뿌듯하고 동기 부여가 되는 일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새내기인 유혜림 학생은 답답한 일상에서 작은 의미를 찾고 있었다. 평소 텀블러에 커피 담기, 양치 컵 사용하기, 사용하지 않는 전기 코드 뽑아두기 등을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를 읽고 플라스틱을 줄이는 것에 관심이 커졌어요. 가급적 배달음식을 시키지 않고 직접 다회용 용기를 들고 가서 포장해오고 있어요. 생수를 사지 않고 스스로 정수 되는 물통형 정수기를 사용하고 있어요.” 일상에서 플라스틱 줄이기를 실천 중인 홍유진 학생이다.
짧은 인사를 마치고 플로킹을 시작했다. 선택한 경로는 학교 정문 쪽에 펼쳐 있는 우이천변을 따라 걷다가 마을 골목길로 들어갔다 후문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플로킹 과정에서 총 몇 걸음을 걸었는지 열량은 얼마나 소모됐는지도 파악하기 위해 각자 만보기 앱을 작동시켰다.
우이천 산책로 주변은 관리가 잘돼 있었다. 100리터가량의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온 게 민망할 정도로 쓰레기가 눈에 띄지 않았다. “이게 당연한 거지.” 웃으며 지나려는데 바닥 귀퉁이에 바짝 마른 개똥이 보였다. 집게로 집어 담는데 “으윽….” 소리와 함께 인상이 찌푸려졌다. 산책로를 더 걸으며 담배꽁초와 유리 파편 등을 주웠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 운까지 더해진 우이천 플로킹은 산책을 즐기는 기분이 더 컸다.
쓰레기를 좀 더 많이 줍기 위해 경로를 조금 변경했다. 예정보다 빠르게 우이천 산책로를 빠져나왔다. 거리에는 담배꽁초가 곳곳에 버려져 있었다. 사람들이 담배를 발로 비벼 끄고 그대로 자리를 뜬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담배꽁초 말고도 마시다 버린 페트병, 일회용 커피 컵, 담뱃갑, 유리병, 뚜껑, 각종 포장지 등을 주워 담았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5월에 진행한 ‘2050년 어린이날을 지켜라’ 플로킹에 참여하고 있는 아이들│초록우산어린이재단
한 시간도 안 돼 가득 찬 쓰레기봉투
‘쓰레기 무단투기로 5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 장소’라는 팻말 아래에서 쓰레기가 한 뭉치나 나왔다. 심지어 여러 쓰레기가 꾸역꾸역 담긴 비닐봉지가 팻말이 걸린 전봇대 뒤편에 내던져 있었다. “허걱….” 쓰레기 내용물을 확인하려고 봉지를 여는 순간 개미들이 기어 나왔다.
마을 골목길에는 쓰레기가 더 많이 보였다. 덕성여대가 자리한 서울 쌍문동은 아파트보다 연립과 빌라, 단독주택이 밀집된 지역이다. 인기 종영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옛 모습을 찾아볼 겨를이 없었다. 하나를 줍고 나면 허리를 펴기도 전에 바로 또 쓰레기가 보였다.
포장 용기가 나뒹굴어 있는 대문 앞 풍경도 여럿 보였다. 코로나19에 따른 일회용품 사용 증가로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게 일상을 잠식하고 있는지 다시금 확인했다.
생필품이 된 일회용 마스크도 주웠다. 감염 가능성이 있는 사용한 마스크는 끈을 자른 후 안쪽으로 접어 돌돌 말아 끈으로 묶거나 작게 접어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버려야 한다. 쓰레기를 주우면서 잘 버리는 법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어느새 100리터 크기의 쓰레기봉투가 절반 넘게 찼다. 두 명이 같이 들기에도 힘겨울 만큼 묵직해졌다. 시계를 보니 플로킹을 시작한 지 50분이 지났다. 학교 후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에도 계속 쓰레기를 주웠다.
“담배꽁초가 굉장히 많이 버려져 있어서 놀랐습니다. 특히 하수구에 많이 버려져 있었는데 이러면 장마철에 역류돼서 문제를 일으킨다고 알고 있거든요. 또 분리배출도 잘돼 있지 않은 걸 보고 화가 났습니다.” 홍유진 학생은 버려진 쓰레기 가운데서도 담배꽁초들이 하천으로 흘러가는 것을 제일 우려했다.
유혜림 학생은 생각보다 훨씬 많이 나온 쓰레기 양에 놀랐다. “쓰레기가 이렇게 많을 수 있나? 이걸 언제 다 치우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팀과 줍는 코스가 겹쳤는데도 쓰레기가 계속 나왔다는 게 제일 놀라웠어요.” 그러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됐다고 의미를 덧붙였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자고 다짐했어요. 가끔 쓰레기가 모여 있는 가로등 사이에 버리고 나 몰라라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런 제 모습을 반성했습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5월에 진행한 ‘2050년 어린이날을 지켜라’ 플로킹에 참여하고 있는 아이들│초록우산어린이재단
▶덕성여대 학생들이 길에서 주운 쓰레기. 온갖 생활 쓰레기들로 한가득이다.
오늘, 플로킹 어때?
플로킹에서 주운 쓰레기를 분리배출 할 수 있을까? 올바른 분리배출은 재활용과 재사용을 활발하게 하는 발판이다. 학교에서 지정해준 쓰레기 배출 장소 앞에서 쓰레기봉투를 다시 풀었다. 바닥에 늘어놓은 쓰레기에는 재활용품이 꽤 많았지만 오염 상태가 심각했다. 결국 재활용이 불가능해 일반쓰레기로 모두 버려야 했다. 쓰레기를 다시 주워 담고 쓰레기봉투를 묶어 배출 장소에 쌓았다. 손 씻기 필수 시대, 주운 쓰레기 정리를 마치고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고 나왔다.
이제 어느 정도 칼로리가 소모됐는지 운동량을 알아볼 시간이다. 1만 보는 족히 걸었으리라 확신하며 만보기 앱을 확인했다. 총거리 3.4km, 활동시간 한 시간 남짓, 칼로리 173, 5650걸음이 나왔다. 평소 같은 시간대보다 622걸음 더 걸었다는 친절한 설명도 붙었다. “겨우 이거야?” 싶었지만 그럼 어떤가. 동네 산책도 하고 환경에 도움이 됐다는 뿌듯함까지 얻은 시간이었다.
비록 시간상으론 한 시간 남짓한 경험이지만 덕성여대 학생들과 함께 한 플로킹은 변화의 시작점이다. 환경운동은 거창하지도 번거롭지도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 아니다. 지금 있는 곳에서 쓰레기를 줍는 것만으로 실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가방 속에 종량제 봉투를 챙겨 다녀보고자 한다. 언제 어디에서나 플로킹을 즐길 수 있도록.
글 심은하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
▶플로킹 준비물
환경운동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요
백나윤 환경운동연합 자원순환 활동가
-2020년 네 차례 플로킹을 진행했다. 어떤 쓰레기가 가장 많이 나왔나?
=가장 많이 나온 쓰레기는 담배꽁초였다. 담배꽁초가 전체 쓰레기의 약 20%를 차지할 정도로 많았다. 그다음으로 각종 비닐봉지와 포장지 쓰레기였다.
-일상 쓰레기가 해양 생태계까지 영향을 미칠까?
=해양 쓰레기의 80%는 육지에서 온다. 담배꽁초는 매일 0.7톤이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것이 해양 쓰레기가 돼 생태계와 환경을 파괴한다. 결국 쓰레기들이 먹이사슬을 돌고 돌아 우리 식탁에 올라온다.
-마지막 단계는 분리배출이다. 올바른 분리배출 방법은?
=한 가지만 명심하면 된다. 깨끗하게 씻고 재질별로 분류해 버려야 한다.
-더 나은 지구를 만들기 위한 생활 속 작은 실천이 있다면?
=제일 중요한 실천 방법은 쓰지 않는 것이다. 줄여야 할 때는 이제 지났다. 사용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환경오염으로 다가올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최대한 플라스틱을 덜 사용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플로킹을 권하는 이유?
=플로킹의 의미가 크다. 쓰레기를 줍는 행동을 누군가는 이상하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쓰레기를 다 줍고 돌아오는 길을 보면 뿌듯하다. 30분 만 해도 좋다. 깨끗한 거리가 늘어날수록 지구는 깨끗해진다. 9월 6일 자원순환의 날에 맞춰 플로킹을 준비하고 있다. 혼자라 망설였다면 함께 주워 보자.
▶플로킹을 끝내고 쌓인 쓰레기들│심은하
▶정보무늬를 스캔하면 ‘플로킹’ 체험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