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국세청 자산과세국장이 4월 1일 3기 신도시 부동산 거래 탈세혐의자 세무조사 브리핑을 하고 있다. | 국세청
투기 근절 대책 얼마나 강력한가?
국세청은 3기 신도시 예정지 6곳 등의 토지 거래를 분석해 탈세 혐의가 있는 165명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금융위원회는 ‘부동산 투기 특별 금융대응반’을 출범시키고 금융 부문에서 필요한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대응하기로 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기관의 공직 기강을 확립하기 위한 반부패 10대 실천 과제를 발표했다. 3월 29일 범정부 차원에서 발표한 ‘부동산 투기 근절 및 재발 방지 대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후속 조처들이 잇따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3월 30일 금융 부문에서 필요한 가용 자원을 총 동원해 대응하기 위해 ‘부동산 투기 특별 금융대응반’을 출범시켰다. | 금융위원회
3기 신도시 탈세 혐의자 165명 세무조사
국세청은 3기 신도시 예정지 6곳 등에 있는 31개 택지·산업단지 개발 지역의 토지 거래를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모두 165명의 탈세 혐의를 포착하고 이들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4월 1일 발표했다. 조사 대상자는 대부분 3기 신도시 예정 지역인 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인천 계양, 고양 창릉, 부천 대장, 광명 시흥의 토지 취득자다. 국세청은 국세 부과 제척 기간 등을 고려해 3기 신도시 예정 지역 발표 이전 5년 동안 거래 가운데 ‘일정 금액’ 이상 거래 전체를 분석 대상으로 삼아 세무조사 대상을 우선 선정했다. 2018년에 가장 오래된 3기 신도시 발표를 했음으로 분석 대상은 지역에 따라 2013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국세청이 추가로 분석하고 있는 개발 지역 가운데 2017년에 발표된 곳이 있기 때문에 향후 세무조사 선정 때 이 지역에 대해선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인 2012년 거래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조사 대상자 유형은 ▲토지 취득 자금 출처가 불명확한 편법 증여(증여세 탈루) 혐의자 115명 ▲법인 자금 유출로 고가 부동산을 취득한 사주 일가 등 30명 ▲개발 예정 지역 토지를 지분 쪼개기 방식으로 판매하면서 탈세한 혐의가 있는 기획부동산 4개 ▲부동산 개발 목적으로 설립한 허위 농업회사법인 3개 ▲고가 거래를 중개하거나 다수 거래를 중개하고 중개 수수료 신고를 누락한 부동산 중개업자 13명 등이다.
국세청은 금융거래 내용을 확인해 조사 대상자의 자금 흐름을 추적하고 특수 관계인이나 특수 관계법인으로부터 자금을 차입한 경우에는 채권자의 자금 조달 능력을 검증할 계획이다. 필요하다면 특수 관계인(법인)까지 조사 범위를 확대할 방침이다. 사주의 법인자금 유출이 확인되면 그 사업체도 세무조사를 받는다. 조사 과정에서 허위 계약서나 차명계좌 사용 등 사기나 그 밖의 부정한 행위로 조세를 포탈한 사실을 확인하면 조세범처벌법에 따라 고발할 예정이다. 부동산실명제나 토지보상법 위반에 대해서는 과징금 부과 등 법령에 따른 후속 조처가 이뤄지도록 관계 기관에 통보한다.
금융위는 3월 30일 도규상 부위원장 주재로 ‘부동산 투기 특별 금융대응반’ 출범 회의를 열어 금융 부문에서 필요한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100여 명으로 구성된 금융대응반에는 금융위·금융정보분석원·금융감독원·전국은행연합회·한국신용정보원이 함께 참여한다. 금융대응반은 우선 투기 의혹이 제기된 토지(농지)담보대출에 대한 현장 실태조사에 나선다. 투기 의심 대출에 대해서는 대출 모집 경로, 대출심사, 사후관리 등 대출 취급 과정 전반을 점검할 계획이다.
위법 사항이 발견되면 수사기관에 즉시 통보할 방침이다. 도규상 부위원장은 “농지법 위반 등으로 농지 처분 의무가 부과되는 투기 관련자의 대출은 신속히 회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또 금융정보분석원을 통해 신도시 등 부동산 투기 우려 지역에서 발생하는 의심 거래를 집중 분석하고 관련 정보를 수사당국과 공유할 계획이다.
▶3월 31일 열린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한 전국 검사장 화상회의’| 대검찰청
기획부동산 등 민간 업자까지 수사 확대
정부는 기획부동산 등 투기를 부추기는 민간업자 전반으로 수사를 확대했다. 3기 신도시 투기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민간 투기 폐해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남구준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장(국가수사본부장)은 3월 30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연 브리핑에서 “시·도경찰청 수사책임자를 경무관 급으로 격상하고 수사 인력도 현재(770명)의 두 배 수준인 1560명으로 대폭 확대하겠다”며 “내부 정보를 이용하거나 차명 거래 등을 통한 부동산 투기뿐 아니라 기획부동산까지 수사 범위를 확대해 부동산 투기를 뿌리 뽑겠다는 자세로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대검찰청도 이날 전국 43개 검찰청에 ▲부동산 투기 사범 전담 수사팀 확대 편성 ▲공직 관련 투기 사범 전원 구속(수사) 및 법정 최고형 구형 ▲최근 5년 동안 처분된 부동산 투기 관련 사건 재점검 등을 지시했다. 공직자가 업무상 비밀을 이용하거나 개발 정보를 누설하는 등의 행위를 ‘중대 부패 범죄’로 보고 전원 구속 수사 및 법정 최고형 구형 등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또 공직자의 투기 외에도 기획부동산 등 민간 부동산 투기 범죄에 대해서도 영업·반복적 투기 사범은 구속 수사하고 벌금형을 대폭 상향하는 등 엄정한 대응을 예고했다. 이를 위해 대검은 전국 검찰청에 1개 부 규모로 전담 수사팀을 확대 편성하라고 지시했다. 수사팀은 부장검사 1명과 평검사 3~4명, 수사관 6~8명 이상으로 꾸려 대응력을 높이기로 했다.
최근 5년 동안 처리한 부동산 투기 사건 재검토를 위해 관련 범죄 첩보를 수집·분석하고, 추가 수사나 처분 변경이 필요하면 검사가 직접 수사에 나설 예정이다. 이와 함께 대검은 “투기로 인한 범죄 수익이 차명 재산 형태로 은닉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투기 범죄 수익은 철저히 박탈하겠다고 밝혔다. 6대 중요 범죄는 검사가 직접 수사하겠다는 기존 방침도 재확인했다.
대검은 다음 날인 3월 31일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한 전국 검사장 화상회의를 열어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한 대응 방안을 점검했다. 전국 검찰청에 꾸릴 전담 수사팀에 500명 이상의 검사·수사관을 편성하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중대한 부동산 투기 범죄는 기본적으로 공적 정보와 민간 투기 세력의 자본이 결합하는 구조로 이뤄지며 이 부패 고리를 끊어야 한다”며 “과거 투기 세력들이 새로운 개발 사업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획부동산 등 투기 세력을 발본색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직 기강 확립 위한 반부패 10대 과제 발표
LH 등 공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예방하기 위한 세부 대책도 나오고 있다. 국민권익위는 4월 1일 ‘공직 기강 확립을 위한 반부패 10대 실천 과제’를 발표했다. ▲공무원 행동강령 점검 ▲공기업 퇴직자 재취업 채용 실태 점검 ▲청탁금지법 위반 봐주기식 징계 ▲공공재정 부정 수급 합동 점검 ▲직무상 정보 활용한 투기 행위 집중 신고 ▲공공기관 사규 점검 ▲청렴도 측정 시 이해 충돌 항목 추가 등 10가지를 추진 과제로 제시했다.
국민권익위는 공공기관별로 행동강령에 규정한 ‘이해충돌방지제도’가 제대로 운용되고 있는지 종합 점검하고 위반 시 징계 조치할 계획이다. 6월 말까지 직무 관련 정보를 이용한 부동산 투기에 대한 집중 신고 기간을 운영한다. 중앙·지방·교육기관에 대한 ‘상시 합동점검단’을 구성해 공공재정의 부적정한 수급, 목적 외 사용 등 예산 낭비·누수 사례를 살피고 부정 이익을 환수할 계획이다.
내부 정보를 이용하거나 이권에 개입할 위험성이 높은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사규에 이해 충돌 관련 내용을 반영하도록 제도 개선을 권고하기로 했다. 또 청렴도 측정·평가 기준을 전면 개편해 이해 충돌 상황에서 사익 추구, 비금전적 부패 등 평가항목을 추가한다. 아울러 공직자가 퇴직 공직자와 사적으로 접촉할 경우 사전에 신고하도록 하고 퇴직한 뒤 기관 내부 정보를 사적으로 이용할 수 없도록 제한 의무를 부과할 예정이다.
국민권익위는 이와 별도로 국회의원과 가족의 부동산 거래 현황 조사를 위한 특별조사단을 구성하고 운영하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이 3월 30일 소속 의원들에 대한 부동산 소유·거래 전수조사를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조사 대상은 더불어민주당 의원 174명과 조사에 동의한 그들의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을 비롯해 모두 817명이다.
특별조사단은 남양주 왕숙 등 3기 신도시 관련 지역을 먼저 들여다보고 언론 등에서 의혹이 제기된 지역과 권익위에 접수된 공직자 부동산 투기 신고 관련 지역 거래도 조사한다. 부패방지법에 따른 공소 시효(7년)에 맞춰 7년 이내의 부동산 거래 내역이 대상이며 서면 위주로 조사하되 투기가 의심되면 현장 실태조사도 병행키로 했다. 4월 말까지 조사한 뒤 투기 의혹이 있다고 판단되면 즉시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에 수사 의뢰한다.
오창석 시사평론가는 “노태우정부 때 일어났던 1기 신도시 부동산 투기는 수사에 2년이 걸렸고 투기 사범만 1만 3000여 명을 구속했다. 그러나 30~40년이 지나고 똑같은 일이 반복된 것처럼 공직자와 공공기관의 기강 확립은 장기 과제로 국민의 감시와 국가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낙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