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판교 SK바이오팜 생명과학연구원에서 연구원들이 중추신경계 신약개발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SK㈜
SK바이오팜이 독자 개발한 신약 ‘세노바메이트’가 최근 유럽 의약품청(EMA) 산하 약물사용자문위원회(CHMP)에서 판매 승인 권고를 받았다. 이에 따라 SK바이오팜은 2021년 2분기 안에 세노바메이트의 판매 허가를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세노바메이트는 SK바이오팜이 자체 개발해 2019년 1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뇌전증 치료제로 미국 제품명은 ‘엑스코프리’다. 국내 제약사가 자체 개발한 신약을 기술수출하지 않고 FDA에 직접 판매 허가를 신청해 승인받은 첫 사례다.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시험, FDA 허가 신청까지 독자적으로 진행했다.
▶세노바메이트는 2019년 1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뇌전증 치료제로 미국 제품명은 ‘엑스코프리’다.│SK바이오팜
한국 독자개발 신약, 미국 이어 유럽 진출 앞둬
SK바이오팜은 2001년부터 세노바메이트 연구를 시작했다. 2005년 FDA 임상시험계획(IND) 승인 이후 임상 1~2상을 거쳐 2018년 글로벌 임상 3상을 완료했다. 같은 해 11월 FDA에 신약 판매 허가를 신청해 이듬해인 2019년 11월 21일 승인을 받았다. 임상시험에서 ‘발작 빈도 감소율’과 ‘발작 완전 소실률’에서 통계적 유의성을 인정받았다. 이후 2020년 5월 미국 법인인 SK라이프사이언스를 통해 세노바메이트를 미국에 내놨다. 3분기 월평균 처방 건수는 2260건으로, 경쟁 약물의 초기 월평균 처방 건수 1300여 건 대비 빠른 속도로 시장에 진입했다. 2020년 9월 말 기준 보험등재율은 80%에 달한다.
유럽에서는 파트너사인 이탈리아 제약사 안젤리니파마를 통해 ‘온투즈리’라는 제품명으로 판매할 예정이다. 세노바메이트가 유럽 허가를 획득할 경우 SK바이오팜은 안젤리니파마에서 최대 4억 3000만 달러(약 4800억 원)의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을 받는다. 매출에 따른 로열티(경상 기술료)는 별도다. 최근 한국·중국·일본에서 임상 3상을 앞두는 등 아시아 시장 진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2020년 10월 일본 오노약품공업과 기술수출을 통한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세노바메이트는 글로벌 신약개발을 위한 정부의 적극 지원 정책 가운데 하나인 ‘범부처 전주기 신약개발사업’의 성과다. 범부처 전주기 신약개발사업은 글로벌 신약개발을 통한 국내 제약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보건복지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 3개 부처가 함께 추진하는 범부처 정부 연구개발(R&D) 사업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신약개발 기초연구부터 사업화까지 부처 간 칸막이를 제거하고 전주기적 지원을 강화한 국가연구개발사업을 통해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제약산업이 주력산업으로 도약할 수 있게 됐다”며 “앞으로도 글로벌 신약 개발과 해외 기술수출이 증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1월 18일 오후 인천시 남동구 가천대 길병원에서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오른쪽 두 번째)과 가천대 길병원 관계자들이 ‘닥터앤서’를 이용한 대장 내시경 진단 시연을 참관하고 있다.│가천대 길병원
토종 인공지능 의사 ‘닥터앤서’ 사우디서 검증
과기정통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은 세노바메이트를 ‘2020년 국가연구개발 최우수 성과’로 선정했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수행한 7만여 건의 연구개발 과제 가운데 각 부·처·청이 추천한 780건의 후보 성과에 대해 과학기술 개발 효과와 경제·사회적 파급효과 등을 평가해 모두 100건을 우수성과로 뽑았다. 또 우수성과 100선 가운데 6대 분야별로 2건씩 모두 12건을 최우수 성과로 선정했다.
정보·전자 분야에서는 인공지능(AI) 기반 의료 소프트웨어인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의 ‘닥터앤서(Dr.Answer)’가 최우수 성과로 뽑혔다. 진료·영상·유전체·생활습관정보 등 다양한 의료데이터를 활용해 질병을 진단·예측하고 치료를 지원한다. 닥터앤서 연구개발 과정에는 의료기관 26곳과 정보통신기술(ICT) 업체 22곳 등이 대거 참여했다.
국내 38개 의료기관이 참여하는 임상검증 과정에서 닥터앤서는 질병 진단에 수년이 걸릴 수 있는 소아 희귀질환을 약 15분 만에 정확히 진단했다. 대장용종 진단 정확도를 10% 이상 향상했으며, 4~6시간 걸리는 뇌 영상 판독 시간을 1~2분으로 단축하는 성과도 확인했다. 대장암, 소아 희귀질환 등 8대 질환 관련 의료데이터를 연계하고 분석해 맞춤형 진단으로 정확도를 높이고 치료 기간을 최소화해 약물남용 방지, 의료비 절감 등 의료서비스 개선에 기여하리라 예상한다.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 발표를 보면, 닥터앤서 개발이 시작되던 2018년 당시 4건이었던 국산 인공지능 의료기기 허가 건수가 2020년에는 58건으로 증가했다. 치매, 전립선암, 대장암 관련 ‘인공지능 의료기기 평가 기준’도 닥터앤서를 모델로 삼아 개발되는 등 국내 인공지능·의료 융합 신시장을 선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20년 12월 미국, 유럽연합(EU) 등에 국제상표권을 등록했고,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국방보건부 산하 병원에서 현지 환자 적용을 위한 안전성과 효과성을 검증하고 있어 해외 신시장 진출 가능성도 크다. 정부는 대장암 등 8대 질환을 대상으로 개발한 ‘닥터앤서 1.0’을 폐암, 간 질환, 피부질환 등 12개 질환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한국판 뉴딜 사업 가운데 하나인 ‘닥터앤서 2.0’ 사업에 4년 동안 모두 280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12월 21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제3차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원회의에 입장하고 있다.│연합
한국 연구개발 투자 2019년 89조… OECD 5위
2019년 한 해 동안 정부와 국내 기업이 쓴 연구개발비 총액은 89조 원을 넘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5위 수준이었다. 과기정통부가 2020년 말 발표한 ‘2019년 연구개발 활동 조사’ 결과를 보면, 2019년 한국의 총 연구개발비는 전년 대비 3.9%(3조 3184억 원) 증가한 89조 471억 원(764억 달러)이었다. 이는 OECD 회원국 가운데 세계 5위에 해당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전년 대비 0.12%포인트 증가한 4.64%로, 이스라엘(2018년 기준 4.94%)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과기정통부는 관계자는 “2019년 민간재원이 전년 대비 4.3% 증가한 68조 5216억 원으로, 총 연구개발비 증가에 가장 큰 영향을 줬다”고 밝혔다. 정부·공공 재원(19조 995억 원)은 전년보다 4% 증가했다.
2020년 총 연구개발비는 아직 정확한 집계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90조 원 중반대를 기록한 것으로 추산된다. 2021년 정부 연구개발 투자가 전년 대비 약 3조 원 이상 늘어난 점과 민간 연구개발 투자 증가율 등을 고려하면, 2021년 한 해 총 연구개발비는 100조 원에 육박하거나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가연구개발 투자 100조 원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원낙연 기자
연구개발 등 미래 투자 늘리면서 ‘블룸버그 혁신지수’ 1위 탈환
정부와 기업이 연구개발(R&D) 등 미래 투자를 확대하면서 ‘블룸버그 혁신지수’ 세계 1위를 탈환했다. 2월 3일 미국 경제지 〈블룸버그〉가 발표한 ‘2021년 블룸버그 혁신지수’에서 한국은 90.49점으로 60개 나라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2014∼2019년 6년 연속 1위를 차지하다가 2020년 독일에 근소한 차이로 뒤처져 1위를 내준 바 있다.
블룸버그 혁신지수는 연구개발 집중도, 연구 집중도, 특허활동, 첨단기술 집중도, 제조업 부가가치, 생산성, 교육 효율성, 연구 집중도, 특허활동 등 모두 7개 항목에서 매긴 점수를 합산해 국가 순위를 매긴다. 한국은 연구개발 집중도 2위, 연구 집중도 3위, 특허활동 1위, 첨단기술 집중도 4위, 제조업 부가가치 2위, 생산성 36위, 교육 효율성 13위 등의 평가를 받았다. 2위는 싱가포르(87.76점), 3위는 스위스(87.60점), 4위는 독일(86.45점) 등이었다. 미국은 11위, 일본은 12위, 중국은 16위를 차지했다. 미국과 중국의 순위는 2020년보다 하락했고, 일본은 같았다.
기획재정부는 “어려운 대내외 여건 속에도 정부와 기업이 미래에 대한 투자를 꾸준히 확대해 2021년 세계 5위 수준의 연구개발비 100조 원을 지원하고, 한국판 뉴딜, BIG3(미래차·바이오헬스·시스템반도체)+D.N.A.(데이터·네트워크·인공지능) 등 혁신성장 중점 추진 등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한국판 뉴딜과 BIG3 산업 추진 가속화 등 우리 경제의 혁신역량과 생산성 제고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며 “디지털 혁신경제 선도(디지털 뉴딜), 벤처·창업 활성화와 신산업 육성, 현장밀착형 규제혁신 등 규제혁신 성과 창출 노력도 병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앞서 한국판 뉴딜 사업계획을 발표하며 2021년 디지털 뉴딜에 12조 7000억 원, 그린 뉴딜에 13조 2000억 원, 안전망 강화에 6조 2000억 원(고용사회 5조 4000억 원, 사람투자 8000억 원)을 투자한다고 밝힌 바 있다. 2월 8일 오후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한 문 대통령은 “블룸버그 혁신지수에서 한국은 쟁쟁한 나라들을 제치고 가장 높은 점수를 받으면서 1위를 기록했다”며 “신산업 성장과 제조업 부가가치, 연구개발과 국제특허 실적 등 한국 경제의 잠재적 역량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높은 신뢰를 보여주는 결과”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