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쓰지만 뜻을 잘 모르는 말
2021년 설은 지난 추석에 이어 비대면 명절이 대세가 됐습니다. 코로나19 감염 우려 때문이었죠. 필자 역시 이번 설 연휴 때 고향 방문 대신 휴대전화 화면으로 부모님을 만났습니다. 부모님을 직접 뵙지 못해 아쉬움이 크긴 했지만, 영상통화인 만큼 시간과 장소의 제약이 적어 더 자주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습니다. 고향에 내려가지 못한 대신 집에서 머무르는 동안 비대면 문화 콘텐츠를 즐기며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도 가질 수 있었는데요. 연휴 마지막 날인 2월 14일 전파를 탄
의 ‘아주 각별한 기행’을 무척 흥미롭게 봤습니다. 전통 고로쇠 스키부터, 얼음 치기, 빙벽 등반과 매사냥까지 보는 내내 추위를 잊을 만큼 강렬한 겨울놀이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매사냥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매사냥은 농한기 놀이로 시작해 귀족들의 스포츠로 발전한 전통 겨울놀이입니다. 먹잇감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르는 매의 꼬리에 달린 ‘시치미’를 거기서 처음 보았습니다. 사냥매에게 방울과 함께 달아주었던 꼬리표가 바로 시치미입니다. 시치미는 소뿔을 직사각형으로 잘라 주인의 이름을 적어 놓은 패각과 방울, 그리고 사람의 눈에 잘 띄게 하기 위해 달아 놓은 흰색 깃털인 망우로 구성됩니다. 시치미처럼 사실 우리가 자주 쓰는 말 중에는 정확한 뜻을 모르는 것들이 많답니다. 이번에는 그중 몇 개를 소개해봅니다.
시치미를 떼다
삼국시대부터 고구려를 중심으로 우리 선조들은 매사냥에 매우 관심이 높았습니다. 매사냥이 유행하다 보니 사냥매가 많아지고, 자연스레 매 관리를 하게 되었죠. 잘 길들여진 매는 귀한 대접을 받았는데 도둑맞거나 바뀌는 것을 막기 위해 매의 이름과 종류, 주인 이름 등을 적어 매의 꽁지에 시치미를 달았지요. 한마디로 시치미는 매의 신분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데 어쩌다 자기 앞으로 날아온 남의 매를 손에 넣고 내 매인 것처럼 시치미를 떼고 자기 시치미를 매다는 경우가 생겨났습니다. 여기서 유래해 자기가 하고도 모르는 척하거나 아닌 척하는 모습을 ‘시치미 뗀다’고 표현하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시치미의 어원은 뭘까요? 조항범 충북대 교수가 집필한 <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를 보면 “‘스치다’에서 파생된 ‘스침’에 접미사 ‘-이’가 결합된 ‘스치미’가 시치미로 변했거나, ‘스침’에서 변한 ‘시침’에 접미사 ‘-이’가 결합해 ‘시치미’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나와 있습니다.
어처구니없다
주변에서 시치미를 떼는 사람을 만나면 참으로 어처구니없겠지요. 여기에서 ‘어처구니없다’는 말은 ‘일이 너무 뜻밖이어서 기가 막히는 듯하다’라는 뜻입니다. 어처구니 어원과 관련해선 여러 설이 있습니다. 그중 ‘맷돌의 나무 손잡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장정 둘이서 들기에도 버거운 둥글넓적한 맷돌 두 짝을 겨우 포갠 다음 윗돌에 곡식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려는 순간, 그게 없다면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상황일까요?
또 하나 궁궐 추녀마루 끝자락에 있는 흙으로 만든 조각물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기와장이들이 궁궐을 지을 때 어처구니를 깜박 잊고 올리지 않은 데서 비롯된 말이라는 것이지요. 어처구니는 궁궐 지붕에만 세우는 것이라 서민들의 지붕을 올리는 데 익숙한 기와장이들이 빼먹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왕실에서는 이런 기와장이들을 쳐다보며 “어처구니없구먼” 하고 혀를 찼다지요.
이밖에 바윗돌을 부수는 농기계의 쇠로 된 머리 부분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모두 설일 뿐이고, 정확한 어원이 밝혀진 바는 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꼭 있어야 하고 없으면 물건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쓰임새는 같습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얌체처럼 억지로 우기며 시치미를 딱 잡아떼는 사람을 간혹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사람은 시치미를 뗌과 동시에 자기 마음속의 양심도 함께 떼어내는 게 아닐까요?
백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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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