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1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김양중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교수(왼쪽)와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대담하고 있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김양중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교수 대담
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19 유행을 돌아보며 미래의 감염병에 대비하기 위해 <공감>은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와 김양중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교수의 대담을 마련했다. 1월 11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진행된 대담에서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유행 때와 견줘 병원 정보 공개, 환자 이동 동선 공개 등 투명성, 전문가 중심의 방역 대책은 잘됐다는 평가였지만 감염된 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여전히 남은 숙제임을 확인했다. 두 교수는 백신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전 국민이 감염병 위기대응의 주체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K-방역에서 K-위기대응으로 나아가자고 제안했다.
김양중(이하 김): 코로나19 예방백신 접종이 시작되면 유행의 끝부분으로 많이들 생각하는데, 끝이 아니고 이후에도 부작용 문제 등으로 백신에 대한 저항이 생길 것 같다. 또 백신을 접종해서 집단면역 형성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중이나 그 이후에도 생활방역이라든지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정책은 계속돼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국민한테 설명하기 무척 어려울 것 같다.
유명순(이하 유): 위기관리 관점에서 보면, 이렇게 불확실성이 높은 위험에는 학습과 경험이 중요하다. 다른 나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로부터 교훈을 빠르게 습득해야 하고, 그 정보의 쓰임이나 활용을 높여주는 것이 전문가와 정부의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컨대 백신이라는 게 도입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접종에서 이송·설치·요원 배치는 물론이고 우선순위에 해당하는 분들의 사전 건강 상태를 살피고 사후 점검하고, 일어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고 누가 주된 보호자인지도 파악해야 한다.
이게 정말 많은 과정이 필요한 건데, 일찍 시작한 대표적 나라 중 미국을 보면 그 속도와 접종 수준도 그렇고 절차에서 문제가 나오고 정치인과 전문가 사이에 의견 일치가 잘 안 된다. 그러다 보니 국민 입장에서는 뭐 하나 확실하지 않고 믿을 만하지 않다는 불신이 크게 일어나면서 일관된 대응이 잘 안 되고 있다.
이게 교훈에 해당하는 거면, 우리의 경험에 해당하는 것은 2020년 가을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때 정말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처럼 많은 보도가 나오면서 공포를 조장했던 일이다. 공중보건의 역사에서 예방접종은 수많은 감염병의 확산을 막을 수 있었던 세기적 성취인데,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때 한국 사회의 보도 양상을 보면 우려가 된다. 내가 한 조사에서도 아직 한국 사람들은 백신 접종 의향이 50% 이상으로 외국 사람들에 비해 높은 편이긴 한데 머뭇거리는 경향이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여서 잘못했다가는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
김: 개인의 질병을 예방하는 수단이라는, 백신에 대한 생각을 바꿀 때가 됐다. 과거보다 집단면역이 강조되고 있는데 이게 바람직하다. 개인이 받은 예방접종이 한 사회 전체를 지키기 위한 활동으로 인식돼야 한다. 백신의 효과에 대해서도 사회적 거리두기, 손 씻기, 마스크 쓰기 등 지금까지 우리가 해왔던 예방 대책에 조금 더 힘을 보태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백신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것, 즉 개인의 건강보다도 공동체 전체적으로 보면 이익이 생긴다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 물론 부작용으로 사망하거나 후유증이 남는 부분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개인 희생이기 때문에 정부가 철저하게 보상하고 공동체를 지켜가는 그들의 노력을 사회가 인정해야 한다.
부작용은 분명히 있기 마련이다. 새로운 형태의 예방백신을 대단히 많은 사람에게 접종하는 것이고, 임상시험에 포함되지 않은 부분도 있어 많은 부작용 사례가 예상된다. 코로나19와 같은 새로운 감염병의 불확실성이 이번 백신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충분히 설명하고, 이로 인해 생기는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할 책임이라는 것을 계속 강조한다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고 인식하면서 감염병으로부터 공동체를 지켜내기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한지 살펴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유: 우리 정부가 총론에서는 잘해왔다고 생각하지만 각론에서는 개인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잘하자고 마무리하는 소통의 흐름에 백신이 들어오면 결국 나의 백신 접종으로만 인식될 가능성이 있다. ‘긴 병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누군가 돕지 않으면, 또 주지 않으면 못 버틴다. 경제적 도움도 있고 심리적 믿음이라는 도움도 있어야 한다. 2021년에는 집단면역이 무엇인지, 사회적 건강이 무엇인지, 사회적 취약성을 줄임으로써 전체 위험의 크기를 줄이는 게 무엇인지, 사회적 건강이라는 소통이 필요한 것 같다.
▶김양중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교수
김: ‘온 국민이 다 같이 고생했다’는 점도 강조됐으면 한다. 초창기에는 역학조사관 등 방역 인력이나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 등이 우리 사회를 지켜내기 위해 가장 큰 역할을 했지만, 이후로는 온 국민이 방역의 주체로 활동했다고 평가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등을 지켜내 다른 주요 국가에 견줘 감염자 수를 크게 줄인 것은 온 국민의 큰 성과다. 예측했던 것이지만 최근에 헬스장이라든지 몇몇 군데에서 들고 일어설 수밖에 없었던 것도 지금까지 그들이 희생하고 감내해온 부분이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다.
유: 왜 코로나19가 전대미문의 위기냐 하면 시민사회의 협조, 방역 당국에 대한 믿음, 방역 효과가 있을 것 같으니까 해보자는 식의 실용주의적 수용력이 다 있어야지만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디서나 마스크를 쓴다든지 방역 당국을 신뢰하고 실용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해보자!’라고 한다. 나도 한국 사회 구성원이지만 놀랍다.
외국의 비영리기관, 언론, 학술지에서 한국의 대응에 좋은 평가를 내린 이유는 방역 당국이 2015년 메르스의 경험이 남긴 교훈을 통해 긴급 대응 지휘본부를 갖추고 중앙과 지방자치단체 사이에 위기대응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는 게 중요했다. 위기소통에서 투명하게 공개 안 하면 난리 난다. 정권이 날아갈 수 있다는 각오가 하나라면, 굉장히 중요한 또 하나가 시민사회의 준비성과 신뢰였다.
학술적으로 설명하면 위기관리, 위기대응의 정당성을 얻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그 점을 잘 설명했어야 하는데 K-방역이 우리 것이고 내가 곧 K-방역이란 느낌보다 현재 정부의 성과처럼 K-방역이 브랜드화된 데 대한 불만들이 있지 않나. 지금부터라도 재조명이 필요하고 더 잘 설명할 필요가 있다.
김: 메르스 때는 초기엔 병원 이름도 공개하지 않았다. 지금은 오히려 과도하게 공개하는 문제 때문에 인권 문제를 다시 한번 논의할 시점이 됐긴 하지만, 사회적으로 큰 교훈으로 남은 투명한 정보 공개를 이번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실천한 부분은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또 방역 당국이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곧장 이를 수정하고 잘못을 인정한다. 마스크도 처음에는 호흡기 환자가 쓰고 밀폐된 공간에서 쓰고,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곳에서는 사용을 그다지 추천하지 않았다. 나중에 모든 실내 공간에서 쓰는 것이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지금까지 잘못 얘기했던 부분들을 정부가 솔직히 인정했다. 새로운 감염병에서 연구 결과가 나오면 바로 받아들인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혐오와 차별은 여전히 남은 문제다. 성 소수자라든지 중국인, 특정 종교 등의 감염병 환자를 혐오하고 차별하면 숨게 만드는 문제가 생기고 감염이 더 퍼지는데, 익명 검사 등으로 이전보다 훨씬 더 잘 대응한 측면이 있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유: 혐오와 차별의 문제를 시기별로 좀 나눠서 볼 필요가 있다. 지금도 외국에서는 벌어지지만 초기에는 “너희 나라 가서 죽어라” “너희 나라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됐다”와 같은 혐오와 차별 발언이 나오고, 중국 동포와 이주민이 모여 사는 서울 대림동 같은 데서 당시 감염자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보도들이 집중적으로 쏟아지고 거기가 잠재적인 진원지가 될 것처럼 다뤘다. 중국 우한에서 교민들을 이송했을 때, 방송사가 범죄자 집단인 양 찍고 메모까지 샅샅이 털어서 부추긴 것처럼 초기에는 외부 집단에 대한 문제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더 걱정인 건 한국 사회가 만든 ‘확진자’라는 특이한 이름이다. 강도 높은 혐오는 아닐지 몰라도 상당한 차별과 배제가 있다. 보통 공중보건학에서는 어떤 진단을 받으면 환자라는 이름을 얻고 의료체계 안에서 환자 신상과 관련된 모든 것을 보호하면서 일단은 치료에 신경 쓰도록 한다. 그런데 코로나19는 집단감염은 되지만 치명률은 높지 않기 때문에 의료체계 안의 환자보다 확진자라는 중간자가 된 것이다.
정보기술력을 활용한 동선 공개가 초기에는 외국에서 약간 오해가 있어 비판도 받았지만, 정보기술과 공권력이 결합해 진행되는 역학조사가 지금 우리나라를 이만큼 버티게 해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 그래서 딜레마다. 우리 사회와 정부 당국이 확진자를 향한 탈(脫)낙인 캠페인, 소통·교육을 해야 한다. 얼마 전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완치된 또래에게 ‘너희가 다시 와서 기뻐. 환영해!’라는 포스터를 붙였는데, 이게 중요한 것이다.
김: 확진자가 완치 후 돌아왔을 때 조처를 어떻게 할 것인지 섬세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미 피해자로서 돌아오는데 또다시 가해를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법과 제도로서 해당 기관의 책임자가 감염된 환자에게 가해질 수 있는 2차 가해 예방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유: 지금 정치권이나 시민단체에서 코로나19와 관련된 차별 금지를 법안화하자는 데 동의한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확진자였다는 이유로 오지 말라고 하거나 아예 무급휴가로 돌려버리는 것은 엄격하게 막아야 하고 실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한국 사회가 정보통신을 이용해 엄청나게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역학조사를 했다면, 그 뒤에 따를 인권·사생활 침해나 차별·배제를 막을 수 있는 방안도 마련했어야 한다. 공중보건학적 방역의 성과에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내가 경기도에서 조사해보니 확진자들이 원하는 첫 번째가 인권 보호였다. 완치가 안 될까 봐 두려운 것보다 확진자임이 알려져 남에게 비난받고 내 가족이 동반 따돌림당할까 봐 걱정이라는 말에 정말 놀랐다. 이 부분을 국가와 사회가 응답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맷집’이 있는, 위기대응을 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다.
김: 마침 맷집을 얘기하니 코로나19 유행 상황 전반에서 한국 사회 전체가 버텨온 측면도 있지만 어찌 됐든 의료진, 역학조사관 같은 방역 담당 인력 그리고 중환자실, 병상 등 시설 문제 등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가 감염병 대유행이라는 위기 상황에 대한 대비에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고 본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특성상 겨울에 많은 환자가 생겨날 것이고 병상 부족이라든지 의료진, 방역 담당 인력도 지쳐갈 것이라는 부분을 많은 전문가가 예측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메르스 유행 때도 서울의 한 병원에서 결핵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이송시키고 메르스 환자들을 입원시킨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또 벌어질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메르스 유행 때는 확진자 진단 수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준비 못 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방역에 해당하는, 평상시에는 일상생활을 하지만 방역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수 있는 의료진, 병상 등 시설과 같은 기반을 충분히 갖춰놓아야겠다는 교훈이 남았다.
유: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래서 이제 K-방역에서 K-위기대응, K-안전관리로 바꿔야 한다. 처음에는 머릿속에 잘 들어오게 하느라 K-방역이라고 했지만, 감염병이라고 하는 위기에 대응하고 대비하는 수준을 아우르는 뼈대 설정이 필요하다. 이제 방역에 있어서는 장점들이 드러났고 준비성도 있었던 편이고 시민사회의 협조와 참여로 어느 정도 해결했는데, 환자 치료는 의료의 영역이다. (감염 환자를 위한 병상 부족 등) 우리가 잘 아는 오래된 문제들이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환자 수는 늘어나니까 이게 감당이 안 되고, 그러니까 영혼까지 빼내어 의료 인력이 무기력함에 빠지는 것을 알면서도 단기 처방이 쉽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전체 코로나19 대응·위기관리 관점에서, 해결을 몰라서가 아니라 쉬운 해결이 힘든 구조적 문제가 있다. 장기적으로 공공시설, 인력, 장비 등을 늘리는 데 과감한 정부투자가 필요하다. 또한 감염병 관리를 위해 역학 중심의 방역은 물론 치료 대응, 의료체계 대응도 필요하다는 걸 국민이 알아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대유행을 선언하자마자 정치인들은 전시 상황이라며 전시 언어를 썼고, 현장에 나가 있는 의료 인력과 역학조사관들은 우리의 전쟁 영웅이 되었다.
영웅은 만들어놨지만 그 사람들이 어떤 실정에 놓여 있는지 나와 똑같은 노동자라는 인식을 만들어나가는 데는 부족했다. 1년 뒤에도 일할 이들의 업무 환경을 어떻게 개선할 것이냐에 국민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외국에 비해 의료인 감염이나 보호구 부족 같은 심각한 기본적 생존의 문제는 좀 나은 형편이지만, 국민과 의료인 그리고 의료와 방역 사이의 거리를 좀 더 가깝게 하는 데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 K-방역보다 전 국민의 위기대응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제일 접점에 있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국민이 솔선수범해야 할 생활수칙도 쉽지 않다. 나도 태어나서 이렇게 마스크를 열심히 쓴 적이 없다. 거의 온종일 마스크를 써야 하는 이런 상황을 버티고 실천하는 전 국민적 노력이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K-방역보다는 국민 전체를 의미하는 K-위기대응과 같은 표현이 적합할 것 같다.
정리·사진 원낙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