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시간의 집적이고 기억의 집적이다. 시간과 기억, 그것들이 모여 개인의 역사가 되고 추억이 되고 인생이 된다. 나이 든 사람은 더욱 그 시간과 기억의 집적에 대한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다. 마치 두 번 세상을 산 것 같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
돌아보아 아득한 길이다. 많이는 지워지고 아직은 흐릿하게 남아 있는 기억들. 나, 지금까지 어찌 살아왔나? 돌아보면 문득 붉어지는 얼굴. 왜 나는 그렇게밖에 살 수 없었던가. 왜 그때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가. 후회스러움이고 부끄러움이고 부족함이다.
우선은 제멋대로 산 인생이다. 제 잘난 맛에 제 능력으로 산 인생이다. 과연 그럴까? 정말로 제 능력으로만 산 인생일까? 도움이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 질끈 이쪽의 실수와 부족함을 눈감아준 그 어떤 존재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걸 혼자서 제 능력으로 산 것처럼 오해했을 뿐이다.
어린 시절, 심지어 어머니 배 속에 작은 생명으로 머물러 있을 때부터 우리는 다른 생명체의 도움 속에서 살았다. 다른 사람의 터전 위에서 그들의 사랑과 돌봄 속에서 살았다. 용서와 관용 속에서 살았다. 어떤 때는 적반하장으로 그들을 속이고 피해를 주면서까지 말이다.
해충으로서의 삶이다. 이쪽의 생명을 위해서 저쪽의 생명을 해치는 삶. 악덕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세상 모든 생명체에게 그런 개연성이 있다. 생각이 이쯤에 와서 머물면 와락 소름이 끼친다. 부끄러움을 넘어선 두려움이다. 어찌해야 할까? 어찌 살아야 할까?
여기서 회심(回心)이 나오고 각성이 나온다.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살아야 할 일이다. 제대로 살도록 노력해야 할 일이다. 요는 방향 전환이다. 사고와 시점의 전환이다. 그렇게 살던 삶을 바꾸고 지금까지의 생각이나 시각을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가망 없는 인생이다.
어차피 인간은 착하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선량하게 살아보려고 노력이라도 해보아야 한다. 그마저 없다면 진정으로 좋은 인생이라 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남을 생각하는 인생이었으면 한다. 나보다 너를 오로지 우선하기는 어렵다 해도 그렇게 하도록 노력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해충에서 익충으로 살아야 한다. 남에게 도움을 주는 생명체 말이다. 자리이타(自利利他)란 말이 있다. 나한테도 이롭고 남한테도 이롭다는 말. 그러한 삶. 쉽지 않고 흔하지 않은 삶이지만 나는 그런 삶을 원한다.
다른 사람에게 원하는 것보다 나에게 더 원한다. 지금껏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살았으니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 사람의 용서와 관용 속에서 살았으니 나도 그렇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다지 많이 남지 않은 나의 인생.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나태주 시인_ 풀꽃 시인. 한국시인협회장. 100여 권의 문학 서적을 출간했으며 공주에서 풀꽃문학관을 운영하고 있다.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