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뉴딜로 꿈꾸는 청춘의 일상과 미래
여기 ‘한국판 뉴딜호’에 미래를 실은 젊은이가 있다.
디지털 교육을 받고 인턴 체험에 한창인 두 취업준비생을 만났다.
그들의 포부를 바탕으로 한국판 뉴딜이 뿌리를 내릴 2025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그 ‘가까운 미래’는 2021년의 나와 너, 우리에게 말을 건다.
한국판 뉴딜과 동행으로 변화될 삶을 그려보며 조금만 더 힘을 내라고.
상대가 ‘김지영’이라고 했을 때, 나도 모르게 실눈이 떠졌다. 한 달에 한두 번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Zoom)’으로 하는 거래처 회의 참가자 8명 가운데 하나던가? 3년 전 상견례 뒤로는 모니터로만 얼굴을 대하다 보니 딱히 살가울 구석이 없는 사이다. 그런데 전화기 너머 목소리가 너무 스스럼없다.
“이게 몇 년 만이지?”
상대가 자연스럽게 말을 낮춘다.
“?….”
“우리 얼굴 보고 하는 졸업식도 못 했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이 원래 크기로 돌아왔다. 맞다, 대학 같은 과 동기 김지영!
2020년 비대면 졸업식
2020년 8월. 기록적으로 길었던 장마가 끝날 무렵 우리는 흩어졌다. 가을 학위 수여식은 비대면으로 치러졌다. 코로나19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함께 마음의 거리두기도 요구했다. 대면 졸업식을 했더라도 몇이나 모였을지 모르겠다. 낮은 취업률은 한두 해 계속된 게 아니었지만, 그해에는 ‘폭망’했다. 가뜩이나 취업률이 낮은 인문학 계열을 전공한 나로서는 어쩌다 누가 취업했다는 얘기라도 들으면 특별한 개인적 배경, 시쳇말로 ‘빽’이 뭐였는지부터 궁금했다. 졸업 뒤로는 각별한 몇몇 빼고는 만남도 없었다.
▶공공디지털 일자리 교육에 참가한 한 취업준비생 | 한겨레
2025년 플랫폼 기업근무
나는 수도권의 한 플랫폼(비대면 서비스) 기업에서 일한다. 인문학 분야 대중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해 운영하는 회사다. 입학시험부터 교양, 학술까지 인문 분야의 온갖 데이터를 가공해 앱으로 회원들에게 제공한다. 직원은 100명 남짓. 내가 입사했던 4년 전(2021년)에는 3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정부가 구축한 ‘데이터 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회사 대표가 창업 뒤에 맞닥뜨린 가장 큰 어려움도 데이터 구하기였다. 데이터는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온갖 곳에 흩어져 있었다. 그걸 찾고 정리하는 건 거대 기업조차 엄두를 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한국판 뉴딜 사업으로 데이터 댐이 구축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누구나 체계적으로 정리된 데이터에 아무런 장애 없이 접근할 수 있게 됐다.
나는 지난해(2024년) 대리로 승진했다. 인문 분야의 최신 흐름을 파악해 데이터 소팅이나 아이템 개발 분야와 협업하는 게 내 일이다. 급여는 대기업 수준은 못 되지만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원룸 오피스텔 월세(그린 뉴딜 주택이어서 전기료가 거의 없다) 내고, 저축도 하고, 건강센터에도 다닌다.
나를 일으켜 세운 그 라디오 광고
나의 28년 생애는 8할이 비관이었고, 우리 ‘삼포세대’는 2020년 들어 나락으로 떨어졌다.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한 무한 경쟁마저 의미가 없어졌다. 긴급재난지원금은 바짝 마른 모래밭에 부은 한 바가지 물처럼 가뭇없이 사라졌다. 코로나19로 온 사회가 아우성이었지만, 다른 사람 아픔을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 내 마음은 사막이 되어갔다.
대통령이 취임 3주년에 맞춰 “대한민국의 판을 바꾸겠다”며 큼지막한 청사진을 발표했다. 짙은 잿빛의 일상에 지친 내게는 아스라한 거리감만 안겼다.
침대 속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며, 까딱하기도 싫은 손가락을 써서 라디오 다이얼을 돌리고 있었다. ‘핫(인기가 높다)’하고 ‘힙(유행에 밝고 신선하다)’한 노랫가락이 귀에 꽂혔다.
“뉴딜 내려온다 한국판 뉴딜/ 위기에 강한 나라 한국판 뉴딜/ 경제 살리는 뉴딜, 환경 지키는 뉴딜/ 사람 키우고 지역 키우는 한국판 뉴딜/ 차르르르 차르르르/ 내 삶을 지키고 우리 동네 살리는 한국판 뉴딜/ 대한민국 미래 열고 세계경제 선도하는 한국판 뉴딜~.”
국악 기반 팝 밴드 이날치가 ‘범 내려온다’를 개사해 부른 ‘뉴딜 내려온다’ 광고였다. 몸을 일으켜 한국판 뉴딜을 해설하는 기사와 유튜브 동영상을 찾기 시작했다.
코딩도 몰랐던 백수가 인턴을 마치니
오래 망설이다 마음을 다잡았다. 고용노동부에서 주최하는 ‘디지털 핵심 실무인재 양성사업’ 온라인 설명회에 접속했다.
“비전공자도 교육을 받을 수 있나요? 저는 코딩이 뭔지도 모르는데….”
질문은 쭈뼛거렸지만, 답변은 선선했다.
“수많은 비전공자가 이미 디지털 신기술 분야에 진출해 있어요. 디지털 뉴딜의 효과로 기회는 훨씬 많아질 수밖에 없고요.”
속는 셈 치고 직업훈련포털에 접속해 ‘국민내일배움카드’ 발급을 신청했다. 교육을 쫓아가지 못하면 미련 없이 관둘 생각이었다. 교육 프로그램은 개인 맞춤형으로 설계돼 있었다. 처음에는 시키는 대로만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따라가다 보니 시나브로 원리에도 눈이 트여갔다.
실습하고 응용할 기회가 필요했다. 공공데이터 청년 인턴 모집 공고를 봤다. 공공데이터의 개방과 품질을 진단하는 일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일단 지원했다. 하루 8시간씩 일주일 동안 온라인 수업을 들었다. 수업이 끝나면 밤늦게까지 퀴즈 테스트를 이수했고, 그날 배운 내용을 복습했다. 교육과정이 끝나고 기획재정부에 배치됐다. 기재부가 발행한 보도자료, 정책자료, 각종 재정 통계 등을 정리해 공공데이터 포털에 등록했다. 데이터에 오류가 없는지 점검하고 진단하는 일도 했다. 경험이 쌓이면서 데이터란 무엇인지, 어떤 가치와 가능성이 있는지도 알아갈 수 있었다.
인턴 활동을 무사히 마치자 수료증과 경력증명서가 발급됐다. 2주짜리 추가 전문교육을 받고, 취업지원 상담도 받았다. 여러 차례 상담과 도전 끝에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기업을 추천받았다. 졸업 뒤 받은 디지털 교육 결과에 기업은 반색했다. 벚꽃이 흩날리는 2021년 4월 말, 지금 직장으로 첫 출근을 했다. 지난 4년은 정말 정신없이 지나갔다. 긍정과 낙관의 시간은 속도도 빨랐다.
▶고용노동부에서 실시하는 ‘2020년 디지털 핵심 실무인재 양성사업(K-디지털 트레이닝)’ 훈련기관으로 선정된 코드스테이츠의 소프트웨어 인재 양성 교육 현장 | 코드스테이츠
환경 답사 열심이던 지영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았어?”
김지영이 물었다. 지난 5년은 아무리 압축해도 전화로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지영은 회색 계열의 투피스 정장 차림에 옅게 얼굴 화장을 하고 나타났다. 나는 가벼운 차림에 스니커즈를 신고 갔다.
“야, 안은영! 넌 어떻게 그대로냐?”
“웬 정장?”
지영은 학교 다닐 때부터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몇 날 며칠 학교에 나오지 않다가 검게 그을린 모습으로 나타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때마다 환경 답사를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옷차림은 언제나 야외 활동을 하다 온 복장이었다.
지영은 졸업 뒤에도 동아줄을 붙들듯이 한동안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하루는 너무 답답해 다른 학교 친구와 만났다.
“너 진짜 꿈이 공무원이니?”
“가능한 한 환경 분야 공무원!”
친구가 말을 끊더니 데이터 댐 얘기를 꺼냈다. 지영은 미간을 찌푸렸다. 댐 건설 반대운동을 한 기억이 나서였다. 하지만 설명을 들어보니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 안에 곳곳으로 뻗은 친환경 산업의 물길이 보일 듯 말 듯했다. “데이터를 잘만 활용하면 생태운동과 생계의 접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한 건 김지영 자신이었다.
관심 있는 친구들과 ‘그린 인재 양성’을 한다는 유수의 민간 데이터 교육기관에서 무상으로 온라인 교육을 받았다. 교육기관 쪽은 자신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아이디어를 모으고 추려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몇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데이터 댐을 이용해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맞춤형 친환경 건물 컨설팅 사업을 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정부의 그린 뉴딜 사업에서 이런 일을 돕는 예산이 있다는 걸 알아냈다. 허름한 사무실을 얻고 집기를 들여놓고도 한동안 쓸 수 있는 운영자금이 남았다.
김지영은 이날 지자체에서 발표를 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환경 답사 옷차림으로 발표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일 터였다.
‘그린 리모델링’ 전도사로 나타나
지영은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고 있었다. 또래 여성 여남은 명이 함께 만든 작은 회사였다.
“2050년 탄소중립에 도달하려면 새로 짓는 건물 말고도 기존 건물을 구조 변경하지 않으면 안 돼. 우리는 데이터 댐의 데이터를 활용해 수십 가지 리모델링 유형을 만들고, 그걸 토대로 지역 사정에 맞게 더 꼼꼼한 사업 방식을 제안하는 거야. 먹고사는 문제? 지속 가능하면 돼. 집은 우리가 상담한 친환경 공공임대주택 입주로 해결했고.”
내가 귀를 쫑긋하고 듣는 모습을 보더니 지영이 정색하며 물었다.
“은영, 너네 회사는 친환경 리모델링 안 하니?”
건물 일부를 임대해 입주해 있다고 하자, 지자체를 움직여 건물주를 설득할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지영이 다시 눈동자를 굴린다.
“우리 얼굴 보고 하는 졸업식도 못 해봤잖아. 동문회 하자고 하면 몇 명이나 모일까?”
한국판 뉴딜이 이어준 동문회
마당발인 친구들을 수소문해 노드(node)로 세우고 사발통문을 돌렸다. 2020년엔 전멸하다시피 했는데, 예상 참석 인원이 과반이란다. 그리운 얼굴이 하나둘 나타났다. 같은 아픔과 희열을 겪은 터라 대화는 무르익었다. 자영업 하다가 실패한 뒤 고용보험으로 위기를 넘긴 경우부터 우리처럼 디지털 교육을 받아 직업을 찾은 경우까지, 모두 한국판 뉴딜이 밝힌 불로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 여기 모였다. 깊어가는 밤은 모닥불처럼 그렇게 타들어갔다.
안영춘 기자
디지털 핵심 실무인재 양성사업(K-디지털 트레이닝): 혁신적인 기술과 훈련방법을 가진 민간 훈련기관, 기업, 대학 등을 통해 디지털 핵심 실무인력을 양성하는 훈련
대상_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취업을 위해 디지털 실무역량이 필요한 구직자
훈련_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스마트 제조, 인공지능, 클라우드컴퓨팅, 정보보안, 실감형 콘텐츠, 핀테크, 무인이동체 등 디지털 신기술 분야 훈련과정
혜택_ 교육비 지원(국민내일배움카드 계좌 한도 차감)
문의_ 구체적인 사항은 HRD-Net 및 각 기관 누리집 참조
직업훈련포털: www.hrd.go.kr 공공데이터 포털: www.dat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