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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지구촌은 코로나19의 늪에 빠져들었다. 미증유의 경제적 충격도 이어지고 있다. 세계 각국이 전시 사태에 준하는 위기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바이러스와 전쟁을 언제 끝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코로나19 방역은 물론 경제적 충격 방어에도 성공적인 나라로 떠올랐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튼튼한 국가 역량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 고난을 함께 극복하려는 국민의 자발적인 연대와 배려의 힘이 무엇보다 컸다. 그러나 아직 긴장의 고삐를 늦출 수 없다. 나라 안에서 이번 사태를 성공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한다고 해도 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
코로나19 세계적 유행 시대에는 ‘모두가 안전하기까지는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는 게 엄중한 현실이다. 코로나19 위기는 새로운 기회도 될 수 있다. 위기 극복 과정에서 국가 위상과 국민 자부심을 재정립할 수 있는 기회다. 정부가 이끌고 민간이 동참해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을 설계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실천적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코로나19 세계적 유행의 충격에 대해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는 비관과 낙관의 시각이 교차한다. 역사상 최악이었던 1930년대 대공황에 버금가는 경제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나오는가 하면, 경제는 잠시 침체했다가 다시 대칭적으로 반등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한국은 방역과 경제 모두 성공한 나라
코로나19 방역과 경제 침체 방어는 서로 모순 관계에 있는 과제다. 방역을 강화하면 경제 침체를 감수해야 하고, 경제를 살리려면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어렵다. 방역이냐 경제 살리기냐를 놓고 세계 각국 정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유다. 그런데 한국은 코로나19 방역과 경제 침체 방어에 모두 성공한 나라로 꼽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0년 <한국 경제 보고서>에서 ‘한국은 바이러스 확산을 가장 성공적으로 차단한 국가로 일체의 봉쇄 조치 없이 방역 성과를 거두면서 경제적 피해도 최소화했다’고 평가했다. 또 ‘신속하고 효과적인 정책 대응에 힘입어 코로나19 충격에 따른 경제적 위축이 제한적으로 나타나며, 다른 회원국에 비해 고용 및 성장률 하락 폭이 매우 작은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OECD는 2020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회원국 가운데 1위, 주요 20개국(G20) 중에서는 2위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OECD는 하반기부터 한국의 경제회복 속도도 빨라졌다며 2020년 연간 성장률 전망치를 -1.1%로 제시했다. 전 세계 평균 전망치인 -4.2%보다 훨씬 높은 압도적 1위다. 2021년 경제 전망도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낙관적인 국가로 분류된다.
▶11월 1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에 ‘2020 코리아세일페스타’를 알리는 알림판이 걸려 있다. | 한겨레
전 세계 확장적 재정·통화 정책 지속
코로나19 세계적 유행은 국가의 역할과 정부 기능에 대한 인식을 확 바꿔놓았다. 대형 재난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가 국가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등장했다. 세계 주요국 정부는 2020년 들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훨씬 큰 규모로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있다. 금리를 이미 0%대로 내려 정책 공간이 제한된 각국 중앙은행들도 양적 완화라는 비전통적 수단으로 유동성 공급을 늘렸다.
확장적 재정과 통화 정책의 조합은 소비와 투자를 끌어올리기 위한 경기부양 수단이라기보다 코로나19 유행이 불러온 일상생활의 붕괴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구호 정책에 가깝다. 중앙은행은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매입해 적자재정의 부담을 덜어주고, 정부는 기업과 가계에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확장재정을 집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20년 재정지출을 가파르게 늘렸다. 네 차례의 추가경정(추경)예산까지 편성해 코로나19 위기 대응에 투입한 재정이 2019년 기준 GDP 대비 약 13%이다. 그러나 이는 미국(GDP 대비 13.9%), 일본(22%), 영국(37.7%) 등에 견주면 약한 확장재정이다.
통화정책을 통한 유동성 공급 확대 규모는 GDP 대비 2.5%로, 미국(10.7%)이나 일본(16.9%), 유럽연합(EU) 회원국 평균(9.4%)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세계 각국의 확장적 재정·통화 정책은 코로나19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우리나라도 확장재정의 기조를 바꿀 가능성이 없다. 경제 위기에는 정부의 ‘보이는 손’이 가장 효과적인 대응 수단이다.
‘방역과 경제 사이의 균형’이라는 목표
코로나19에 짓눌려 2020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우리 경제는 2021년 반등의 계기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0년 3분기 GDP 성장률이 전기 대비 플러스 전환에 성공한 가운데 여러 경제지표도 한 방향으로 ‘경기회복’을 가리키고 있다.
2020년 10월 소비자심리지수(CSI),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모두 11년 6개월 만에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코로나19 확산과 방역 때문에 그동안 움츠렸던 소비심리와 기업의 투자심리가 빠르게 정상화하고 있다는 신호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모처럼 밝은 지표들을 받아들고 보니 그 배경에는 무엇보다 국민 여러분의 역할이 가장 컸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든다. 국민이 오랜 기간 불편함을 견디고 협조해줘서 방역 조치를 완화할 수 있었고 그 덕에 경제활동도 점차 정상화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고용 충격 취약계층에 집중 지원
그러나 방역과 경제의 균형이라는 목표에 확실하게 이르기까지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코로나19 사태로 더욱 깊어진 그늘을 지우는 것이 급선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다가올 듯한데,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는 결코 평등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특히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에서 빚어진 위기의 쏠림 현상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인한 고용 충격은 임시·일용직, 자유직업자 등 특수고용직, 영세 자영업자, 무급휴직자 등 기존 취약계층에 쏠렸다.
이 같은 불평등의 심화를 막기 위해 정부는 적극적인 지원 정책을 펼쳐 어느 정도 성과를 이뤄냈다.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 극복 방안을 논의하는 국무회의에서 “위기가 불평등을 심화하는 공식을 이번에는 반드시 깨겠다”고 다짐했다. 이를 위해 적극적인 포용정책과 함께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확대하려는 정부의 노력도 뒤따랐다.
투자·소비 진작 통한 중기·자영업자 살리기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피로가 누적되는 것도 문제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은 국내 산업생산과 민간소비 생태계에서 풀뿌리 구실을 하는 존재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방역 강화는 경제를 일시적으로 위축시킬 뿐이지만, 세계적 유행의 장기화로 침체 기간이 길어지면 중소기업과 자영업은 고사 위기에 몰린다. 힘들게 견디다 기초체력마저 고갈돼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19가 길어져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대규모 도산이 발생하면 산업생태계 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초래할 수도 있다. 고용의 양적, 질적 악화도 피할 수 없다. 정부는 코로나19의 경제적 충격에 따른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피해에 대해 두 가지 정책 방향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피해 업종과 계층에 대한 적극적인 구제 및 지원과 함께, 경기 반등의 계기를 살리기 위한 투자·소비 진작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한국판 뉴딜
코로나19가 불러온 위기는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자는 구상이 바로 한국판 뉴딜이다. 한국판 뉴딜은 코로나19 시대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와 사회를 새롭게 변화시키겠다는 정부의 약속이자 청사진이다. 사람을 중시하는 튼튼한 사회안전망을 바탕으로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 지역균형 뉴딜 등 세 개의 축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키우고 19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게 정부의 포부다.
한국판 뉴딜은 지금까지 진행한 구상 단계를 넘어 2021년부터 본격 추진 단계로 접어든다. 한국판 뉴딜을 지역으로 확산하는 기틀인 지역균형 뉴딜도 추가해 발표했다.
풍부한 시중 유동성을 뉴딜 분야 투자로 유도하기 위해 ‘국민참여형 뉴딜펀드 조성 방안과 정책형 뉴딜펀드 투자 가이드라인’까지 마련했다. 한국의 방역이 코로나19 통제의 성공적인 모델이라면, 한국판 뉴딜은 코로나19가 남긴 상처를 치유하고 코로나19 위기 극복에 필요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박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