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9일(한국 시간) 카타르 알와크라의 알자누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우승한 울산 현대 선수들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기뻐하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인류 역사에 코로나19의 암흑기로 명명될 2020년. 스포츠도 코로나19의 유행에 몸을 낮췄다. 하지만 스포츠는 멈출 수 없었다. ‘오프(Off)’와 ‘온(On)’을 반복하면서 희비의 2020년을 가로질렀다.
코로나19가 남긴 2020년 출발의 풍경은 황량했다. 봄을 기대하는 2월. 하지만 스포츠는 겨울이었다. 불 꺼진 체육관, 휑한 운동장. 사람들은 공기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스포츠 일상의 세계를 잃었다. 프로농구, 프로배구 등 국내 겨울스포츠는 코로나19 확산에 무관중 경기, 리그 단축과 조기 종료로 마감했다.
일본 정부가 준비했던 2020 도쿄올림픽이 개최 4개월을 앞두고 2021년으로 연기된 것은 큰 사건이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는 1년 뒤 만날 것을 약속했지만, 1896년 아테네에서 시작한 근대 하계올림픽이 중단된 것은 1,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6년, 1940년, 1944년 세 번뿐이어서 충격이 컸다. 유럽의 축구, 미국의 농구와 야구, 아이스하키 등이 전 세계 모든 곳에서 리그의 중단이나 조기 종료가 이뤄졌다.
하지만 K-방역에 힘입어, 5월 한국에서 재개된 프로축구 K리그와 프로야구 리그는 전환점이 됐다. 유럽과 미국의 스포츠 팬들은 한국의 축구와 야구 콘텐츠를 사서 보며 언젠가 자국에서도 경기가 열릴 희망을 갖게 됐다. 스포츠를 통해 세계인의 답답증을 풀어준 것은 문화·스포츠 영역에서 한국이 국제사회에 공헌했다는 뿌듯함을 안겨주었다.
손흥민 경제적 파급효과 1조 9885억 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밥도 함께 마음 편하게 먹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 이런 가운데 2020년 한국인에게 가장 큰 기쁨을 안긴 인물은 누구였을까? 아마도 스포츠 스타들이 가장 앞자리에 꼽힐 것이고, 그 가운데 손흥민(28·토트넘)이 우뚝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만약 그가 없었다면…’이라는 단순한 사고실험만으로 실감할 수 있다. 9월 프리미어리그 사우샘프턴전에서 터트린 한 경기 4골, 지난 시즌 번리전 70m 드리블로 받은 국제축구연맹(FIFA) 푸슈카시상 수상, 한층 순도 높아진 ‘원샷원킬’로 5년 연속 두자릿 수 득점, 토트넘 소속으로 100골 등정 도전 등은 시름 많은 장삼이사들의 아드레날린을 분출시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손흥민의 올 시즌 경제효과를 1조 9885억 원으로 산정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손흥민 선수의 유럽 축구시장에서 가치는 1206억 원, 손흥민 선수에 의한 대유럽 소비재 수출증대 효과는 3054억 원, 그에 따른 생산 유발 효과 6207억 원, 부가가치 유발 효과 1959억 원으로 추산됐다. 또한 감동과 자긍심 고취, 유소년 동기부여 등 손흥민 선수가 국내 유발하는 무형의 가치는 7279억 원, 광고 매출 효과는 연 180억 원으로 추산됐다. 박양우 문체부 장관은 “손흥민 선수는 최근 2020 푸슈카시상 수상과 같은 활약으로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에게 큰 감동과 자긍심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메이저리거 류현진(33·토론토)과 김광현(32·세인트루이스)은 KBO리그 최강 투수들이 결코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웅변했다. 4년 8000만 달러에 계약한 류현진은 시즌 12경기 5승2패, 평균자책점 2.69로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고, 루키 김광현도 선발 경쟁을 뚫고 들어가 정규 시즌 평균자책점 1.62로 팬들을 열광시켰다.
여자골프의 세계 1위 고진영(25)은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마지막 대회인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 우승으로 상금왕 2연패를 일궜고, 김세영(26)은 ‘올해의 선수’를 차지했다. 올 시즌 18개 대회에서 합작한 한국 여자선수들의 7승은 눈에 띈다.
김도훈의 울산, AFC 챔스 우승 ‘해피엔딩’
한 해 막바지 가장 극적인 장면은 프로축구 울산 현대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일 것이다. 코로나19로 카타르에 모여 조별리그 잔여 경기부터 결승전까지 한곳에서 치렀는데, 울산은 조별리그 두 번째 경기부터 9연승으로 대망의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21년 2월 FIFA 클럽월드컵에 아시아 대표로 나갈 수 있는 출전권과 우승상금 400만 달러 등으로 최소 50억 원 이상의 수입을 팀에 안겼다. 김도훈 울산 감독은 K리그에서 전북 현대에 밀려 2년 연속 준우승에 머물렀고, 축구협회(FA)컵에서도 전북에 져 ‘준우승 전문’이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를 달았으나 ‘한 방’에 날려버렸다.
2020년에는 잊지 말아야 할 가슴 아픈 사연도 있다. 수년간 폭력에 시달린 꽃다운 청춘의 트라이애슬론 선수 최숙현은 주변의 도움 하나 받지 못하고 고립무원 상태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해방 이후 지속한 엘리트 스포츠 정책은 더 근본적인 문제로 부각됐고, 그래서 최숙현의 죽음은 타살이다.
스포츠는 ‘고통이 아니라 행복’이어야 한다. ‘하는 스포츠’와 ‘보는 스포츠’는 삶에 활력이 되어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실용성과 공리주의 가치를 강조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직 계몽주의 단계도 넘어서지 못한 듯한 한국 사회, 한국 스포츠 현실에 대한 반성 때문이다.
새해 신축(辛丑)년에는 코로나19에서 벗어나, 우직한 소처럼 모두가 스포츠를 통해 행복한 세상으로 뚜벅뚜벅 걸어갔으면 좋겠다.
김창금_ <한겨레>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