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딛고 성장 동력 한 단계 끌어올렸다

2020.12.21 최신호 보기
▶2000년대 초반엔 “따라올 테면 따라와봐!”라고 외치던 초고속인터넷 광고가 유행이었다. 사진은 초고속인터넷 브이디에스엘(VDSL)의 텔레비전 광고의 한 장면이다.│ 한겨레

한국판 뉴딜은 코로나19 이후 경기회복을 위해 정부가 마련한 대한민국 대전환 프로젝트다.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1929년 경제 대공황으로 미국이 극심한 경기 침체에 빠지자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추진한 경제정책을 뉴딜로 일컫듯이, 여기에 빗대어 코로나19로 경기가 침체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제반 정책들을 마련했다고 해서 이 프로젝트를 한국판 뉴딜이라고 부른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우리는 여러 이유로 나라 안팎에서 큰 혼란과 위기를 자주 겪었다. 그럴 때마다 새로운 결단과 혁신 정책으로 위기를 위대한 도약을 위한 역사적 전환점으로 만들었다. 우리만의 글자를 만들고 거북선과 수원화성으로 국가의 위기를 기회로 전환했다. 가깝게는 일관제철소 건설과 반도체 투자로 ‘경제강국 코리아’를 일궈냈다. 위기의 순간에 좌절을 극복하고 생각을 뛰어넘는 혁신으로 다시 일어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 다시 한번 대한민국 대전환에 도전한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이룬 역사적 혁신 사례를 되짚어봄으로써 한국판 뉴딜이 지닌 의미와 가치를 되새긴다. <편집자 주>

초고속인터넷망 구축과 디지털 뉴딜
올 한 해 내내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 여파로 세계는 2차대전 이후 최악의 경제 상황을 맞고 있다. 70여 년 전 6·25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경제성장을 이뤄내고, 20여 년 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역시 극복한 우리나라는 이번에도 국가와 기업, 국민의 노력을 통해 세계 여러 나라 중 가장 모범적으로 코로나 위기를 이겨내고 있다고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우리의 경제와 삶은 예전 상황으로 돌아가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된다.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가 성공적으로 감염자 수를 관리하고, 경제적 타격을 최소화하며 코로나 상황에 대처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우리나라가 보유한 세계적인 정보통신기술(ICT) 및 디지털 인프라다. 많은 국민이 집 밖의 활동을 최소화하면서도 인터넷을 통해 수업을 받고, 배달앱으로 먹고 싶은 음식이나 재료를 주문할 수 있었다. 이렇게 비대면 교육이나 배달앱을 통한 요식업 운영이 가능한 기반은 높은 휴대전화 보급률과 플랫폼 산업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킨 데이터·네트워크·인공지능(D.N.A.) 산업의 인력들이다. 이러한 역사의 시작점이 바로 1990년대 중반 인터넷 보급과 함께 성장한 초고속인터넷망 사업이다.
1980년대 대학을 중심으로 기술 개발에 착수하며 시작된 우리나라 인터넷의 역사는 1986년 데이콤(현 LG유플러스)의 PC통신 천리안을 통해 대중화의 첫걸음을 떼게 된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우리의 기술이나 인터넷 보급률이 현재와 같이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극적인 전환점이 된 것은, 1995년 당시로서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의 예산이 투입되는 ‘초고속정보통신망 마스터플랜(종합계획)’ 수립이었다. 이를 통해 1997년 국내 80개 도시에 광케이블망이 설치되며 우리의 정보통신 산업은 극적인 전환기를 맞는다.

▶창덕궁 앞 안내 창구에서는 ‘창덕 아리랑(AR-irang)’ 앱 실행을 위한 5세대(5G ) 단말기 무료대여 서비스도 운영중이다.│한겨레

외환위기 극복의 해법으로 선택한 IT 산업
물론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 사업의 실행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에도 불구하고 당시 민간 통신사들은 기존에 자사의 비용으로 구축한 종합정보통신망(ISDN)이나 전화망 인터넷 서비스를 최대한 유지하려 했다. 초고속통신망의 구축을 통해 저렴한 초고속인터넷 서비스가 제공되는 경우 민간 기업의 기존 서비스들이 경쟁력을 잃는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1997년 발생한 외환위기도 사업 추진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바닥난 국고와 어려워진 국민의 살림살이에서 초고속인터넷망 구축에 투자할 국가 예산도 충분하지 않았고, 이를 사용할 이용자 수요가 생길지도 불확실했다. 당시로서는 걸음마 단계였던 인터넷 관련 서비스는 경제성을 확보할 만한 통신망 이용 수요를 발생시킬 것이라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극복의 해법으로 정보기술(IT) 산업을 선택한 당시 정부는 온 힘을 모아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국책연구원들의 기술 개발을 전폭적으로 지원했고, 디지털 인프라의 실제 구축 시 한국전력, 송유관공사, 도로공사 등의 인프라 공사와 병행함으로써 소요되는 예산을 최소화했다.
기업들 역시 이러한 정부의 노력에 화답해 과감한 투자를 시행했다. 결국 사업을 통해 1960년대 이후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성장하던 국내 대기업들의 주력 사업은 무선통신 사업과 휴대전화, 반도체 사업 등으로 재편되었다. 이렇게 효율적으로 전국 구축이 진행된 초고속정보통신망 사업은 우리나라를 2001년 초고속인터넷 이용자 수 13.9명으로 세계 최고의 인터넷 보급 국가로 재탄생시켰다.
이렇게 국난의 상황 속에서 추진된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 사업은 결국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인 대한민국을 재탄생시킬 수 있었던 기초 자산이 되었다. 초고속통신망을 통해 인터넷 쇼핑몰, 게임산업, 인터넷 기반의 토착형 메일과 포털 서비스가 속속 등장해 지금의 네이버와 같은 인터넷 기업을 만들어냈고, 세계 최초의 누리소통망인 싸이월드까지 등장해 현재 ‘국민 SNS’라 불리는 카카오가 등장하는 기초가 되었다. 1960년대 시작된 산업화와 고속성장 시대의 종언을 알렸던 외환위기 이전에 초고속정보통신망 마스터플랜을 준비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나라의 핵심 동력인 ICT 산업과 인터넷, 플랫폼 산업은 현재의 위치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 18일 강원도 춘천에 있는 데이터·인공지능 기업 더존비즈온을 방문해 직원들과 차담회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국가 성장 동력 한 단계 발전시킨 전환점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 사업이 우리 역사에서 갖는 의미는 2차 산업혁명으로 등장한 제조업을 통해 성장한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산업인 정보통신을 주력산업으로 확보해 국가의 성장 동력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전환점이 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외환위기라는 국가부도 상황에서 이러한 대전환을 이룬 우리의 역사는 미국 뉴딜과 루스벨트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대공황으로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에 나앉은 미국 근로자들의 사진에서 외환위기로 정리 해고를 당하고 공원 벤치에서 시간을 보내던 그 시절 우리나라의 근로자들 모습이 겹쳐 보인다. 당시 우리나라 상황은 1920년대 말 미국의 공황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당시 정부는 국가 주도로 대대적인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 사업을 지속했고, 결국 이 인프라는 공공재로서 수많은 벤처 기업의 기반이 되어 이후 우리나라 IT 1세대를 성공시킨 자산이 된다. 마치 미국 뉴딜의 테네시강 유역 개발과 같이 인터넷망의 개발사업이 국가 전체를 재생시킨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IT 강국으로 변신한 2000년대의 대한민국이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 정책에서 이야기한 새판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성공의 이면에는 어려울수록 힘을 결집하고 하나로 뜻을 모은 우리나라 국민의 저력이 있었다. 국가는 국책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저렴한 비용으로 민간 기업들이 이용하게 했으며, 민간 기업들과 대학들은 활발한 협력으로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정보통신기술을 발전시켰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술과 양성된 고급 인력은 우리나라 ICT 산업의 성장을 이끈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초고속정보통신망 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당시 우리나라의 새판에 아쉬운 점은 없었을까? 먼저 가장 아쉬운 점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추진된 사업이었지만 모든 국민에게 혜택이 균형 있게 미치지 못했다는 점이다. 당시 해고되거나 계약직으로 전환된 타 업종의 근로자들은 IT 열풍에서 소외되어 성장의 수혜를 누리지 못했다.
정보통신 산업과 플랫폼 산업으로 이어지는 초고속정보통신망 기반의 신기술들은 새롭게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신규 고급 인력에게 그 수혜가 집중되었으며, 갈수록 집중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이는 미국 뉴딜을 추진한 루스벨트 대통령의 철학, 즉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새판을 마련한다는 뉴딜의 개념을 우리나라의 초고속정보통신망 사업이 만든 새판은 온전히 실현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국민 전체 이익 공유하지 못한 점은 아쉬워
고용 창출뿐만 아니라 공공재로서 모든 국민과 산업에 혜택을 골고루 나눠주는 것도 충분하지 못했다. 당시 기초기술 개발투자, 한국전력, 송유관공사, 도로공사 등이 총동원된 광케이블망 구축 등 국민의 천문학적인 세금을 투입해 구축된 기초 인프라는 국내 통신 관련 기업들을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켰으나 국민 전체에 그 이익을 공유하지는 못했다. 통신 인프라에 대한 대대적 투자를 통해 발생한 효과는 소비자 잉여 대신 기업의 생산자 잉여로 흡수된 셈이다.
2019년 통계청 발표를 보면 우리나라의 통신 관련 가구 지출은 식료품, 교통비와 함께 가정의 지출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국민의 세금을 천문학적으로 쏟아부어 구축되고 유지되는 초고속정보통신망이라면 공공재 개념으로 기업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게 이용자 가격에 반영함으로써 모든 국민에게 실질적 이익이 돌아가게 하면 어땠을까? 문재인정부 초기에 통신비 인하를 위해 정부와 기업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지만, 초고속정보통신망 마스터플랜 준비과정에서 국민에게 공공투자의 혜택을 돌려줄 전략을 포함시켰다면 기업들도 이를 반영한 사업 모델을 마련하지 않았을까?
20년 만에 한국판 뉴딜을 통해 대한민국은 다시 한번 새로운 판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는 통신산업이 아닌 데이터 기반의 디지털 산업이다. 이번 디지털 뉴딜에 정부가 투자하는 예산은 160조 원 규모로 1995년 정부가 초고속정보통신망 사업 마스터플랜을 계획할 당시 45조 예산의 네 배 가까운 금액이다.
디지털 뉴딜 사업은 데이터 댐을 통해 여기저기 흩어져 사라지거나 활용되지 못하는 공공과 민간의 데이터를 데이터 댐에 모으고, 이를 활용하는 D.N.A. 산업을 진흥시킴으로써 우리나라 산업구조를 기존의 제조업 중심에서 비대면 상황에서도 지속 성장이 가능한 4차 산업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목표로 진행되는 사업이다.
대공황을 극복한 미국 뉴딜 사업에서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테네시강 유역의 수자원을 댐 건설을 통해 저수하고, 이를 이용해 인근 지역의 농업용수로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수력발전을 통해 저렴한 가격에 전기를 공급함으로써 미국 경제를 농업에서 당시로서는 신산업인 제조업으로 전환시켰다.

국민 세금이 국민 혜택으로 돌아가도록
디지털 뉴딜 사업 역시 데이터를 데이터 댐에 모으고, 이를 D.N.A. 기술을 통해 더 가치 있는 자원인 정보(Information)와 지식(Knowledge)으로 변환해 우리나라의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디지털 뉴딜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된다면 우리나라의 반도체, 휴대전화나 자동차 산업처럼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기업들이 플랫폼 산업, D.N.A. 사업에서 등장할 것이며, 이를 통해 질 높은 일자리가 국민에게 제공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과거의 경험을 통해 디지털 뉴딜 추진과정에서 보완해야 할 사항들도 있다. 엄청난 공공투자로 디지털 산업의 기초가 다져진다면, 20년 전 부족했던 점을 보완해 투자된 국민의 세금이 국민에게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공공재로 데이터와 디지털 인프라를 공급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데이터 기반의 모든 산업이 세계적으로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하고 국민도 관련 서비스를 좀 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이용 비용을 낮추고 산업의 경쟁력을 높여야 신규 기업의 진입을 통해 고용을 창출하고 대기업들은 글로벌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디지털 뉴딜을 통해 만들어갈 새판이 얼마나 많은 국민과 기업을 담을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6·25전쟁을 딛고 고속성장을 달성했고, 외환위기를 딛고 IT 강국으로 다시 일어섰던 것처럼 코로나19 위기 다음에 올 새판에서 대한민국을 세계 선도국가에 올려놓을 기회가 한국판 뉴딜을 통해 열릴 수 있다. 지금이라도 한국판 뉴딜의 성과가 모든 국민에게 닿을 수 있도록 정부와 관계자들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김현명 명지대 교통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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