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뉴딜의 핵심축 가운데 하나인 지역균형 뉴딜 사업이 전국 곳곳에서 빠르게 탄력을 받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지금까지 추진한 국가균형발전 전략이나 지역경제 활성화 계획이 지역균형 뉴딜 사업으로 활발하게 전환하고 있어서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사회·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지자체의 강력한 의지도 지역균형 뉴딜의 추진 동력을 키우고 있다.
지역균형 뉴딜은 한국판 뉴딜을 지역 기반으로 확장한 개념이다.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가운데 그린 뉴딜과 디지털 뉴딜 분야에 대한 대규모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지역 중심으로 구현하자는 것이다. 지역은 한국판 뉴딜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성과를 체감할 수 있는 현장이다. 전국 각지에서 한국판 뉴딜의 축소판이 펼쳐지도록 하는 게 바로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는 과정인 셈이다. 갈수록 심화하는 수도권과 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고, 국가균형발전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서도 지역균형 뉴딜은 중요한 국정과제다.
지역균형 뉴딜 어떻게 추진되고 있나
정부는 10월 13일 열린 제2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에서 지역균형 뉴딜 추진 방안을 확정했다. 이 방안에서 지역균형 뉴딜의 추진 유형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눴다. 첫째, 정부가 7월 14일 발표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에 포함된 그린 뉴딜과 디지털 뉴딜의 지역 사업이다. 첨단 도로교통체계 구축, 스마트시티나 스마트산업단지 조성, 신재생에너지 보급 등 중앙정부가 구상한 사업을 중앙-지방정부가 함께 하는 ‘매칭(연결, 동반) 프로젝트’ 방식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2025년까지 75조 3000억 원이 투입된다. 이는 정부가 예상하는 그린·디지털 뉴딜의 총투자비 160조 원의 절반에 가까운 비중이다.
두 번째 추진 유형은 지자체 주도형이다. 각 지자체가 지역 사정과 특성을 고려해 주도적으로 발굴하고 추진하는 지역 고유의 뉴딜 사업이다. 마지막 유형은 공공기관 선도형 뉴딜이다. 전국 각지의 혁신도시에 있는 공공기관들이 자체 재원과 인력, 기술 등을 활용하고 해당 지역의 지자체·연구기관·기업 등과 협업해 추진하는 사업이다. 한국전력 발전자회사들의 지능형 디지털 발전소 구축, 한국가스공사의 액화천연가스(LNG) 생산기지 내 스마트팩토리 구축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된다.
광역 13곳, 기초 131곳 구상 지나 본격 시동
한국판 뉴딜은 아직 대체로 구상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정부는 2021년 예산에 20조 7000~8000억 원 규모의 한국판 뉴딜 예산을 편성해 2021년부터 다양한 사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지자체에서는 지역균형 뉴딜이 벌써 시작된 듯한 모습이다. 행정안전부는 자체적으로 뉴딜 사업을 발굴해 구체적인 추진 목표와 일정까지 발표한 지자체가 11월 말 현재 144곳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했다. 광역지자체가 13곳, 기초지자체가 131곳이다.
이들 지역은 지역균형 뉴딜의 구상 단계를 지나 이미 시행에 들어갔다. 전라남도는 바다, 섬, 바람 등 풍부한 풍력자원을 토대로 한 ‘블루 이코노미 프로젝트’를 2020년 초에 발표하고, 신안군 일대에 대규모 해상풍력발전단지 조성에 들어갔다. 도는 2월 신안군, 한국전력공사, 민간 발전소 등 18개 기관과 ‘신안 해상풍력 1단계 컨소시엄(연합체)’을 구성한 뒤 9월에는 전남도·신안군·신안 신용협동조합·어민단체 등 4자 간 상생협약을 체결해 주민 수용성 확보 작업까지 마무리했다.
전남도가 구성한 컨소시엄은 2030년까지 총 48조 원을 투입해 서울과 인천 시민이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용량인 8.2GW 수준의 해상풍력발전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는 2030년까지 정부의 풍력발전 목표치 12GW의 약 70%에 해당하는 발전량으로, 단일 지역 해상풍력 단지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전남도는 이 단지에 유관 기업 450개를 유치해 상생형 일자리 12만 개를 만든다는 계획도 세웠다.
제주도는 2030년까지 탄소중립의 에너지 자립 섬을 만들겠다는 ‘카본프리 아일랜드 2030’ 정책을 내세우며 그린 뉴딜을 선도하고 있다. 2030년까지 모든 전력 생산을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100% 전환하고, 도내 등록차량 가운데 75% 이상을 전기차로 대체하는 대신 2030년 이후에는 내연기관차의 신규 등록을 전면 중단한다는 방침도 발표했다.
최근에는 풍력발전과 수소에너지를 결합한 새로운 그린 뉴딜 사업 프로젝트도 발표했다. 제주의 바람으로 만든 풍력 전기로 물을 분해해 다시 수소가스를 생산한 뒤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저장, 활용한다는 사업 구상이다. 생산된 수소는 수소전기차, 수소버스, 수소선박, 수소드론, 연료전지, 열병합발전 등에 활용할 수 있다. 제주도는 풍력 전기를 이용한 수소가스 생산·활용 기술의 개발 및 실증을 위해 11월부터 2023년 10월까지 3년간 국비 140억 원과 민간자본 80억 원 등 총 220억 원을 투입한다.
▶충남대 인공지능융합연구센터 조감도 | 대전시
특구 지정과 연계한 사업의 길도 열려
대전시는 풍부한 과학기술 자원과 연구개발(R&D) 인력을 확보한 지역 이점을 살려 디지털 뉴딜을 선도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인공지능(AI) 기반의 지능형 스마트시티를 지향한다. 정부가 구축한 인공지능 데이터셋을 활용해 교통·의료·복지 등 도시 문제를 해결하는 ‘미래형 첨단도시 모델’을 창출하겠다는 게 대전시의 목표다. 이미 시범 사업을 보여주기도 했다. 대전이 기획하고, 정부가 선정한 ‘마이데이터 기반 교통약자 이동지원 서비스’나 ‘AI 기반의 지하철 위험·이상행동 감지 시스템’이 그 사례다.
대전시는 10월에 전국 최초로 과학 부시장제를 도입하고, 대전형 연구개발 전문기관인 대전과학산업진흥원을 설립하는 등 관련 조직체계 개편 작업도 마무리했다. 또 AI 연구 및 사업화 지원을 위한 거점 공간인 대덕융합연구센터 조성, 충남대와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사이 궁동 일원에 ‘스타트업 파크’ 조성 등에 착수해 창업인재 육성과 창업 지원사업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정부의 규제자유특구 지정과 연계한 지역균형 뉴딜사업의 길도 열렸다. 11월 13일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규제자유특구위원회 회의에서는 4차 신규 지정 3곳과 기존 지정 특구의 추가 사업 1건이 통과됐다. 2019년 4월 도입된 규제자유특구 지정은 새로운 기술이나 신산업과 관련한 덩어리 규제들을 풀고 재정을 지원해 지역혁신과 경제 활성화를 꾀할 수 있게 하는 제도로, 3차까지 모두 21곳이 지정됐다. 특구위원회의 4차 심의·의결에서는 지역균형 뉴딜의 대상인 그린·디지털 사업 분야에서만 신규 지정이 이뤄졌다.
광주광역시는 북구 첨단산단 일대에 대해 에너지저장장치(ESS) 발전 특구를 신청해 최종 통과됐다. 이에 따라 광주시 특구에서는 현행 제도에서 불가능한 ESS를 통한 발전 사업의 실증이 시작되고, 전력 공급자와 수요자 간 직접 전력 거래도 허용된다. 또 신재생에너지와 ESS 기반의 전력거래 실증사업을 위해 2021년부터 2024년까지 국비 111억 원을 포함한 195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특구에 참여하는 사업자는 ESS발전소 인프라 구축과 발전소 제어, 대량자료(빅데이터) 기반의 ESS 발전 종합상황실 운영, 전기차 충전소와 공공건물을 대상으로 한 전력거래 등의 특례 사업이 가능하다. 광주시는 북구 산단 내 태양광발전 전력을 모을 수 있는 대용량 ESS발전소 운영 기술과 전력 직거래 시스템의 개발을 서두를 방침이다.
울산시는 폐기물 소각시설 등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경제적 가치를 지닌 자원으로 재활용해 탄소중립 사회를 앞당기겠다는 구상을 제시해 특구 지정을 받았다. 이산화탄소 전환물(탄산칼슘)은 현행 법령상 폐기물로 분류돼 그동안 재활용 기술을 개발하고도 사업화를 할 수 없는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앞으로 특구에 참여하는 사업자는 폐기물 소각장, 하수처리시설 등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탄산칼슘을 생성하고, 이를 블록이나 골재 등 건설 소재 또는 화학 소재 등으로 재활용할 수 있게 된다. 정유와 철강 등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산업이 밀집해 있는 울산은 국내 탄소 배출량 1위 도시에서 그린 뉴딜 산업의 개척을 선도하는 도시로 바뀌고 있다.
“신속, 혁신, 자율, 공유의 가치를 중시”
경상남도는 5세대(5G) 이동통신을 활용한 차세대 스마트공장 구축으로 디지털 뉴딜형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됐다. 중소·중견기업 제조 현장에 현행 전파법이 허용하지 않는 비면허 주파수 대역(6GHz)을 세계 최초로 적용하고, 무선기기 전력밀도 제한도 완화하는 것이 규제 특례의 핵심이다.
경남도는 우선 창원산업단지 내 공장 두 곳을 대상으로 2021년부터 2022년 말까지 2년 동안 233억 원을 투입해 5G 기술을 활용한 시범서비스의 실증에 들어간다. 이 사업에는 SK네트웍스, 이즈파크,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등 19개 기관과 기업이 참여한다. 창원 산업단지에서는 2년 전부터 자동차 부품, 기계 부품 등을 생산하는 중소·중견기업에 스마트공장 보급 사업이 진행 중이다. 초연결·초고속을 특징으로 한 5G 통신 기술을 확산하면 스마트공장의 고도화를 촉진하고, 생산성 향상과 품질 개선으로 제조업 전반의 역량 강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경남도는 기대한다.
정부는 앞으로도 지역균형 뉴딜과 연계해 규제자유특구를 신규 지정하고, 2021년부터는 수도권 외 광역지자체 단위의 주력 산업은 디지털·그린 중심의 재편을 유도할 계획이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한국판 뉴딜의 절반을 차지하는 지역균형 뉴딜을 선도하는 핵심이 바로 규제자유특구라고 보고 있다”며 “신속, 혁신, 자율, 공유의 가치를 중시하는 규제자유특구의 운영 원칙을 지키면서도 지역이 제시하는 다양한 아이템을 발굴해 지역균형 뉴딜의 거점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박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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