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는 마주보고 웃으며 나누는 예쁜 말 감염병 위험 수어로 알릴 수 있어 자부심”

2020.11.23 최신호 보기
▶수어통역사 고은미 씨가 10월 28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옥상 정원에서 수어로 “감사합니다”를 표현하고 있다.

코로나19 브리핑 수어통역사 고은미 씨
코로나19 세계적 유행 속에서 한국은 봉쇄 없이 방역에 성공한 나라로 공히 평가받았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K-방역의 우수성이 전 세계적으로 113개국에 전파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25개 나라도 K-방역의 성공적인 경험을 공유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K-방역이 전 세계의 모범이 됐다”고 밝힌 게 괜한 자신감이 아니다.
코로나19와 싸움에서 모범 사례로 평가받는 K-방역에 대해 외신들은 ‘신속하고 투명한 정보 공개’를 중요한 부분으로 평가했다. “코로나19 전파를 막기 위해 모든 과정과 결과를 정례브리핑으로 투명하게 공개하고 대책을 마련한 대한민국을 배우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K-방역의 성공 기반인 코로나19 정례브리핑 현장. 이 현장에는 정부 관계자들만큼 익숙해진 얼굴이 있다. 발표자 옆에서 수어로 브리핑 내용을 전하는 수어통역사다. 전대미문의 감염병 유행 속에서 수어통역사들은 36만 청각장애인의 귀와 입이 되었다. 22년 차 수어통역사 고은미 씨를 만나 9개월간의 뜨거웠던 현장 이야기를 들었다.

-코로나19 정례브리핑에 참여하는 수어통역사는 몇 명인가요?
=현재는 여섯 명이 일하고 있어요. 초반과 비교하면 많이 바뀌었죠. 그사이 뉴스 쪽으로 간 분도 있고, 새로 합류한 분도 있고요.
 
-브리핑 현장이 꽤 난도가 높다고 들었어요.
=생방송은 낯설죠, 전문용어는 어렵죠, 참 힘들었어요. 뉴스를 보는 사람은 설명과 함께 나오니까 이해가 쉬운데, 현장에서 통역사는 처음 듣는 낯선 단어에 당황하기도 하고 긴장도 많이 해요. 특히 기자들과 질의응답은 전문용어가 더 많이 나오다 보니 더욱 긴장됐어요. 또 TV 화면에 크게 잡히면서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니까 신경이 더 쓰였어요. 그래도 가장 힘든 점은 통역사로서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을 때 받는 스트레스에요. 9개월 하면서 지금은 용어들도 익숙해지고 임하는 자세나 마음가짐도 강해졌죠. 현장 대응에도 여유가 생겼고요.
 
-수어통역사는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나요?
=초반엔 주 단위로, 지금은 한 달 단위로 배정받아 일해요. 국립국어원 특수언어진흥과에서 배정과 관리를 맡고 있어요. 위기 상황인 만큼 주말과 심야 할 것 없이 브리핑 시간과 장소가 수시로 바뀌어 24시간 대기 중이었어요. 지금은 업무량이 절반으로 줄었어요. 이전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와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가 오전, 오후로 나눠 매일 브리핑했잖아요. 지금은 중대본과 방대본이 돌아가면서 하루 한 번씩 해요.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7월 13일 코로나19 브리핑 공공 수어통역사에게 감사패를 전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있다.│문화체육관광부

-수어는 손동작 외에 표정과 몸짓 등도 포함된다고 하던데요. 수어라는 언어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모두의 공식 언어는 아니지만 청각장애인의 공식 언어로, 2016년도에 인정도 받았어요. 한국어가 듣고 말하기라면, 수어는 시각운동 언어예요. 눈으로 보고 손과 몸으로 표현하죠. 목소리로 사람을 알아보듯 수어에도 말투가 있어요. 그 나름의 장단과 어감이 있지요. 말투가 느린 사람, 빠른 사람, 특정 단어를 특이하게 발음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수어도 손동작의 각도나 장단을 각자 다르게 써요. 손동작인 수지는 한글로 따지면 글자에 해당해요. 얼굴 표정과 몸의 방향 등은 비수지 기호고요. 청각장애인들의 억양과 같은 것이죠. 수어는 비수지까지 함께해야만 정확한 의미가 전달돼요. 시선 처리, 몸의 움직임이나 방향에도 다 의미가 포함되어 있어요. 그래서 브리핑할 때 마스크를 못 씁니다.
 
-수어에서 비수지가 굉장히 중요하겠어요.
=손을 하나도 안 쓰고 얼굴 표정만으로 말할 수 있는 것도 많아요. 그 정도로 비수지가 중요하죠. 동음이의어가 있듯 수어도 동작 하나에 여러 의미가 있는 경우가 있어요. 이때 변별을 비수지로 합니다.
 
-그럼 표정이나 몸 쓰는 방법도 따로 배우나요?
=수어 배울 때 같이 배워요. 손 따로, 얼굴 따로면 연결이 안 되니까요. 미묘한 차이로 손동작과 표정이 엇박이 되면 못 알아들을 수 있어요. 외국어 할 때 악센트 틀리면 외국인들이 갸우뚱하잖아요. 그런 경우가 생겨요. 영어 배울 때 문장을 통으로 외우듯, 어떤 상황에서 그 표정과 표현 방식을 통째로 외워야 할 필요가 있어요.
 
-직업 특성상 현장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데, 감염에 어떻게 대처하나요?
=손소독은 기본으로 하고요. 통역하는 30분 남짓 외에는 늘 마스크를 쓰고 있어요. 휴대용 손소독제는 항상 가지고 다니고요.
 
-수어 통역 시 옷차림에도 주의사항이 있을까요?
=줄무늬나 화려한 색의 옷은 눈에 피로감을 줄 수 있어 피해요. 액세서리도 거의 안 하고요. 실 같은 얇은 목걸이도 조명에 비쳐 움직일 때마다 눈이 부시더라고요.
 
-수어는 만국 공통어인가요?
=나라마다 달라요.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국제 수어가 있고요. 가장 많이 쓰는 건 미국 수어예요.
 
-한국에서 수어가 정식 언어로 인정받은 지 몇 년 안 됐어요. 해외는 어떤가요?
=미국은 이미 제2외국어로 선택된 지 오래예요. 수어로만 운영하는 대학도 있죠. 교수부터 교직원 모두가 수어로만 소통하는 학교도 있고요. 우리나라는 아직 많이 부족하죠. 수어통역사 인원도 1818명밖에 없어요. 36만 청각장애인 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인원이죠. 앞으로 학과도 많이 생기면 좋겠어요. 통역사는 아니어도 국민이 두려워하지 않고 “안녕, 뭐가 필요하니?” 정도는 청각장애인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영어로 “굿모닝” 인사하듯요. 그런 사회가 오면 좋겠어요. 통역이 사실 전달 외에도 다른 두 세계의 마음을 연결해주는 역할도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이번 코로나19 브리핑이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끼쳤다고 봐요.
 
-첫 코로나19 브리핑 때는 수어 통역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코로나19 상황은 누구나 알아야 하는 상황이죠. 나를 위해서도 타인을 위해서도 말이에요. 그런 시선에서 청각장애인이 코로나 정보에 소외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어요. 마스크를 왜 꼭 써야 하는지, 얼마나 위험한지 시급함과 위험성을 알리는 데 문자로는 한계가 있잖아요. 기사가 난 다음 날부터 코로나19 브리핑에 바로 수어 통역이 적용됐어요.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빠르게 투입될 수 있었죠. 2019년 12월 문체부는 정례브리핑에서 수어 통역을 처음 공식화했거든요.
 
▶고은미 씨가 수어로 ‘희망’을 표현하고 있다.

-화면 전면에 등장하는 수어통역사의 모습이 꽤 인상적이에요. 과거 화면 한쪽에 작게 나왔던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로도 읽히고요.
=문체부 정례브리핑부터 전면 등장했어요. 그전엔 주 발표자가 크게 잡히고 수어통역사는 옆면에 작게 잡혔죠. 문체부가 정례브리핑에 수어 통역을 공식화하면서 변화를 꾀했어요. 수어통역사도 대등하게 전달자로 인식하고 브리핑하는 사람과 나란히 서게 한 거죠. 방송을 지켜볼 국민을 위한 선택으로,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그 시작이 코로나19 브리핑으로도 이어졌고요.
 
-이런 변화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전 국민에게 정부가 수어를 언어로 인정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줬어요. 최근에 통역 전문업체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수어도 하나의 언어로 인정한다는 의미죠. 또 청각장애인에겐 알권리와 더 높은 정보 접근성도 줬고요. 청각장애인에겐 누군가에게 수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각인시켜준 기회였던 것 같아요.
 
-코로나19 브리핑 이후 주변에서 수어통역사를 꿈꾸는 청년을 여럿 봤어요. 직업으로서 수어통역사는 어떤가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일하는 재미도 있고요. 제 경우는 청각장애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비장애인 자녀로서 사명감도 있어 단순하게 직업을 넘어선 느낌도 있어요. 특히 청각장애인에게 감염병 위험을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껴요.
 
-수어통역사에게 필요한 자질이 있을까요?
=일단 마음이 폐쇄적이지 않은 사람. 다양성을 빠르게 수용하고, 자신과 다름을 재밌어한다면 잘 맞을 거 같아요. 기본적으로 통역 업무예요. 화자의 의도를 빨리 파악해야 하죠. 맥락을 빨리 이해하는 사람이 유리해요. 말귀 빠른 사람이 하면 좋겠죠. 그리고 무엇보다 청각장애인 문화권을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언어를 배울 때 그 나라 문화를 이해해야 하듯 말이죠. 예를 들어볼게요. 같이 밥 먹다가 더 먹을래? 물었을 때 “괜찮아요”라는 대답을 했어요. 음성언어로는 ‘그만 먹겠다’는 거절의 뜻이지만, 수어에선 ‘더 먹겠다’는 오케이의 의미예요. 같은 말이지만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것이죠. 문법구조도 한국어랑 수어가 달라요. 영어와 구조가 같은 경우가 있는데, 이런 걸 흥미로워하면 수어는 굉장히 재밌는 언어죠.
 
-색다른 매력이 있는데요. 그렇다면 수어에도 비속어와 사투리가 있나요?
=언어니까 물론 다 있죠. 욕도 있어요. 옛날 수어와 요즘 수어는 또 달라요. 코로나19 수어만 해도 변했죠. 우리가 우한 폐렴에서 코로나19로 바뀌었듯요.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는 수어도 있어요. 모든 언어가 변하듯이 수어도 변해요.
 
-수어통역사에 대한 인식 가운데 바로잡고 싶은 부분이 있을까요?
=일부 부정적인 의견도 있지만 그보단 감사의 말을 더 하고 싶어요. 많은 분이 필요하다고 인식하는 거 같아요. 그렇게 같이 긍정적으로 물들어가면 좋겠어요. 변화가 시작된 것에 감사드려요.
 
-수어통역사로서 앞으로 계획은요?
=저 또한 힘든 시기였지만 감동적이고 고마운 1년이었어요. 새로운 변화, 우리나라가 조금은 더 멋있게 나아가는 과정에 함께했다는 것에 뿌듯해요. 앞으로 바람이라면 특정인이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언어로 수어를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미국 안 가도 영어 배우듯,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언어로 수어가 자리매김하면 정말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수어의 매력을 알려주세요.
=가장 매력적인 것은 마주보지 않고는 대화가 안 된다는 점이에요. 이전 직장에서 총장님이 유리창 사이를 두고 학생들과 수다 떠는 제 모습을 보고 너무 아름다워 잊지 못한다고 말하셨어요. 그렇듯 수어는 늘 서로의 눈을 바라봐야 해요. 또 항상 서로의 얼굴을 바라봐야 하고요. 표정도 다채로워야 하죠. 무표정하게 수어를 할 순 없거든요. 마주보고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언어가 수어입니다. 모두가 이 예쁜 언어를 알아봐주면 좋겠어요.

글 심은하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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