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 프로젝트 팀 ‘닥클’을 이끌고 있는 허준녕 국군의무사령부 대위│ 국군의무사령부
‘코로나19 체크업 앱’ 만든 허준녕 대위
‘기술과 데이터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서비스를 구현한다.’
비영리 프로젝트 팀 ‘닥클’(DOCL·Doctors in the Cloud)이 지향하는 목표다. 닥클은 ‘코로나19 체크업 앱(애플리케이션)’을 완성해 의료 현장의 효율을 높이고 코로나19로부터 많은 생명을 구하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체크업 앱은 5월 세계보건기구(WHO)의 디지털 솔루션 프로그램으로 등재된 데 이어 9월에는 구글로부터 6억 원의 기금을 지원받기도 했다. 구글은 코로나19와 관련해 스탠퍼드대 연구팀 등 세계 31개 프로젝트를 지원했는데 한국에서는 닥클이 유일하게 포함됐다.
닥클을 이끌고 있는 허준녕 대위(34·국군의무사령부 군의관)는 10월 20일 전화 인터뷰에서 “코로나19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치료제·백신 개발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꼭 치료받아야 하는 환자를 놓치지 않는 것”이라며 “환자 중 입원 치료가 필요한 위급 환자를 우선 치료하는 데 효과적으로 의료자원을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국가별 사망률은 0.3%에서 15%까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그 나라의 의료 수준이나 그 나라 사람들의 건강상태가 달라서가 아니라 당시 의료자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했느냐에 달려 있다. 코로나19는 대부분의 환자가 가볍게 넘어가지만 약 10%의 환자는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환자 관리·진단 시간 감소 등 호평 국제사회 주목
허준녕 대위가 처음 코로나19 관련 앱을 개발한 것은 코로나19가 한창 심각하던 3월이었다. 허 대위는 “현장에 나가는 것 말고도 정보기술(IT)과 의료를 접목해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했다”며 “대구에서 환자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것을 보면서 어떤 환자들이 안 좋아지는지 빨리 판단한다면 그 환자들에게 의료를 집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시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에서 중증도 분류기준을 만들어 배포했다. 확진자가 많아지면서 병원에서 위험한 환자를 선별할 수 있도록 스무 가지가 넘는 항목을 적어놓은 지침이었는데, 현장에 있는 의사들이 모두 외워 분류하기가 쉽지 않았다. 적시에 분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지침을 굳이 외우거나 진료할 때 일일이 참고하지 않아도 의사가 앱을 이용해 환자를 쉽게 분류하도록 했다. 그는 또 미확진자를 대상으로 한 코로나19 자가진단 앱도 개발했다.
허 대위는 “단순히 사용자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다른 앱들과 달리 실제로 환자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으로 기대하며 제작했다”고 말했다.
허 대위는 의대 재학 시절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 시간을 재는 ‘스터디 메이트(Study Mate)’라는 타이머 앱을 만들어 당시 앱스토어 전체 판매순위 2위를 기록한 적이 있고, 뇌졸중 환자들에게 주변 응급실 위치를 안내하는 ‘뇌졸중 119 앱’도 개발한 바 있다. 또 강원도 야전부대에서 근무할 때는 지휘관과 군의관이 쉽게 소통할 수 있도록 야전 환자관리 앱을 만드는 등 정보기술과 관련해 남다른 지식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10대 시절 코딩을 독학으로 배워놓은 게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대학과 합작 프로젝트 ‘닥클’ 만들어 비영리 운영
하지만 허준녕 대위 혼자서는 한계가 있었다. 당장 많은 사람이 앱에 접속하면서 서버가 감당하지 못했다. 허 대위가 이런 사실을 누리소통망(SNS)에 올리자 전에는 잘 알지 못했던 많은 사람이 도움의 손길을 보냈다. 특히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박유랑·윤상철 교수가 “간단한 앱으로 끝내지 말고 더욱 큰 프로젝트로 만들면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제안하면서 국군의무사령부와 연세대 의과대학의 합작 프로젝트 ‘닥클’이 만들어졌다. 비영리로 운영되는 닥클에는 전문 의료진부터 마케팅, 동영상 제작자, 편집 디자이너 등 40여 명이 재능 기부 형태로 활동하고 있다. 관련 특허 등을 모두 포기해 현재 누구라도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다.
허준녕 대위가 만든 초기 앱을 발전시킨 닥클의 체크업 앱은 질병관리청의 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환자를 분류해내는 인공지능&통계학적 알고리즘이다. 실제 확진환자 데이터를 분석해 정확도 95% 이상으로 환자를 분류하고 있다.
코로나19 체크업 앱에서 의료진용 앱과 연계되는 경우, 환자의 현재 상태뿐 아니라 인공지능&통계학적 예측 모델을 통해 앞으로 악화될 확률을 미리 받아봄으로써 환자가 나빠지기 전에 대처할 수 있다.
이 앱은 확진자용, 미확진자(일반 국민)용, 조직관리용 등 세 종류로 구성됐다. 미확진자용은 환자들이 언제 선별진료소에 가야 하는지를 안내하는 것이고, 확진자용은 어떤 환자들이 더 위험에 처해 있는지를 판단해주는 앱이다. 또 조직관리용은 조직을 관리하는 데 조직 구성원들이 혹시라도 위험한 증상이 있으면 이것을 판단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허 대위는 “코로나19 체크업 앱은 많이 사용할수록 더욱 정확해진다”며 “코로나19 체크업 앱을 사용하는 것은 본인을 위해서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리는 데 기여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의료 분야에 IT 접목 사람 살리는 데 보탬 될 것”
코로나19 같은 신종 감염병은 환자를 치료하는 데 급급해 데이터를 모으기가 쉽지 않다. 코로나19 체크업 앱은 이용자가 입력한 데이터를 이용자의 동의 아래 모델을 향상시키는 데 사용하기 때문에 이용자가 많을수록 더 정확한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다. 코로나19 체크업 앱 등의 덕분으로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코로나19 환자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허준녕 대위는 특히 의료자원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에서 더욱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허 대위는 “우리나라도 중요하지만 의료 기반 시설이 가장 부족한 나라가 개발도상국들”이라며 “이들 나라에 이런 해결책을 도입하는 게 필요하고, 코로나19 체크업 앱이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생명앱’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허 대위는 앞으로 의료 분야에 정보기술을 접목해 사람을 살리는 데 보탬이 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는 “앞으로 정해진 분야는 없지만 의료와 관련 데이터를 분석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실제로 환자를 살리는 데 도움을 줄 가능성이 높다”며 “그런 부분이 정보기술과 와 만나서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찬영 기자
▶체크업 앱 첫 화면
미확진자·확진자·의료진 등 휴대전화로 모두 무료 이용
허준녕 대위가 처음 개발한 ‘코로나19 환자 중증도 분류 앱’과 ‘체크업 앱’ 등은 닥클(DOCL) 프로젝트를 통해 환자는 물론 의료진이 사용할 수 있는 통합 앱으로 발전했다.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통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이 앱은 미확진자용, 확진자용, 관리자용(체크업 그룹스) 등 세 가지로 구성돼 있다.
미확진자용 서비스(docl.org)는 코로나19 감염이 의심스러울 때 자신의 증상을 입력하면 선별진료소 방문 필요 여부와 대처 방안을 안내한다. 일반인들이 1차로 진단해볼 수 있어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다. 앱을 통해 입력한 데이터와 결과는 피디에프(PDF) 파일로 전송과 출력이 가능해 선별진료소 방문 시 미리 앱에서 작성한 설문지를 제출하면 진료시간을 줄일 수 있다.
확진자용 서비스(covid.docl.org)는 환자가 기본 정보와 증상, 과거력을 입력하면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이용해 예후 예측 결과를 제시해준다. 질병관리청에서 제공받은 국내 확진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통해 환자의 입원 필요 여부를 95% 이상 정확도로 예측한다. 환자가 본인의 기본 정보와 증상, 체온을 입력하면 이에 따른 위험도를 평가해준다. 의료진과 연동된 경우에는 의료진이 회진을 돌지 않아도 환자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관리자용 서비스(groups.docl.org)는 직장·학교 등에서 개인의 건강상태를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는 기능으로 사용자 등록이 필요하다. 출근 시 체온 등 자신의 증상을 앱에 입력하면, 개인이 지정한 사람들과 자신의 건강상태를 공유할 수 있다. 체온이 높은 경우 빨간색으로 표시해 강조되고, 증상이 있을 때는 자신이 지정한 관리자에게 알림이 자동으로 전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