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기회 삼아 “나는 이렇게 재도약했다”

2020.11.09 최신호 보기
▶10월 16일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글로벌이지 사옥 앞에서 이지연 대표가 나뭇잎 꾸미기 제품을 들고 있다.

10월 16일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글로벌이지 사무실에서 만난 이지연 대표는 2012년 개인회생을 결심하기 직전 삶의 마지막까지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점토에 반해 2004년부터 공방을 운영하다 2008년 아동미술교구 업체를 창업했으나 과당경쟁에 영업 손실이 누적돼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겁 없이 끌어다 쓴 개인 부채까지 사업에 실제로 들어간 돈이 10억 원이 넘었다. 남편과 이혼하고 아버지가 쓰러진 것도 그때였다.
“제가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건 우리 아이들 때문이었어요. 여기에서 내가 없어지면 두 아이는 천애 고아가 되고 부모님에게도 씻지 못할 죄를 짓는다, 나의 죽음으로 나를 도와준 사람들이 좋아지는 게 있나, 아니 굳건히 잘 살아 언젠가는 다 갚아야 한다고 마음먹었죠.”
부채를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때 개인회생을 알게 됐다. 개인회생은 재정적 어려움으로 파탄에 직면한 개인채무자가 채권자 등 이해관계인의 법률관계를 조정해 3년 내지 5년 동안 일정한 금액을 변제하면 나머지 채무를 면제받을 수 있게 해 채무자의 효율적 회생과 채권자의 이익을 꾀하기 위한 제도다.
개인회생 절차를 밟기 위해 찾아간 변호사 사무실에서는 파산을 권유했다. “그분들이 봐도 부채가 너무 많은 거예요. 애들도 있지, 부모님 부양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 갚으려 하느냐. 회생하고 2~3년 지나면 다들 파산하겠다고 다시 오는데, 돈 두 번 들이지 말라는 거죠.”
 
사회 복귀 위해 파산 아닌 회생 선택
그러나 그는 파산이 아닌 회생을 선택했다. “그때 제가 세운 원칙은 ‘절대 사람을 잃지 않는다’였어요. 모든 재산을 다 잃었으니 사람까지 잃으면 어디 가서 살 수가 없는 거예요. 어떻게든 갚기 위해 정당하게 벌 수 있는 건 다 하겠다고 마음먹었죠.”
집, 사업장, 차 등 모든 재산을 매각해 상환하고 남은 부채가 3억 원이었다. 회생 기간에 매달 갚아야 할 돈만 500만 원이었다. 어머니는 손주들을 챙기고, 병으로 누워 계신 아버지를 돌봐야 했기에 다섯 식구 생활비도 그가 책임져야 했다. 방과 후 수업과 문화센터 강사로 나가면서 동시에 보험회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자신이 일으킨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에는 퇴근, 휴일, 휴가가 없는 ‘3무’를 각오했다.
2014년 10월 교구를 유통하다 제조로 넘어가려는 회사에서 교구개발자를 구한다는 연락이 왔다. 중소기업에서 주는 월급으로 살 수 없다고 하자 ‘투잡’으로 일하라고 했다. 평일 낮에는 보험회사에 다니고 평일 저녁과 주말에는 교구 회사에서 일하는 생활이 시작됐다. 그러나 입사한 지 두 달 만에 큰불이 나 교구 회사 건물이 모두 타버렸다.
“저는 입사 두 달밖에 안 됐고, 개발자라 당장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당연히 제가 잘릴 줄 알았어요. 그런데 대표님이 재건 의지가 정말 대단했어요.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간다고 해서 그분 재산 다 털어서 다시 시작했어요.”
불타버린 디자인 자료를 복원하며 신상품을 개발했지만, 한번 어려워진 회사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주변에서 발전 가능성을 인정했고 거래처도 많았지만, 자금 부족으로 물건을 못 만들어 납품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급여가 6개월씩 밀리기 시작하더니 결국 2017년 기업 회생에 들어갔다. 
 
▶‘신혜경쌤의 뚝딱공작소’는 이지연 대표가 10년 동안 일해온 개발자의 이름을 딴 ㈜글로벌이지의 대표 브랜드다.

‘재도전 지원 프로그램’ 통해 1억 원 대출
5년 전 악몽이 다시 떠올랐다. 어느 날 대표가 그를 불러 독립을 권유했다. ‘자꾸 압류가 들어오는 상황에서는 회사가 성장할 수 없다. 우리가 브랜드를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대로 가다가 회사 문 닫으면 직원들은 어떻게 하느냐’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며 고사했으나 해가 지날수록 독립하지 않으면 모두 좌초하겠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2019년 마침 개인회생도 끝나 그해 11월 ㈜글로벌이지를 창업했다. “생각지도 않게 떠밀려서 회사를 창업하는 상황이 돼버렸는데 돈이 있어요, 뭐가 있어요. 자금 빌려주는 데를 열심히 찾아다녔는데 회생 이력 때문에 금융권 대출은 안 되고,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19 긴급경영안정자금도 못 받고 아무것도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누가 회생 이력을 보고 ‘재도전 지원 프로그램’을 알려줬어요.”
신용보증기금?의 ‘재도전 지원 프로그램’은 개인회생, 파산·면책 등으로 법적 변제 의무가 없는 기업주 등을 대상으로 신규 자금을 지원하는 제도로 신보에서 보증서를 발급하면 시중은행은 신보의 보증을 바탕으로 자금을 대출해주는 구조다. 2020년 7월 서류를 냈는데 9월에 보증금액 1억 원이 나왔다.
“신보 담당 팀장이 매출, 매입, 채권, 통장 거래 내역은 물론이고 제가 세금은 잘 납부했는지, 이익은 잘 내고 있는지, 돈은 회수를 잘하고 있는지 굉장히 꼼꼼하게 들여다봤어요. 그러고 나서 계속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 같아요. 저한테 이런 거액이 나올 수 있다는 게 놀랍고 감사했죠.”
 
자금 확보되자 주문 늘고 매출 급증
자금이 확보되자 때마침 명절 상품 주문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제기, 윷, 팽이, 공기 등 민속놀이를 직접 만들고 꾸미는 종합세트였는데 추석을 앞두고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주문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2019년 같은 기간 1000개 팔았던 물건을 2만 개 팔았다.
“자금이 없었으면 물건이 없어 못 팔 뻔했어요. 창업한 뒤 바로 코로나19가 유행해 ‘또 예전 같은 상황이 되나’ 걱정했는데 아닌 거예요. 학교에서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하니까 저희처럼 개별 포장한 제품이 비대면 학습교재로 빛을 보더라고요. 교구 업체들이 대부분 영세한 데다 단가를 낮추기 위해 번거로운 개별 포장을 안 하고 10인용이나 100인용으로 포장하거든요.”
추석이 지나자 가을용 제품인 나뭇잎 꾸미기 세트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창업 직후 5000만 원에 그쳤던 월 매출이 7월에 1억 원을 넘기고 9월에는 3억 6000만 원을 찍었다. 서너 명이던 직원은 14명으로 늘어났고, 아르바이트 인원이 평균 5명, 마을에서 부업으로 포장하는 주민이 15명이다.
“이게 창업하고 불과 1년도 안 돼서 생긴 성과잖아요. 게다가 제가 저지른 인생의 사고(?)도 2020년 12월에 졸업합니다. 법적인 회생은 2019년 끝났지만 개인적으로 빌린 부채까지 드디어 마무리하는 거예요. 여러모로 꿈같은 시간인데 여기서 실수하면 안 된다, 오만해지면 안 된다고 스스로 경계하고 있어요. 지난 10년 동안 여러 유혹도 많았는데, 우리 아이들한테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정말 잘했구나 싶어요.”

글·사진 원낙연 기자

▶행정안전부는 ‘다시 클리닉’ 온라인 상담을 위해 대국민 공모로 국민 서포터즈 ‘다시인(人)’을 선발했다.│행정안전부

위기와 실패에 빠져 있다면 ‘재도전 지원 프로그램’ 노크를
파산·면책을 받거나 회생절차를 종결한 기업을 지원하는 ‘재도전 지원 프로그램’과 다중채무자의 재창업을 돕기 위해 신용보증기금은 2020년 275억 원의 신규 자금 보증을 공급하고 있다. 2019년 287개 중소기업이 지원을 받았고 2020년 300개 이상 기업에 지원이 이뤄질 전망이다. 변제 자금과 신규 자금을 합해 업체당 평균 1억~2억 원의 자금이 지원된다. 재창업 지원으로는 작지 않은 규모다.
신보 외 채권기관에도 채무가 많다면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한 일괄 채무조정이 가능한 ‘재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게 좋다. 채무조정이 힘든 국세 체납 때문에 금융지원을 거의 받지 못하는 재창업자가 많은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지원받는 기업은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라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에 대해 체납처분유예 및 징수유예가 가능하다. 신청은 신용회복위원회에 하고 성실경영 평가와 사업성 평가는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가운데 원하는 기관을 선택할 수 있다.
일시적으로 경영 위기를 겪고 있는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중소기업 밸류업 프로그램’도 있다. 성장 잠재력은 있으나 일시적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에 보증 및 비금융 서비스를 제공해 부실을 사전에 막고 재도약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2019년 6월 시행됐다. 지원 대상에 여신 규모가 일정 수준 이하여서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이용이 어려운 중소기업을 포함해 지원 사각지대를 해소했다. 신보는 프로그램 도입 1년 동안 모두 88개 기업을 선정해 226억 원의 신규 보증과 323억 원의 기존 보증 전액 만기 연장, 보증료 우대, 경영진단 상담 등을 지원했고, 2020년에는 100개 기업을 지원할 예정이다.
행정안전부는 위기와 실패에 봉착한 기업과 사람을 위한 온라인 상담을 운영하고 있다. 2020 실패박람회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다시 클리닉’은 실패 경험을 사회적 자산화 하고,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국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고자 13명의 전문가와 함께한다. 2020년은 지역 박람회에서 진행하는 현장 상담 외에도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고민을 이야기하고 전문가의 조언과 정보를 받을 수 있도록 온라인 상담을 개설했다. 행안부는 이번 온라인 상담을 위해 대국민 공모를 통해 2020년 6월 국민 서포터즈 ‘다시인(人)’을 선발했고, 자산관리사·경영지도사, 심리치료사, 변호사 등 분야별 전문가와 2020 실패박람회 참여기관인 신용보증기금의 재기지원 전문가가 제도 관련 상담을 지원한다. 상담은 실패박람회 누리집(www.failexpo.com)의 ‘다시 클리닉’을 통해 신청하면 된다.

원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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