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 박용택이 10월 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프로야구 최초 2500안타를 달성한 뒤 기념 촬영하고 있다.│연합
일구일사(一球一死).
야구 선수들은 공 하나에 목숨을 건다. 한 회에서도, 한 경기에도, 한 시즌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고도의 집중력을 오랜 기간 꾸준히 유지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반짝’ 뜨기는 쉽지만, 긴 족적을 남기는 슈퍼스타의 탄생은 제한돼 있다.
LG 트윈스의 박용택(41)은 이런 측면에서 ‘보통’을 쌓고 쌓아 ‘영광’을 만든 집념의 사나이다. 통산 2500안타 신기록과 최다 출장 두 가지 기록은 한국 프로야구를 받치는 새로운 주춧돌이 됐기 때문이다.
2002년 데뷔 이래 19년간 한눈팔지 않고 달려온 그의 시간을 한 단어로 압축한다면 무엇이 될까? 그를 아는 사람들은 “한 타석, 한 타석을 준비하는 그의 자세에는 정성이 담겨 있다”라고 표현했는데, 아마도 ‘정성’이 그를 끌어온 힘일 것이다.
경기 전 손목에 테이프를 감을 때, 그는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다시 감는다. 데뷔 이래 경기 전 인터뷰는 하지 않았다. 연습량보다 더 중시한 것은 집중력이었다. 하지만 타격에 문제가 생기면 잠자리에 들었다가도, 밤새 수백 번의 스윙을 해야 하는 성격이다. 은퇴를 선언한 2020년에는 팀의 대타로 주로 출장했는데, 언제 투입될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경기 전, 경기 중 몸을 달구는 모습은 그의 정성을 보여준다.
프로야구 역사 창조한 개척자
한국 프로야구 2500안타의 신기원은 1982년 출범한 케이비오(KBO) 리그에 귀한 자산을 안겼다. 후배 선수들은 2500안타라는 도전 목표를 갖게 됐다. 이런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선배의 몫이고, 기록이 쌓이면서 리그에는 전통과 권위가 더해진다.
예술가는 보통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며, 창작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사회의 산소 같은 역할을 한다고 평가받는다. 박용택 또한 이전에 없었던 프로야구의 역사를 창조한 개척자로 볼 수 있다. 그것은 각고의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다. 김정준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야구를 인생에 많이 비유하는데, 한 분야에서 롱런하기는 쉽지 않다. 2500안타 기록은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프로 세계에서 연간 100개 이상의 안타를 제조한다는 것은 정상급 선수의 상징이다. 박용택은 2002년 데뷔 이래 한 해 평균 131개씩을 쳤다. 100년을 훨씬 넘는 미국 메이저리그 역사에서는 1963~1986년 신시내티 레즈 등에서 뛰었던 피터 로즈가 24년간 친 4256개(타율 0.303)의 안타가 최다 기록이다. 3000안타 이상을 기록한 선수가 30명을 넘는다. 한국 선수들과는 체격의 차이가 있고, 게임 수도 많다.
70년 역사의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1959~1981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등에서 뛴 장훈(3085개·타율 0.319)이 3000안타를 넘게 친 유일한 선수로 남아 있다. ‘천재’ 스즈키 이치로는 메이저리그(3089개)와 일본 리그(1278개)를 합쳐 4367개의 안타를 생산했지만, 기록이 두 곳에 나뉘어 있다.
야구 시장이나 선수층, 재정 규모나 역사에서 뒤지는 한국에서는 2500안타가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를 잡았다. 3할 타자 박용택(2020년 10월 23일 기준 통산 0.308)은 올 시즌이 끝날 때까지 계속 안타 수를 추가하고 있다. 2500안타를 향한 후배들의 도전도 자극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키움의 이정후 정도가 박용택의 기록을 깰 후보로 거론될 만큼, 2500안타 기록은 당분간 깨지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많다.
▶2002년 신인 시절의 박용택│ 한겨레
“‘빠’와 ‘까’ 겸비한 내가 슈퍼스타”
방망이는 여전히 뜨겁지만, 그는 박수 칠 때 떠난다는 말처럼 미련 없이 은퇴를 선언했다. ‘쿨 가이’란 별칭처럼 구단별 ‘은퇴 투어’ 얘기가 나왔고, 그것이 논란이 되자 “부담스럽게 할 것 없다”며 ‘쿨’하게 털어버렸다. 최근 한 매체 인터뷰에서는 “나훈아 씨 얘기다. ‘빠’만 있으면 그냥 스타이고, ‘빠’와 ‘까’가 있어야 슈퍼스타라고 했다. 그렇다면 내가 슈퍼스타 아닌가”라며 안티팬들도 웃음으로 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젊은 시절 타격왕에 대한 욕심도 냈고, 때로는 어깨가 약하다는 단점도 드러났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19년간 정성스럽게 자신을 담금질하며 뚜벅뚜벅 걸어온 ‘장정’에서 빚어진 일화일 뿐이다.
19년간 LG ‘원팀맨’으로 달려온 박용택은 2020년 초부터 구단과 팬을 위해 각종 언론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응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대면 인터뷰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없었지만, 사인 행사 등을 위해 시간 투자를 아끼지 않는 그를 보면 진짜 프로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한 것은 대표적이다. 2002년 프로 데뷔 연도에 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우승을 하지는 못했다. 올 시즌엔 류중일 감독의 지휘 아래 다시 한번 한국시리즈 진출을 노리고 있다. 박용택 또한 챔피언 반지를 끼고 싶고, 선배에게 마지막 선물을 안겨주고 싶은 후배들도 똘똘 뭉쳤다.
박용택은 “한국시리즈 우승하고 헹가래 받고 은퇴식 하는 꿈을 꾼다”고 했다. 그의 꿈이 이뤄진다면, 그는 가장 행복한 사나이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정성’을 바탕으로 한 그의 야구 열정은 더 오래 기억될 것이다.
김창금_ <한겨레>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