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오바디스, 아이다
# 수석 프로그래머 ‘남동철의 픽(PICK)’
과거 사회주의 국가였던 동유럽 나라들에서부터 여덟 편이 날아왔다. 그중 러시아의 거장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의 <친애하는 동지들!>은 1962년 러시아의 한 도시에서 벌어진 학살을 다룬다. ‘노동자의 천국’임을 주장하는 나라에서 노동자의 시위를 총칼로 짓밟은 이 사건은 오랫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은 작품이다. 세르비아와 보스니아에서 벌어진 전쟁은 보스니아 출신 여성 감독 야스밀라 즈바니치의 주된 관심사다. 2006년 <그르바비차>로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은 그녀는 <쿠오바디스, 아이다>에서 다시 한번 세르비아군의 학살을 고발한다. 인종 청소라는 끔찍한 범죄를 막기 위해 유엔군이 나서지만 실제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당시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나의 사랑스러운 혁명가
# 월드 프로그래머 ‘박가언의 픽’
<나의 사랑스러운 혁명가>는 1980년대 칠레, 군부독재 정권의 막바지 무렵을 배경으로 한다. 피노체트 치하에서 고통받던 시민들은 길거리로 나선다.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여성으로 살아온 ‘퀸’은 우연히 자신을 도와준 잘생긴 운동권 동생의 부탁으로 수상쩍은 물건을 맡게 된다. 영화는 작가이자 사회운동가인 페드로 레메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로드리고 세풀베다 감독은 원작 소설을 영화화하며 정치사회적 요소를 직접 내세우는 대신 퀸이라는 비범한 인물에 집중한다. 평생을 차별과 조롱 속에서 살아온 퀸은 연인을 위해, 총구를 겨눈 경찰 앞으로 부들부들 떨면서 걸어간다. 그 순간은, 좁고 어두운 아파트에만 갇혀 있던 이들이 여느 커플처럼 밝은 대낮에 소풍을 즐기는 눈부신 장면만큼이나 강렬한 해방의 감동을 안겨준다.
▶최선의 삶
# 한국영화 프로그래머 ‘정한석의 픽’
한국영화의 주목할 만한 장편 ‘데뷔작’들이다. 김지석 감독의 <온 세상이 하얗다>는 황당한 이야기다. 이런 남녀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완강하고 능청스러운 허구가 역으로 세상에 대한 밀접하고 예리한 시각을 품고 있다. 정욱 감독의 <좋은 사람>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과도 같은 영화다.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그렇다면 우린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가. <좋은 사람>은 관객을 도덕적 판단의 수렁에 빠뜨린다. 그게 이 영화의 힘이다. 중년의 해고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한 이란희 감독의 <휴가>는 엉성한 것처럼 시작하지만 조용하게 내내 관객을 붙들어둔 다음 마침내는 주저앉힌다. 오랜만에 보는 의젓한 어른 영화다. 이우정 감독의 <최선의 삶>은 10대에서 20대로 건너가는 그 격렬하고 예민한 시기의 특수한 사건과 관계를 섬세하면서도 강인하게 그려낸다.
▶개와 정승 사이
# 아시아 프로그래머 ‘박성호의 픽’
뉴 커런츠 부문 선정작 <개와 정승 사이>는 미얀마 작품으로는 처음 초청되었고, 여러 국가의 협업과 감독의 각고의 노력으로 탄생한 작품이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을 그대로 해석하면 ‘돈은 발이 네 개 달렸다’이다. 미얀마 속담으로, 사람은 발이 두 개이기 때문에 돈이 네 발로 빠르게 도망가면 잡을 수 없다는 의미다. <개와 정승 사이>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감독의 이야기다. 미얀마 도시와 교외, 다양한 실내외 장면이 현실감 있는 색감으로 잘 살아 있다. 시나리오 개발에서부터 완성까지 10년 가까운 여정에 녹아든 정성이 대단하다.
▶화양연화
# 아시아 프로그래머 ‘박선영의 픽’
동북아시아에서는 ‘거장들의 귀환’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홍콩의 전설적인 감독 7인이 만든 개막작 <칠중주: 홍콩 이야기>를 비롯해 무려 네 편의 아시아 영화가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서 소개된다. 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구로사와 기요시의 <스파이의 아내>, 칸 2020 선정작인 가와세 나오미의 <트루 마더스>, 2020년 개봉 20주년을 맞아 리마스터링(음질 향상 등을 위해 다시 마스터링하는 일) 판으로 돌아온 왕가위의 <화양연화>, 마지막으로 베니스영화제에서 평생 공로상을 받은 허안화의 신작 <사랑 뒤의 사랑>이 있다. 아이콘 부문과 아시아 영화의 창 부문에서는 차이밍량의 <데이즈>와 아오야마 신지의 <구름 위에 살다>도 만날 수 있다.
▶열여섯 봄
# 월드 프로그래머 ‘서승희의 픽’
청춘, 그리고 사랑이란 감정으로 인한 고통은 필리프 가렐 감독의 영원한 주제다. 흑백영화 <눈물의 소금>에서 감독은 소녀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시골 청년 뤽의 여정을 쫓는다. 일흔이 넘은 거장은 어떤 인물도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사랑을 앓는 청춘들의 초상화를 물 흐르듯 그려낸다. 올해로 스무 살인 수잔 랭동 감독은 첫 장편 <열여섯 봄>에서 직접 주인공으로 열연한다. 샤를로트 갱스부르가 열여섯에 출연한 클로드 밀러 감독의 <귀여운 여도적>(1988)처럼 그야말로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앙증맞은 작품이다. 스무 살 감독의 재기 발랄한 상상력은 이 사춘기 연대기를 영화에서 연극으로, 연극에서 뮤지컬로 전환한다.
▶호퍼/웰즈
# 와이드 앵글 프로그래머 ‘강소원의 픽’
오슨 웰스의 <호퍼/웰즈>와 도요시마 게이스케의 <미시마 vs. 전공투: 마지막 논쟁>은 전설적인 인물들의 역사적 순간을 기록한 작품이다. 두 편 모두 50년 전 촬영한 필름으로, 2020년 발굴되어 처음으로 관객과 만나게 되었다. <미시마 vs. 전공투: 마지막 논쟁>은 극우 민족주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에게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오슨 웰스는 <이지 라이더>로 이제 막 연출 데뷔한 데니스 호퍼가 자신을 찾아온 1970년 그날 밤, 그들의 밤샘 정담을 필름에 담아놓았다. 할리우드 역사의 우상 파괴적인 두 아이콘이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호퍼/웰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심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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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