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핵심규제 45건 정비
# 사례 1
화재·안전 예방을 위해 국토교통부에서 모든 건축물에 대해 관련 정보를 기록·보관·유지하도록 하는 규제의 신설이 추진됐다. 건축물에 대한 보수·보강뿐 아니라 점검 시에도 의무적으로 부과되며 이력 명세도 입력하도록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런 규제에 어려움을 토로하는 의견이 있었다. A산단 입주기업협의회는 “기업 이전 또는 경매를 통해 건축물을 취득한 기업이 많고, 기존 설계도서를 유실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현 상황에서 점검·보수 때마다 관련 정보를 입력하도록 한 것은 과중한 부담”이라는 의견을 보내왔다. 공장은 주문이 바뀔 때마다 라인을 바꾸는 등 유지·보수하는 사례가 많아 관련 서류를 준비하는 것도 많은 비용이 발생한다.
중소벤처기업부 규제개혁법무담당관에서 ‘규제영향평가’를 한 결과 공장의 경우 화재·안전사고는 철제 건물이 아니라 기계설비 쪽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에 착안해 관련 규제를 줄일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국토부에 개선을 요청했고 국토부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공장 및 지식산업센터는 대상에서 제외하고 관련 정보 입력 의무도 보수·보강 시로 한정해 약 850억 원의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 사례 2
환경부는 대기오염 방지시설 면제사업장에 대해 자가측정을 의무화하는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을 추진하면서 공포 즉시 시행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울산의 한 기업은 자가측정 대행업체를 찾을 수 없다며 관련 규제가 즉시 적용될 경우 범법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소규모 사업체들은 자체적으로 자가측정기를 두기 어려워 대행업체를 통해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대행업체 수가 턱없이 부족해 비용이 상승할 뿐 아니라 기한 내 준수도 쉽지 않았다. 대기오염 배출사업장(5만 8932곳) 중 방지시설 설치 면제사업장은 1만 7000여 곳에 이르고 관련 배출구는 8547개로 추정되는 반면, 측정 대행업체는 192개소에 그친다.
규제영향평가 결과 기한 연장이 필요하다고 요청했고, 환경부는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 부칙을 개정해 자가측정 의무 시행을 법령 공포일 8개월 이후로 연기했다.
# 사례 3
2017년부터 시행된 농림축산식품부의 ‘육묘업(묘를 생산해 판매하는 행위의 업) 등록제’는 육묘업에 대한 체계적 관리·감독을 목적으로 일정 규모 이상의 철제 하우스와 난방기 등의 구비를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시설기준 미비로 등록 신청이 반려되는 육묘업 희망농가가 적지 않아 농가 단위 모종 생산·판매를 막는다는 농민들의 불만이 제기됐다.
중소기업 옴부즈만은 현장의 의견을 토대로 양파·파 등 노지작물의 경우에도 철제 하우스나 환기장치를 요구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다는 판단을 내리고 종자산업법 시행령 개정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2020년 6월 관련 시행령이 채소작물 육묘업을 등록할 때 노지 육묘작물인 양파·파의 경우 시설기준 적용에서 제외하고 난방기는 작물의 종류, 육묘 시기, 지리적 특성을 고려해 선택적으로 설치하도록 개정됐다.
# 사례 4
경북 의성에 있는 한 지역특산주 업체는 유럽 수입상으로부터 ‘장미주를 개발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경기도에서 생산된 ‘장미 추출물 0.1%’를 섞어 신제품을 발매하려 했다. 하지만 3년에 걸쳐 제품 개발을 완료한 이 술은 경기도산 원료 ‘0.1%’ 때문에 주류면허지원센터로부터 부적합 통보를 받았다. 전통주 등의 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르면, 지역특산주는 농·어업 경영체가 직접 생산하거나 제조장 소재지 관할 또는 그 인접 지역 농산물을 주원료(제품의 중량비에 따라 상위 3개 이내의 원료)로 제조한 술로 규정하고 있다. 이 업체는 의성 사과를 기본으로 1996년부터 술을 생산해 매출의 90%를 미국·호주 등 16개국에 수출하고 있었지만 부적합 판정을 받으면서 신제품 생산·판매에 어려움이 발생했다. 중소기업 옴부즈만의 검토와 요청으로 소량 사용 원료에 대한 세부 기준이 마련되고, 주원료 기준도 완화된 새 시행규칙이 2020년 6월 11일 개정됐다.
코로나19에 따른 경제 침체로 중소기업의 규제 부담이 상대적으로 가중되면서 정부가 중소기업 규제혁신 제도를 바탕으로 적극행정을 실시해 과도한 기업 부담을 일으키는 규제를 집중 검토해 개선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기업 옴부즈만(옴부즈만 박주봉)은 9월 17일 중소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핵심 규제 45건을 개선했다고 밝혔다. 중소기업 규제영향평가를 통해 규제 18건을 정비해 피해를 사전 예방했고, 중소기업 옴부즈만을 통해 시행 중인 부담 규제 27건을 현장 정비했다.
중소기업 규제영향평가 제도는 중앙행정기관이 규제를 신설 또는 강화할 때 중소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해 불합리하거나 과도한 부담을 주는 규제의 법제화를 사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중기부 관계자는 “각 부처에서 시행령 및 시행규칙을 바꿀 때 국무조정실에 보고되고 이 중 중소기업에 영향이 있을 수 있는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은 시스템상 중기부 쪽으로 통보된다”며 “개정 예정인 법률을 보면서 중소기업에 부담이 될 만한 것을 발굴한다”고 말했다. 그는 “해당 부처에 요청해 해당 부처가 우리 제안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하면 규제 부담을 정비하는 과정을 밟는다”고 설명했다.
사후관리 시스템으로 불합리한 규제 발굴·개선
중기부에 넘어오는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은 한 달에만 100건이 넘는다고 한다. 담당 공무원뿐 아니라 2주에 한 번꼴로 외부 전문가들과 검토 작업을 병행하며, 관련 협회와 단체 등에 통보해 의견서가 오면 중점적으로 검토하게 된다.
그동안 규제영향평가 제도를 통해 정비된 주요 규제 사례를 보면 금융기술(핀테크) 대표 업종인 외환 송금업의 전산 필수인력 요건을 5명에서 3명으로 줄여 창업 활성화를 꾀했고, 공인중개사의 임대관리업 겸업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완화해 58억 원을 절감했다. 또 5년으로 지나치게 짧게 설정된 타워크레인 주요 부품의 교체주기 의무를 폐지해 940개 타워크레인 임대업체의 교체비용 1335억 원을 절감했다.
중소기업 옴부즈만 제도는 기존 규제에 대한 현장과 수요자 목소리를 반영해 중소·중견기업 관련 불합리한 규제를 발굴·개선하는 규제 사후관리 시스템이다.
중기부 옴부즈만 지원단 관계자는 “이미 만들어진 법안에 대한 애로사항 등을 현장에서 받아 검토하고 개정을 요청한다”며 “업종별 협회 등을 상대로 간담회를 열어 의견을 듣고,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해 지자체가 발굴한 사항을 함께 검토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현 정부 들어 옴부즈만 제도를 통해 규제가 정비된 사례는 산림레포츠 시설 종류에 산악 오토바이를 추가하고 환경·안전 등 시설기준을 마련해 다양한 레저스포츠 시장을 창출했고, 맥주 통에 담긴 생맥주를 배달 목적으로 별도 용기에 담는 행위도 허용됐다. 또 건설업자가 공사계약 체결·변경 시 건설산업 종합정보망에 제출하는 항목을 기존 140개에서 87개로 축소했고, 관할구역이 5㎞ 이내에 위치한 제과점 간 조리장 공동 사용이 가능하도록 허용 기준을 완화하기도 했다.
‘중소기업 규제예보제’ 도입도 검토
중기부는 이와 함께 기업이 참여하는 ‘중소기업 규제예보제’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규제예보제는 중소기업 부담 규제를 신속히 알리고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최적의 의견수렴 등을 통해 체계적인 중소기업 영향을 분석하는 쌍방향 의사소통 시스템이다. 구체적 흐름도를 보면 ①중소기업 핵심규제 및 일자리 저해 규제를 발굴하고 ②이들 주요 내용을 인포그래픽스를 통해 제공하며 ③인공지능을 활용해 최적의 전문가·이해관계자를 선정해 챗봇(누리소통망 등)으로 여론조사를 벌인 뒤 ④피드백을 활용해 최적의 의견서를 작성해 제출하게 된다.
미국은 현재 카드뉴스 방식으로 규제예보제를 운영하고, 영국은 7000개사 중소기업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의견을 듣고 있으며, 유럽연합(EU)은 중소기업 대사 임명 및 활용과 사전공청회 의무화 등을 시행하고 있다.
중기부는 또 규제영향평가에 대한 부처 의견 회신을 의무화하고 부처의 규제혁신 평가에 기존의 적용실적 평가 외에 충실성도 반영하도록 절차를 개선할 방침이다.
박주봉 중소기업 옴부즈만은 “상시적이고 체계적인 규제혁신 노력에도 중소기업의 기대 수준이 높아져 규제개선 체감도가 낮은 실정”이라며 “중기 옴부즈만이 규제혁신의 사각지대가 없도록 숨어 있는 규제와 현장의 고질적 규제를 발본색원해 기업의 눈높이에서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박영선 중기부 장관은 “중소기업 규제영향평가와 중기 옴부즈만 제도의 현장 정착으로 현 정부 2000여 건의 현장 규제를 정비하고 규제 피해 약 5000억 원을 절감했다”며 “코로나19로 누구보다 심각한 위기에 처한 중소기업의 현장 목소리가 더욱 반영될 수 있도록 중소기업 규제혁신 제도를 지속적으로 보완, 앞으로도 규제부담 정비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이찬영 기자
▶중소기업 규제혁신 제도 | 중소벤처기업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