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가 앉았던 의자에 나도 앉아볼까

2020.10.26 최신호 보기


디지털 신기술로 문화유산 향유·보존

정부는 최근 디지털 신기술을 토대로 문화유산 보존과 향유를 확대하기로 했다. 코로나19 유행을 계기로 빨라진 디지털 전환에 맞춘 문화콘텐츠산업 성장 과제의 일환이다. 9월 24일 정부가 발표한 ‘디지털 뉴딜 문화콘텐츠산업 성장전략’ 세부 내용을 보면, 문화유산 3차원 정밀 데이터베이스, 문화유산 가상현실(VR) 구축 및 3차원 지도 서비스, 문화재 복원 활용 계획 등이 담겼다. 특히 궁궐, 문화유산 코스, 무형문화재 등을 활용한 실감콘텐츠를 제작해 국민이 문화재를 시공간의 제약 없이 즐길 수 있게 할 예정이다. 디지털 뉴딜이 스며든 문화유산은 어떤 모습일까? 5세대 이동통신(5G)과 인공지능(AI), 가상현실 등 첨단 기술을 결합한 문화유산 현장을 둘러봤다.



▶창덕궁 앞 안내 창구에서는 ‘창덕 아리랑(AR-irang)’ 앱 실행을 위한 5G 단말기 무료 대여 서비스도 운영 중이다.

창덕궁 ▶ 왕과 신하 만나 조선왕실 문화 증강현실로 체험
“천천히 둘러보게. 나를 찾을 수 있겠나.”
10월 6일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을 지나 금천교에 다다르자 전설 속 동물 ‘해치’가 섬광을 일으키며 나타난다. 특유의 커다란 눈망울과 푸르스름한 피부 표면은 움직일 때마다 들썩이며 입체감을 더한다. 금천교를 향해 단말기를 비추자 해치가 관람객을 안내하며 창덕궁 곳곳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관람객은 여러 전각에서 조선의 왕과 신하 등 다양한 인물을 만나면서 조선왕실의 문화를 증강현실(AR)로 체험할 수 있다.
5G 기반의 첨단 디지털 기술을 적용해 만든 ‘창덕 아리랑(AR-irang)’은 세계 최초의 세계유산 안내 애플리케이션(앱)이다. 2019년 2월 SK텔레콤과 구글코리아가 최첨단 기술을 활용한 공익 프로젝트 개발에 합의하고,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가 SK텔레콤의 협업 제안을 전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만들어졌다. 창덕궁관리소는 장소와 시설 사용 제공과 역사 고증을 담당했다. 이후 관련 전문가들의 철저한 고증과 작업을 통해 2020년 7월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날 방문한 창덕궁 앞 안내 창구에서는 5G 단말기를 소지하지 않은 관람객을 위한 무료 대여 서비스도 운영 중이었다. 창덕궁에서 체험한 ‘창덕 아리랑’은 600년째 창덕궁을 지키는 설정의 해치를 통해 금천교부터 인정전, 희정당, 후원 입구까지 총 12개 관람구역을 안내했다. 특히 증강현실의 문(AR Portal)을 통과해 출입제한 구역인 희정당으로 들어가면 ‘금강산만물초승경도’ ‘총석정절경도’ 등 부벽화(付壁?)와 내부를 감상할 수 있다. 고화질 360도 화면은 물론 바닥에 깔린 양탄자의 무늬까지 상세히 볼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증강현실을 통해 또 다른 출입제한 구역인 후원으로 들어가면 후원의 백미인 부용지 주변 풍광도 한껏 즐길 수 있다. 이 밖에 인정전 안에서는 왕과 왕후를 만나 함께 사진을 찍어 전자우편으로 받아볼 수 있으며 낙선재에서는 활쏘기, 숙장문에서는 연날리기도 할 수 있다.
현장에서 만난 궁능유적본부 창덕궁관리소 백옥연 사무관은 “‘창덕 아리랑’은 문화재청이 추진하는 ‘비공개 전각 개방 활성화’와 ‘무장애 공간정책’ 방향과도 일맥상통한다”며 “청소년에게는 세계유산 창덕궁을 증강현실로 체험하며 문화유산에 대한 흥미를 돋워주고, 문화재 관람에 물리적 한계가 있는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장애나 장벽 없이 문화재를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내려받을 경우 5G 스마트폰만 있으면 ‘창덕 아리랑 앳홈’을 통해서도 세계 어느 곳에 있든 세계유산 창덕궁을 실감형 콘텐츠로 관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점프 AR(Jump AR)’ 앱 화면

▶덕수궁 5GX ‘점프 VR(Jump VR)’ 시행 모습
 
덕수궁 ▶ 휴대전화로 석조전 내부 360도 돌아가며 관람
덕수궁에서는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모두를 즐길 수 있다. 전용 단말기 없이도 휴대전화만으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2020년 3월 덕수궁관리소와 SK텔레콤은 덕수궁 내 12개 궁궐 건물과 6만 1200여㎡에 이르는 궁궐 공간을 증강현실로 즐길 수 있는 ‘점프 AR(Jump AR)’ 앱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어 7월부터는 ‘점프 VR(Jump VR)’ 앱을 통해 덕수궁의 역사와 배경을 안내자의 해설로 들으며 관람할 수 있게 했다.
우선 ‘AR 덕수궁’ 프로그램은 AR 지도, AR 포토존, AR 전생 찍기 등 세 가지로 구성되었다. ‘AR 지도’는 덕수궁을 3차원 입체(3D)로 구현해 궁궐 전체를 현장감 있게 둘러볼 수 있는 메뉴다. ‘AR 포토존’은 덕수궁을 직접 찾아가서 사용하는 메뉴다. 덕수궁에서 앱을 실행하면 전통의상을 입은 다양한 동물이 나타나는데, 관람객들은 전각을 배경으로 동물과 같이 사진과 영상 촬영을 할 수 있다. ‘AR 전생 찍기’는 사용자가 앱을 실행하면 조선시대 왕, 왕비, 대감, 수문장 등으로 변한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는 서비스다. 실제로 이날 덕수궁 내부 곳곳에서는 관람객들이 앱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생생하게 즐기고 있었다. 친구들과 덕수궁을 찾았다는 김하영 씨는 “집에서도 실행할 수 있는 ‘덕수궁 AR 지도’ 덕분에 방문 전 미리 내부를 둘러보고 공부할 수 있었다”며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 문화유산을 활용한 유용하고 재밌는 디지털 콘텐츠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점프 VR’ 앱을 내려받으면 석조전 내부를 360도로 돌아가며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휴대전화를 들고 보고자 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석조전의 원하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황제가 앉았던 의자에 직접 앉는 것 같은 가상 체험도 할 수 있고, 중화전 천장의 용무늬 장식과 석조전 황실 침실에 놓인 옛 가구들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중화전과 내부 관람이 제한됐던 함녕전, 석어당 내부도 가상공간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실제로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2월부터 덕수궁 실내 시설인 석조전 내부와 중명전 관람이 중지되었다. 5월 29일부터 7월 21일까지 약 두 달간은 궁궐 전체 관람도 중단됐다. 이에 따라 2020년 1~6월 덕수궁 누적 관람객 수는 약 47만 명으로, 2019년 같은 기간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덕수궁관리소 측은 덕수궁 가상·증강현실 관람 서비스가 코로나19 시대의 ‘비대면 문화재 관람 서비스’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 유하경 주무관은 “이번 기회로 모든 국민이 언제 어디서든 온라인으로 석조전을 관람하고, 황제가 거닐었던 공간을 체험하면서 덕수궁을 친숙하게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황룡사 중층 우진각 중문 증강현실 복원안

▶황룡사 남회랑 증강현실 복원안│문화재청

황룡사 ▶ 통일신라 시기 중문과 남회랑 디지털로 복원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경주시는 지금은 터로만 남아 있는 황룡사의 일부를 증강현실 디지털 기술로 복원했다. 실물이 존재하지 않는 문화재를 디지털로 구현한 사례는 2019년 돈의문이 있었지만, 건물을 구성하는 부재를 하나하나 만들어 세부사항을 자세히 표현하고, 내부까지 들어가 체험할 수 있게 증강현실로 복원한 것은 황룡사가 처음이다.
디지털로 복원된 부분은 황룡사가 가장 크고 화려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통일신라 시기의 황룡사 중문과 남회랑이다. 황룡사의 가람배치는 크게 남문을 시작으로 북쪽으로 중문, 목탑, 금당, 강당이 자리하는데 중문 양쪽에 남회랑이 이어져 있다. 복원한 중문의 크기는 가로 26.4m, 세로 12.6m이고, 남회랑의 길이는 중문을 포함해 272.5m이다. 특히 체험자와 건축물의 거리를 계산해 원근감을 최대한 살려, 건물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체험하는 듯한 생생함을 느낄 수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황룡사지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현장에서 대여하는 태블릿 피시를 이용해 중문과 남회랑에 직접 들어가는 증강현실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2024년까지 황룡사 금당, 이후에는 강당과 목탑도 디지털로 복원할 계획이다. 앞으로도 다양한 문화재 디지털 복원·활용 사업의 새로운 유형을 꾸준히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글·사진 강민진 기자

혁신과 창의적 노력 통해 위기 극복 위한 디지털 뉴딜 문화콘텐츠산업 성장전략
정부는 코로나19를 계기로 가속화되고 있는 디지털 전환 환경에서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주목받는 콘텐츠산업의 대응전략과 과제를 제시하는 ‘디지털 뉴딜 문화콘텐츠산업 성장전략’(이하 성장전략)을 9월 24일 발표했다.
이번 성장전략은 정부가 2019년 9월 발표한 ‘콘텐츠산업 3대 혁신전략’의 과제들을 각 부처가 추진하는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의 정책 방향과 과제들을 반영한 콘텐츠산업의 디지털 혁신방안을 담고 있다. 즉, ‘한국판 뉴딜’ 정책의 한 축인 ‘디지털 뉴딜’을 실현하기 위한 콘텐츠산업의 비대면 기반(인프라) 확충, 고부가가치 차세대 콘텐츠 개발, 세계시장 경쟁력 강화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콘텐츠산업은 디지털 전환의 최전선에서 혁신과 창의적 노력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 5세대 이동통신과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 첨단 기술과 창의성이 결합해 다양하고 차별화된 새로운 콘텐츠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코로나19로 콘텐츠 업계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활용해 전 세계인의 일상에 대한민국 콘텐츠가 스며들 수 있도록 관계부처와 함께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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