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디지털 실감 영상관 1관에 전시하는 ‘왕의 행차, 백성과 함께하다’ 3면 파노라마 영상
대전 만년동에 자리한 이응노미술관 건물 외벽이 9월 11일 환하게 밝아졌다. 미술관 잔디광장에서 진행되는 외부 영상(미디어 파사드)이다. 9월 11일부터 2020년 말까지 선보이는 미디어 파사드 ‘이응노, 하얀 밤 그리고 빛’의 일부다. 미디어 파사드는 건물 외벽 등에 다양한 영상을 투사하는 것을 말한다. 오색찬란한 미디어 파사드가 남긴 잔상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관객들 모두 찬란하게 지나간 장면에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관객들의 감각을 깨운 숨 가쁜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DEXM Lab(정화용), 홍지윤, Craft X(강정헌, 윤영원) 등 작가들이 ‘이응노미술관 건축과 이응노의 삶·예술’을 주제로 만든 미디어 파사드 작품은 미술관 안팎에서 상영된다. 미술관은 외부 상영 행사를 누리소통망을 통해 실시간 생중계하고, 이후 영상을 유튜브 이응노미술관 채널에도 올릴 예정이다. 미디어 파사드 연계 체험 행사는 비대면으로 진행한다. 내부 미디어 파사드는 미술관 로비에서 12월 20일까지 휴관일을 제외하고 상시 상영한다.
▶‘신선들의 잔치’ 홍보영상 갈무리 장면| 국립중앙박물관
▶이응노미술관 미디어 파사드 홍보물| 이응노미술관
국내 첫 ‘디지털 실감 영상관’ 개관
문화체육관광부는 2021년 예산안을 6조 8273억 원으로 편성하면서 디지털 콘텐츠 수요 급증, 5세대 이동통신(5G)·인공지능(AI)·실감기술(XR) 등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디지털 대전환’ 등에 대응하기 위한 문화 부문 ‘디지털 뉴딜’ 과제를 중점적으로 반영했다. 5G를 기반으로 증강·가상현실(AR·VR), 홀로그램 등 실감콘텐츠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방안이 포함된 것이다.
앞서 박양우 문체부 장관은 6월 9일 이응노미술관과 대전시립미술관을 방문해 코로나19 이후 대응 상황을 점검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해 콘텐츠를 보완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박 장관은 “코로나19 이후 4차 산업기술 가속화가 예상되고 국립 박물관·미술관에서 추진하던 실감콘텐츠 사업을 2020년부터 공립 박물관·미술관으로 확대하고 있다. 두 미술관도 실감콘텐츠 사업을 추진하는 만큼 성공적으로 잘 완수하고 코로나19 이후의 변화에 대응할 새로운 콘텐츠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립중앙박물관도 ‘디지털 실감 영상관’을 개관하며 실감콘텐츠를 선보였다. 디지털 실감 영상관 개관은 국내에선 첫 사례로 전시장 관람의 새로운 지표를 열었다. 박물관이 5G 시대에 가장 유망한 가상·증강현실 등 실감기술과 만나 국민에게 그동안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우리 문화유산의 새로운 모습과 체험 기회를 선보인 것이다.
▶경천사 십층석탑 미디어파사드
진짜 금강산도 이럴까
국립중앙박물관의 ‘디지털 실감 영상관’은 박물관이 디지털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의 첫 성과물이다. 5월 19일 열린 개막식에는 다양한 문화재가 콘텐츠로 등장했다. 1층 복도(역사의 길)에 있는 경천사 십층석탑은 실감콘텐츠 체험관의 백미였다. 낮에는 증강현실 기술을 통해 각 면의 조각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고, 일몰 후에는 석탑 각 층에 새겨진 조각과 그 안에 담긴 의미와 숨은 이야기를 미디어 파사드 기술로 구현한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1층 중근세관 내 영상관으로 들어서니 보물 제1875호인 정선의 ‘신묘년 풍악도첩’ 등을 소재로 한 폭 60m, 높이 5m의 3면 고화질 파노라마가 있었다. 1관에 전시된 ‘금강산에 오르다’ 3면 파노라마 영상은 압도적인 흥미를 선사했다. 진짜 금강산도 이러할까. 바닥에 꽃길이 깔리며 사계절이 휘몰아쳤다. 2층 기증관 휴게실에 올라가니 폭 8.5m 크기의 8K 고해상도로 구현된 조선 후기의 작품 ‘태평성시도’(작자 미상)가 보였다. 콘텐츠 속에서는 등장인물 2100여 명이 각기 다르게 움직였다.
3관은 북한에 있는 안악3호 무덤 등 고구려 벽화무덤을 사실적으로 재현해 무덤에 실제로 들어간 것과 같은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베일에 감춰진 수장고와 고구려 무덤 속에서는 예상 못한 긴장감도 감돌았다. 벽에 설치된 2100여 명이 제각각 움직이는 ‘태평성시도’는 관람객이 터치할 때마다 반응을 보였다.
문체부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시작으로 지역 박물관에서도 차례로 디지털 실감 영상관을 개관할 계획이다. 이렇듯 스마트 뮤지엄은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 관람객이 능동적으로 체험하게 하고 위치 파악, 동선 등을 편리하게 해준다. 또 전시관은 관람객 동선과 취향을 모은 대량 자료(빅데이터)로 더 나은 환경을 추구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디지털 실감 영상관 내부 | 국립중앙박물관
예술로 치유와 위로를 전하는 미술 축제
코로나19 시대에 예술로 치유와 위로를 전하는 미술 축제에서도 실감콘텐츠를 선보였다. 문체부가 주최하고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하는 대규모 미술 축제인 ‘2020 미술주간’이 9월 24일부터 10월 11일까지 열려 예술이 가진 치유와 위로의 힘에 주목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코로나19 속에 진행되는 만큼 온라인 콘텐츠가 크게 확대되고 오프라인 행사는 소그룹으로 한다.
박유리 기자
실감콘텐츠 활용 관람객 문턱 낮추는 등 디지털 뉴딜 비대면 예술 지원 강화
문화체육관광부는 2021년 예산안을 6조 8273억 원으로 편성해 ▲5세대 이동통신(5G)을 기반으로 증강·가상현실(AR·VR), 홀로그램 등 실감콘텐츠 산업을 육성하고(15개 세부 과제, 1335억 원)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과 문화 분야를 접목하는 융합 콘텐츠도 개발 및 확산을 추진(10개 세부 과제, 521억 원)하기로 했다.
특히 외벽 영상(미디어 파사드) 같은 실감콘텐츠는 이용자의 오감을 자극해 상호 소통하며, 몰입도를 높이는 융합콘텐츠 육성이 강화된다. 실감콘텐츠의 종류로는 가상현실, 증강현실, 혼합현실(MR), 외벽 영상, 인터랙티브 미디어(상호작용하는 매체) 등이 있다. 문체부는 이런 실감콘텐츠 등을 활용한 스마트 박물관·미술관으로 관람객의 문턱을 낮춘다는 계획이다. 실례로 국립중앙박물관은 자율주행과 인공지능을 갖춘 전시 안내 로봇뿐만 아니라 실감콘텐츠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문체부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위기 속에서도 지속 가능한 예술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비대면 예술 지원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문체부는 9월 9일 제15차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코로나 일상 속 비대면 예술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예술이 고정된 틀이나 관성에서 벗어나 환경 변화에 발맞춰 진화할 수 있도록 창작과 유통, 향유 과정 전반에 비대면·온라인 방식을 도입해 지속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국립 공연장과 국립 예술단체가 선도적으로 온라인 공연을 열 수 있도록 기반 구축에 나선다. 예술의전당은 실감형 기술과 결합한 공연을 영상화하고, 2021년도 예산안 32억 원을 배정해 ‘공연 영상화 종합 제작 공간’을 조성한다. 국립극장은 국내외 주요 고화질 공연 영상을 온라인 플랫폼과 연계할 수 있는 판로 개척에 나선다. 국립극단은 온라인 극장 개관을 추진한다. 이 밖에 장애유형별 맞춤형 공간 설계를 통한 무장애 문화예술 공간인 ‘장애예술 공연장’도 새로 조성한다.
비대면 문화예술교육 기반을 조성하는 사업도 추진한다. 문체부는 교육부와 함께 음악·미술·무용 등 예술 교과와 연계된 교육콘텐츠, 인성·진로·인권 등 범교과 학습 주제를 연계한 교육콘텐츠를 개발하기로 했다. 온라인 콘텐츠 감상 교육, 예술체험 꾸러미 활용 등 비대면 방식 교육과정도 개발해 2021년에 40여 종을 보급한다.
고립감과 같은 ‘코로나 우울’로 국민의 정서적 치유가 필요한 상황임을 고려해 11월부터 국민 5000여 명을 대상으로 예술치유 꾸러미를 제공한다. 박물관과 미술관의 온라인 전시, 공공도서관의 비대면 도서대출 서비스 등 비대면 서비스도 확대해나갈 방침이다.
박양우 문체부 장관은 “예술의 비대면·온라인 방식은 대면 방식의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독립재로서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다”며 “따라서 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예술은 전통적 예술과 경쟁적 관계가 아니라 향유자 관점에서 초월하는 경험을 주는 관계로 발전해야 하므로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