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임대차 거래에 새로운 질서를 가져올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가 시행 두 달째를 훌쩍 넘겼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이하 주임법) 개정으로 7월 31일부터 시행된 두 제도는 무주택 세입자(임차인)의 주거 안정에 목적을 두고 있다. 하지만 전월세 시장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예측도 없지 않았다. 주임법 개정 전 시장 일각에서 제기한 가장 큰 부작용은 전세 매물 품귀와 전셋값 폭등이었다. 임대인이 전세 물건을 대거 월세로 전환해 세입자의 주거비 부담이 커지리라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의 취지가 살아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시장 상황을 점검하며 보완 대책을 추진할 방침이다.
주택가격 상승폭 줄었지만 전셋값은 다소 늘어
정부의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관리방안’(6·17대책)과 7·10 보완 대책, ‘서울권역 등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방안’인 8·4대책이 잇따라 나오면서 집값의 가파른 상승세는 주춤해졌다. 10월 5일 한국감정원의 월간 주택가격 동향에 따르면 9월 월간 주택종합 매매가격은 전월 대비 0.45% 상승했다. 상승 국면이 지속되고 있지만, 8월 상승률 0.47%에 비하면 소폭 줄어들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수도권(0.52→0.43%)과 서울(0.42→0.27%)은 상승폭이 축소됐다. 서울은 25개 구 전체가, 경기는 그간 상승폭이 높았던 지역(하남·구리·광명시 등) 위주로 상승폭이 줄었다. 정부의 정책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다만 집값 폭등세가 꺾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려는 ‘패닉 바잉(Panic Buying·공포에 의한 매수)’ 현상도 진정되고 있다는 게 시장 동향을 조사하는 기관들의 일치된 평가다.
다만 전셋값은 상승폭이 커졌다. 9월 전국 월간 주택종합 전세가격지수는 0.53% 올라 8월 0.44% 대비 상승폭이 확대됐다.
수도권은 전월세 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 시행과 거주요건 강화, 가을 이사철 등 영향으로 전세 매물 부족 현상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전반적인 전세 매물 감소와 거래 위축 현상은 개정 주임법 시행 때문만이 아니다. 감정원은 서울의 경우 재건축 거주요건 강화에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영향으로 파악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회의에서 개정 주임법 시행 이후 전세 시장이 불안해졌다는 지적에 대해 “과거 1989년 임대차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렸을 때도 4~5개월 임대가격이 상승하는 등 시장 혼란이 있었다”며 “임대인과 세입자 모두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면 몇 개월 후 전세가격이 안정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장관은 “전세 거래량이 줄어드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는 견해를 덧붙였다. 계약갱신청구권은 임대인에게 합당한 거절 사유가 없으면 임차인이 전세 계약을 2년 더 연장해 총 4년 동안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전월세 상한제는 계약 갱신 때 임대료 증액 상한선을 5%로 제한하는 것이다. 두 가지 제도 모두 세입자의 ‘이사 걱정 없는 거주’를 어느 정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그렇다면 전세 거래의 감소는 제도 도입 취지와 부합하는 현상이다.
김현미 장관은 “계약갱신청구권제가 도입되면서 집을 내놓은 사람도, 이사하는 사람도 절대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임차인이 4년 동안 주거 기간을 보장받는 데 따른 무형의 혜택도 고려해서 시장의 안정 여부를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0월부터 전세의 월세 전환율 4.0%서 2.5%로
전월세 상한제 때문에 전세의 월세 전환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예측은 지금까지는 빗나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정 주임법 갱신청구권과 상한제가 적용되는 임대차 갱신은 기존 임대차와 동일한 조건으로 다시 계약되는 경우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임차인의 동의 없이 임대인이 일방적으로 전세의 월세 전환을 강제할 수 없다. 동의 없이 전환하는 경우에도 법정 전환율이 적용되는데, 정부는 주임법 시행령을 개정해 현행 연 4.0%인 전환율을 10월 중순부터는 연 2.5%로 낮추기로 했다.
법정 전환율은 임대차 계약기간 내 또는 계약 갱신 때 임대인과 임차인이 전세보증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월세로 전환할 때 계산하는 산정률 상한선이다. 예컨대 전세 4억 원 집을 반전세(2억 원 전세보증금에 나머지 월세)로 전환할 경우 전환율 4.0%에서는 월차임(월세)이 67만 원이다. (전환 보증금 2억 원×0.04=800만 원, 월세는 800만 원÷12개월) 법정 전환율이 2.5%로 낮아지면 월세는 42만 원(2억 원×0.025=500만 원, 500만 원÷12개월)으로 줄어든다.
정부는 임대인이 전환율 2.5%를 초과하는 월세를 받으면 임대차 계약 갱신의 법적 효력을 무력화하는 방향으로 시행령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법정 전환율을 위반하는 임대인에게 과태료 부과와 같은 행정 제재를 내리지 않는 대신, 임차인이 주택임대차 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 신청을 하거나 민사소송 절차를 거쳐 구제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법무부와 국토부는 신속한 분쟁 조정을 위해 현재 전국 여섯 곳에서 운영하는 분쟁조정위를 연말까지 여섯 곳 추가로 설치하고, 2021년에도 여섯 곳을 더 늘려 2021년 말까지 모두 18곳으로 확충할 계획이다.
현재 서울·수원·대전·대구·부산·광주 등 여섯 곳에 있으며, 연말까지 인천·청주·창원·서울 북부·전주 등 여섯 곳에 추가 설치될 예정이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산하 기관으로 2017년 5월에 설립된 주택임대차 분쟁조정위는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에 분쟁이 생겼을 때 법률 전문가들이 조사를 거쳐 심의·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1억 원 미만의 보증금 분쟁 조정에 신청자가 부담하는 비용은 1만 원에 그친다.
민간 등록임대주택 합동점검 연말까지 실시
민간 등록임대주택에 대한 정비와 관리 강화도 전월세 시장의 지각변동 요소다. 정부는 1994년 처음 도입된 민간주택 등록임대제도에 따라 임대사업자에게 의무 임대기간 준수(4·8년), 임차료 증액 5% 이내 제한, 계약 해지 및 재계약 거절 금지, 표준임대차계약서 작성 등의 공적 의무를 지우는 대신 여러 가지 세제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2020년 6월 말 기준으로 약 160만 호에 이르는 등록임대주택은 전체 주택 재고에서 공공임대보다 비중이 커 전월세 수급과 가격 안정을 유인하는 효과가 기대됐다. 그러나 주택 투기를 부추기고 다주택 보유자의 절세 수단으로만 활용될 뿐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7·10대책에서 등록임대주택에 대한 세제 혜택 축소를 발표하고 국회는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이하 민특법)을 개정해 8월 18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개정 민특법에 따라 4년 단기 임대는 모든 유형의 주택에서 등록제가 폐지되고, 장기 임대도 아파트의 경우 의무 임대기간이 끝나면 자동으로 등록이 말소된다. 다가구주택·다세대주택·주거용 오피스텔·연립주택 등은 10년 장기 임대주택으로만 신규 등록이 가능하다.
국토부는 의무 임대기간이 끝나 2020년 말까지 등록이 말소되는 임대주택 수를 약 40만 호로 추정했다. 의무 임대기간이 끝나 등록임대주택에서 말소된 주택을 보유하거나 스스로 등록을 취소하는 임대사업자는 8월부터 취득세와 재산세 감면, 종합부동산세(종부세) 합산 배제, 임대소득세 감면,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배제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정부는 임대주택 등록제의 개편에 맞춰 9월부터 연말까지 일정으로 임대주택 등록 현황 전수조사와 사업자의 공적 의무 준수 여부에 대한 관계기관 합동점검에 들어갔다. 점검 대상은 2020년 7월 말 기준으로 개인 임대사업자가 보유 중인 주택의 임대차 계약이며, 점검 범위는 과태료 제척기간을 고려해 2015년부터 5년간으로 정했다. 개정 민특법 시행에 따라 자동 또는 자진해서 임대 등록이 말소된 주택도 이번 점검 대상에 포함된다.
전국 229개 기초자치단체(시·군·구)에서 동시에 점검을 하되, 최근 집값이 크게 오른 지역에 대해서는 해당 지자체와 협업으로 심화 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중점 점검 항목은 임대 의무기간 준수와 임차료 증액 상한선 위반 여부다. 관계기관 합동점검을 통해 공적 의무 위반이 적발된 사업자에게는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와 함께 해당 지역 지자체장의 직권으로 등록말소 처분이 내려질 수도 있다.
임대사업자 공적 의무 준수 안 하면 과태료
그동안 누려온 세제 혜택도 없어진다. 국세청은 2020년 종부세 납부 대상자 23만여 명(법인 납세자 포함)에게 최근 보낸 신고 안내문에서 전월세 증액 상한선 5%를 어기면 임대주택 등록을 했더라도 2년 동안 종부세 합산 배제 대상에서 제외할 것이라고 밝혔다. 종부세 합산 배제란 일정 요건을 갖춘 부동산은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고 2020년 11월로 예정된 종부세 부과 세액을 고지한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주택 임대사업자가 법에 규정된 임차료 증액 제한 요건을 위반하면 위반한 연도는 물론 그다음 연도에도 합산 배제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게 국세청의 설명이다. 특히 과거 합산 배제로 경감받은 세금이 있으면 해당 세금은 물론 그동안 발생한 이자 상당의 가산액까지 추징된다. 임대사업자가 전세보증금의 일부를 월세로 전환해 계약을 갱신할 때 법정 전환율보다 높게 전환하는 경우에도 임차료 증액 제한 요건을 위반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한편 국토부는 민간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세입자 권리 보호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민특법 시행령 개정안도 입법 예고했다. 예고안에 따르면, 임대사업자의 임차인에 대한 정보 제공 의무가 한층 강화된다. 등록임대주택은 예비 임차인 등 누구나 해당 주택이 공적 의무가 부여된 주택임을 알 수 있도록 소유권 등기에 임대 의무기간과 임차료 증액 기준 등을 덧붙여 기재하도록 의무화했다. 또 임대사업자가 임대차 계약 때 세금 체납 여부와 선순위 보증금 현황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의무화하고 위반 시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이 밖에 ‘미성년자’ 또는 ‘등록말소 후 2년이 지나지 않은 자’는 임대주택 등록 신청을 제한한다. 이런 내용의 민특법 시행령 개정안은 2020년 12월 10일부터 시행된다.
박순빈 기자
▶자료: 국토교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