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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선거는 민주당 후보 조 바이든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전혀 인정할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 그는 11월 5일 백악관에서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선거가 조작되었다는 주장을 내놓는가 하면, 6일에는 이 와중에 고위 관료를 갑자기 해고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를 두고 “대선 뒤 숙청이 시작되었다”라는 논평을 내놓았다.
이미 여러 사람이 2020 대선 후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행보를 보일 것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저서 <총, 균, 쇠>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재러드 다이아몬드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2019년 3월 작가이자 과학잡지 <스켑틱(Skeptic)> 편집국장인 마이클 셔머와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자신이 임명한 이를 비롯해 보수 성향 대법관이 다수를 차지하는 대법원으로 판정을 이끌어가고자 하리라 예측했다.
트럼프 대통령 쪽은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조지아 등에서 선거 부정행위를 주장하는 소송을 내면서 그의 예측대로 가고 있다. 다이아몬드의 요점은 이것이다. 현대 미국 사회에서 군대를 동원한 쿠데타는 불가능하겠지만 그렇다고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와 같은 이는 여론전, 소송전 등 쓸 수 있는 각종 방법을 동원해 선거를 부정하는 쿠데타를 기획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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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위협하는 누리소통망
이렇게 한편으로 선거 결과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동안 그는 여느 때처럼 누리소통망(SNS)을 통해 ‘선거가 조작되었다’는 주장을 퍼뜨리며 자신의 지지 세력을 결집하고 있다. 이번 선거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플랫폼 기업(판매자와 구매자를 하나의 장으로 끌어들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의 행보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은 선거였다. 원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한 2016년 미 대선 때 이들 플랫폼이 제공했다. 선거가 끝나고 한참 뒤 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의 보도로 밝혀진 바지만, 당시 트럼프 캠프는 불법적으로 수집된 개인정보를 활용해 누리소통망에서 미국 유권자를 상대로 맞춤형 표적 광고를 한 것이 드러났다.
또 러시아 정부와 연관된 세력이 미국 선거에 개입하기 위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활용한 것도 로버트 뮐러 미국 특별검사를 통해 뒤늦게 밝혀졌다. 이들은 수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이런 플랫폼에서 정치 광고를 통한 여론 조작을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사건이 가리키는 방향은 명확하다. 현재와 같은 수준의 누리소통망은 민주주의에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이들 소통망을 운영하는 기업은 자신들 역시 피해자임을 강조하지만, 알고도 방조했든 모른 채로 당했든 사람과 사람 사이 소통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이런 소통망이 여론 조작에 얼마나 효과적인 ‘전술 도구’로 이용될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취약점을 활용해 2016 대선에서 이득을 얻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검열과 거짓 정보 차단 사이의 경계
그러면 이번 대선에서 플랫폼 기술 기업은 과거의 오명을 벗을 만큼 역할을 했을까? 과거와 달라진 모습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투표 다음 날 새벽 2시(미국 동부 시각)에 자신이 승리했다고 주장했다. 여러 주에서 여전히 표를 세고 있는 시점에 내놓은 억지였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은 이번 선거에서 이런 거짓 주장이 나왔을 때 사람들이 해당 주장이 담긴 게시물을 공유하지 못하게 하거나 ‘거짓’임을 표시하는 기능 등을 여럿 도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이 기능이 잘 작동하는지 살펴볼 좋은 사례라고 할 텐데 실제 트위터, 페이스북 등은 ‘개표가 진행 중이며 최종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는 경고 문구를 붙여서 이런 기능이 작동하고 있음을 보였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플랫폼 기업의 노력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기술 매체 <엠아이티 테크놀로지 리뷰>는 트럼프의 트윗 등에는 이런 경고 문구가 달렸지만 같은 내용이 담긴 다른 이들의 게시물이나 영상은 여전히 이들 플랫폼에서 유통되고 있었음을 지적하며 기술 기업이 거짓 정보 차단에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물론 트럼프 지지자들의 눈에는 이런 대응이 다르게 비쳤다. 미국의 주요 방송국도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 방송 중에 이런 사실과 다른 주장을 꺼냈을 때 즉시 ‘거짓’임을 표시하며 개입했는데 트럼프 지지자는 이를 두고 기득권 언론의 ‘검열’이라고 누리소통망에서 비난했다. 모두가 자신의 스피커를 가지고 있는 이 시대에 검열과 거짓 정보 차단의 경계는 어떻게 정해야 할까. 이는 이번 미 대선을 두고 반면교사의 교훈을 얻어내야 할 지점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
권오성_ <한겨레> 기자로 미래, 과학 등을 맡던 중 뉴욕 시러큐스 대학에서 컴퓨터 기술과 저널리즘의 융합 석사과정을 마쳤다. 인공지능 등의 기술이 사회와 미디어에 가져올 영향에 관심이 많다. <데이터 과학> 등의 책을 번역했다. 현재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데이터 저널리즘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