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영화 등에서 그리는 외계의 지적 생명체는 우리와 상당히 닮았습니다. 피부색이 초록이거나 머리에 촉수가 달렸거나 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머리와 팔, 다리의 신체를 갖고 서로 대화하고 사랑하고 싸우는 모습 등이 인간과 닮았습니다. 잠시 생각해보면 광활한 우주가 잉태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생명이 우리와 비슷한 형태로 진화하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기에 갖는 상상력의 한계이겠지요.
그래서 비록 가능성일 뿐일지라도 지구의 생명과 완전히 다른 형태의 생명을 탐구하는 학자도 많습니다. 탄소가 아닌 실리콘을 기본으로 하는 유기체라든가(지구의 모든 유기체는 탄소라는 원소를 기본으로 합니다), 무기질로 된 생명체라든가 등의 가능성을 연구하는 것이지요.
9월 2일 이런 분야의 한 극한(?)을 보여주는 연구가 발표됐습니다. 미국 뉴욕시립대의 물리학자 루이 안커도키와 유진 처드노프스키가 <고에너지 물리학의 편지(Letters in High Energy Physics)>라는 학술 저널에 발표한 논문입니다. 둘은 별 안에 특수한 형태의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렁이 형태의 외계인이나 지하 도시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차원적인 단극 입자(monopole particle·자석의 한쪽 극만 갖는 가설상의 입자)로 구성된 끈 모양의 생각지도 못한 생명체입니다. 이 ‘우주 끈’ 외계인은 태양과 같은 별 안에서 불꽃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식으로 존재하리라고 하네요.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의 상식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초고온, 고압의 별 안에서도 생존할 수 있겠지요.
▶지구 최강의 생명체로 불리는 물곰 | 게티이미지뱅크
별 안에 사는 ‘우주적 지적 존재’
그런데 그런 것을 생명이라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연구진은 그것은 ‘생명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만약 생명의 핵심이 자신의 정보를 코드화해 죽기 전에 자식에게 물려주는 데 있다고 하면, 우주 끈과 같은 생명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어떻게 보면 우리 역시 자신의 디엔에이(DNA)를 후대에 물려주기 위한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주 끈 외계인은 정보를 디엔에이가 아닌 단극 입자에 저장하고 이를 다음 세대가 재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연구진은 또 지구의 생명이 돌연변이를 통해 진화해왔듯 우주 끈의 전달 방식도 변이할 수 있을 것이라 추정했습니다. 그리고 오랜 진화를 거쳐 지구에 인간이라는 지적 생명체가 등장했듯 진화의 어떤 시점에는 지적인 우주 끈도 등장하리라 추정했습니다. 별 안에 사는 ‘우주적 지적 존재’인 것이지요.
2020년 초 발표된 다른 논문도 외계인에 대한 기존 사고와 완전히 다른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천체물리학자 아미르 시라즈와 애비 로엡은 인간이 등장하기 한참 전에 지구를 떠난 고대 생명체가 있었을 수 있다는 연구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수십억 년 전에는 태양계가 아직 지금처럼 정리되기 전이라 여러 혜성이 지구에 근접해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으리라고 합니다.
이 가운데 어떤 것은 지구에 떨어질 정도는 아니지만 상공을 건드릴 만큼 가깝게 지나가고, 이때 상공의 일부 미생물은 해당 혜성에 ‘이론상’ 안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혜성 표면에는 이런 미생물이 숨기 좋은 구멍이 많은데, 어떤 미생물은 여기에서 우주의 극한 환경을 견뎠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 강건한 미생물은 혜성이 다른 행성에 충돌할 때 그 충격을 견디고 살아남을 가능성도 있다고 연구진은 추정했습니다.
그리고 해당 행성에 후대를 퍼트리고 진화했을 수 있으리란 겁니다. 일론 머스크가 화성에 식민지를 건설하기 수십억 년 전에 다른 선조가 이미 우주 어딘가에 지구 생명의 식민지를 건설했을 수 있다는 것이죠! 우리는 언젠가 이 형제 생명체가 진화해서 태어난 또 다른 인류와 외계인으로서 조우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인간이 가진 두 가지 능력
터무니없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근래에 이렇게 우주여행에 성공한 인간 아닌 생명체가 있습니다. 지구 최강의 생명체로 불리는 물곰(tardigrades)입니다. 물곰은 150℃의 고열이나 절대 영도의 저온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1mm 이하 크기의 튼튼한 생명체입니다. 2019년 8월 이스라엘의 한 재단이 우주선에 이 생명체를 실어서 달로 보냈는데 우주선은 불시착으로 부서졌지만 물곰은 무사히 달에서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주 끈, 혜성을 타고 우주여행을 떠난 미생물, 물곰 등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다시 한번 생명의 위대함을 일깨웁니다. 인간은 이들 가운데 누구보다 연약한 신체를 가지고 있지만 뒤지지 않는 두 가지 능력이 있습니다. 바로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고자 하는 호기심과 다른 개체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볼 수 있는 공감 능력입니다. 둘을 잘 발휘하면 지금의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쯤은 딛고 일어나 먼 훗날 머스크가 꿈꾸는 것처럼 우주적인 문명을 일군 종으로 거듭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권오성_ <한겨레> 기자로 미래, 과학 등을 맡던 중 뉴욕 시러큐스 대학에서 컴퓨터 기술과 저널리즘의 융합 석사과정을 마쳤다. 인공지능 등의 기술이 사회와 미디어에 가져올 영향에 관심이 많다. <데이터 과학> 등의 책을 번역했다. 현재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데이터 저널리즘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