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작은 거인’ 이승우가 살아났다

2020.09.21 최신호 보기

▶벨기에 프로축구 신트트라위던의 이승우가 9월 14일 앤트워프전에서 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신트트라위던 페이스북

10번이 살아났다.
‘작은 거인’ 이승우(22·신트트라위던) 이야기다. 벨기에 주필러 리그(1부) 신트트라위던의 측면 공격수 이승우. 그가 9월 14일(한국 시각) 2020~2021 벨기에 프로축구 정규리그 5라운드 앤트워프와 경기에서 2골을 폭발시켰다. 비록 경기는 패배(2-3)했지만, 이적 뒤 터트린 골은 이승우 개인에게는 엄청난 의미가 있다. 한때 가장 촉망받는 기대주에서, 1년간 0골의 바닥까지 몰락한 천재의 부활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이승우는 한때 정점을 달렸다. 2014년 16세 이하 대표로 아시아청소년축구 준우승을 일구면서 FC바르셀로나가 키운 유망주라는 이미지를 한껏 키웠다. 이승우는 당시 대회에서 5골 4도움으로 득점왕과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했고, 이듬해 칠레에서 열린 17세 이하 월드컵에서 한국의 16강 진출에 기여했다. 또 2016년엔 바르셀로나 2군에 합류해 장차 리오넬 메시 등과 함께 1군에서도 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부풀렸다.
그사이 벌어진 에피소드는 축구팬의 기억 속에 선명하다. 하나는 2015년 5월 수원에서 열린 JS컵 청소년축구 경기다. 당시 한국(2017년)에서 열릴 20세 이하 월드컵을 준비한 안익수 18세 이하 대표팀 감독은 한 살 어린 이승우를 호출했다. 하지만 이승우가 두 번째 벨기에와 경기 중 돌발 행동을 하면서 파문이 일었다.
상대 진영을 돌파하다가 막혀 득점 기회를 놓치자, 이승우는 골대 뒤의 광고판을 발로 찬다. 다소 감정적으로 보였던 이 행동을 본 팬들은 “광고판을 왜 차나, 좀 지나치다”라는 쪽과 “승부욕에서 나온 행동이다. 그럴 수도 있다”는 쪽으로 갈린다. 안익수 감독은 선수를 책망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내 지도자들은 그의 돌출 행동에 속으로 놀랐다.
 
강렬한 인상 남긴 머리 스타일
두 번째는 그의 머리 스타일이다. JS컵에서 금발로 염색하고 출전해 강렬한 인상을 안긴 그는 한 달도 안 돼 최진철 감독이 파주 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 소집한 17세 이하 대표팀 미팅에는 보랏빛이 감도는 회색으로 염색한 채 등장했다. 최진철 감독도 웃어넘겼지만, 국내 선수들과는 다른 톡톡 튀는 행동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해 10월 칠레에서 열린 17세 이하 월드컵에서는 분홍색 머리로 다시 한번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런 모습은 그의 뛰어난 스피드와 기술 등 축구 경기력과 비교하면 매우 주변적인 것이다. 다만 축구 외적인 것에 신경을 쓰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
그를 2017년 20세 이하 월드컵 대표,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대표로 뽑은 신태용 감독은 과거 “나도 처음에는 (이승우가) 버릇 없고 대표팀 하면 안 되는 선수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험해보면 다르다. 생각 없이 까부는 선수가 아니다. 이승우는 정도 많고 열심히 하는 선수다”라고 말한 바 있다. 아마도 이것이 이승우에 대한 정당한 평가일 것이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하면서 병역 문제를 해결하고, 이탈리아 세리에A 헬라스 베로나로 이적한 뒤, 2019년 8월부터 벨기에 무대로 진출한 것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하지만 신트트라위던에서 첫 시즌은 참담하고 절망적이었다. 총 네 번의 출장 기회를 얻었고, 그것도 교체 출전이 절반이었다. 공격 포인트를 올릴 시간이 없었다.
선수가 힘들었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승우는 절치부심했다. 신태용 감독의 말대로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의료진 등 위해 1억 원 쾌척
코로나19 초기 의료진 등을 위해 운동선수로는 선도적으로 1억 원의 거액을 쾌척한 그는 2020~2021 새 시즌을 기분 좋게 출발했다. 최근 세 경기 연속 출장, 두 경기 풀타임을 뛰면서 팀 내 입지를 다지고 있다. 골이 터진 만큼 자신감도 상승했다. 김대길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은 “이승우의 천재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청년 이승우가 정상 궤도를 찾아가는 듯하다”고 말했다.
유럽파의 활기찬 시즌 출발도 이승우에게 자극이 되고, 경쟁심을 일으키고 있다. 스페인 무대 후배 이강인(19·발렌시아)은 시즌 개막전에서 ‘멀티 도움’을 기록했고, 분데스리가로 옮긴 황희찬(24·라이프치히)은 독일축구협회컵 초반부터 골 폭죽을 터트리며 날고 있다. 정우영(21·프라이부르크)도 날카로운 공격력을 뽐내고 있다. 권창훈(26·프라이부르크)이나 이재성(28·홀슈타인 킬), 황인범(24·카잔) 등 대표팀 선배들도 각 팀의 득점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승우가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에 선발되기 위해서는 좀 더 보여주어야 한다. 벤투 감독은 이승우의 천부적 재능을 잘 알고 있지만, 이승우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축구가 몸과 몸을 부닥치는 경기인 만큼 체력도 더 강화해야 한다. 물론 축구는 몸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한다는 말도 있다. 김대길 해설위원은 “몸의 크기가 아니라 경쟁하며 버틸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기술이나 스피드를 더욱 강화해 약점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승우는 바르셀로나 유소년 시스템인 ‘라 마시아’에서 육성된 신동에서 출발해 주체할 수 없는 자유분방한 끼와 축구 센스의 질풍 같은 청소년기, 이른 침체와 시련의 20대 초반 청년기가 압축된 극적인 여정을 거쳐왔다. 유럽 축구 문화에서 자란 그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도 있었다.
하지만 시련만큼이나 생각에도 굳은살이 생겼고, 정신적으로 더 성숙했다. 과거 자기중심의 개인적인 플레이에서 벗어나 팀 호흡을 맞춰나가는 모습도 보인다. 작은 거인 이승우가 10번 백넘버가 상징하는 팀의 중심으로 2020년 시즌 훨훨 비상하기를 꿈꿔본다.

김창금_ <한겨레>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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