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면서 몇 번이나 이사했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새로 이사 갈 곳을 찾아 부동산 중개업소를 전전하고, ‘실례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누군가 살고 있는 집 구석구석을 들여다보고, 이삿짐을 싸고 풀고, 전입신고를 하고 난 후에야 한 번의 이사가 끝난다.
현재 살고 있는 집에 이사 올 사람, 앞으로 살 집에 살고 있는 사람과 이사 날짜를 맞춰야 하고, 계약금과 잔금 치를 날짜도 정해야 한다. 이 복잡한 이사 과정 동안 모든 일이 순조롭게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사업체, 부동산 중개인과도 비용이나 서비스 범위 등을 놓고 옥신각신하기 일쑤다.
고 제정구 의원은 “과일나무를 옮겨 심을 때 흙으로 감싸 옮겨도 3년간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몸살을 앓는다”고 말했다. 그동안 세입자들은 과일나무가 다시 자리 잡는 데 필요한 3년에도 훨씬 못 미치는 2년마다 삶터를 옮기고 또 옮겨야 했다.
하지만 2020년 7월 31일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임대차 보장기간이 2년에서 4년으로 늘어났다. 1989년 임대차 보장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늘어난 지 31년 만의 변화다. 이번 개정으로 세입자는 임대인에게 전월세 계약을 ‘2년 더 연장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계약갱신청구권을 가지게 되었고, 이때 임대료의 인상률 상한은 5%로 제한된다.
전월세 건수 감소 경향은 앞으로 유지
개정 이후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임대차 보장기간 연장’이 세입자들의 이사에 미친 영향은 바로 나타나고 있다.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해 이사하지 않게 되면서 전월세 건수가 동반 감소하고 있다. 2020년 9월 10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의 전세 건수는 7월 9770건에서 8월 6022건으로, 월세 건수는 7월 3650건에서 8월 2292건으로 줄었다. 건수는 바뀔 수 있겠지만 전월세 건수 감소 경향은 앞으로도 유지될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런 현상을 ‘전세 매물 실종’ ‘전세 거래 절벽’이라 부른다. 하지만 전세뿐 아니라 월세 건수도 줄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의 당연한 결과인 세입자의 거주 기간 증가에 따른 전월세 거래의 총량 감소를 의미한다.
전월세 거래의 총량 감소가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충분히 줄어들지 않는 것이 문제다. 임대차 보장기간이 2년에서 4년으로 두 배 증가한 점을 고려하면 전월세 건수가 반토막 나는 것이 정상인데, 7∼8월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건수의 감소 폭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입자에게 새롭게 부여된 권리가 적절히 행사되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법 개정 이후 한 달간, 그동안 없던 처음 행사하게 된 계약갱신청구권이 낯설어 권리행사에 주저하는 세입자를 주위에서 많이 보았다. 법 개정 후 체결된 임대차계약뿐 아니라 개정 전 체결된 기존 계약에 대해서도 1회의 계약갱신청구권을 부여했다. 기존 거주 기간과 상관없이 갱신청구권이 주어진다. 하지만 이미 4년 이상 살았기 때문에 이번 법 개정으로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잘못 아는 세입자가 의외로 많았다.
한 세입자는 부산에서 약국을 하는 임대인이 경기도에 있는 아파트로 들어와서 산다고 나가달라고 하는데 사실관계와 상관없이 무조건 집을 비워줘야 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기도 했다. 사실이 아닐 경우 갱신을 거절한 임대인이 임차인의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법 개정 내용은 이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세입자 한 명 한 명의 구체적인 권리를 보호하는 데 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아직 멀리 있다.
교육·정보 제공·법률 상담·분쟁 조정 강화해야
정책 당국은 앞으로 전월세 건수 변화 등 전월세 시장 동향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서 필요한 행정적 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 세입자들이 몰라서 권리행사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도록 홍보, 교육, 정보 제공, 법률 상담, 분쟁 조정 등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행정의 최일선에서 주민과 만나는 시·군·구, 읍·면·동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임대차 행정을 펼칠 수 있도록 법·제도적 기반도 마련해야 한다. 주거급여 수급액이 인상되는 만큼 매년 오르는 쪽방의 월세도 이번 법 개정으로 영향을 받지만 권리행사를 쪽방 주민에게만 맡겨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세입자의 주거권 보장을 위한 국가의 역할이 법 개정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촘촘한 임대차 행정으로 보여줘야 한다.
최소 6년 이상으로 임대차 보장기간 연장, 신규 계약 시의 인상률 제한 도입 등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법 개정으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열렸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세입자들이 삶터에 뿌리내릴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