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 엄청 줄어 초기 창작자엔 큰 도움되죠”
▶이상곤 모어사이언스 대표(맨 왼쪽)가 ‘안될과학’ 유튜브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이상곤
이상곤 모어사이언스 대표
<내셔널지오그래픽> <디스커버리> 같은 외국 방송을 즐겨 보며 ‘우리나라에도 과학 방송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이상곤 모어사이언스 대표가 유튜브 채널 ‘안될과학’을 만든 건 2018년 6월이었다. 유튜브의 해외 1인 미디어 창작자들에 자극받아 공동 창업자 두 명과 ‘우리도 과학 전문 영상을 직접 만들어보자’며 의기투합해 성인을 대상으로 블랙홀, 양자역학 등 전문적 과학 주제를 쉽게 설명하는 방송을 시작했다.
“예전에는 가족 모두 볼만한 방송을 주로 만들었잖아요. 지금은 사람마다 휴대전화가 있으니 개인화된 방송이 필요해진 거죠. 과학이나 곤충, 게임, 미용(뷰티)은 옛날에는 볼 수 없었던 콘텐츠들이죠. 요구는 계속 있었지만 텔레비전이란 매체가 담아낼 수 없었는데, 이제 휴대전화와 유튜브가 생기면서 충족하게 된 겁니다.”
현재 구독자는 30만 명이 넘고 직원도 세 명이나 있지만, 처음에는 이 대표가 집에서 1인 미디어 형태로 만들었다. 필요할 때는 집 근처 스튜디오를 시간 단위로 빌려 촬영하기도 했다. 그러다 정부의 벤처 지원 입주공간에 들어갔지만, 영상을 제작할 만한 환경은 아니었다. “그냥 독서실 같았어요. 촬영이나 편집을 위한 공간이 없어서 1인 미디어 창작자한테는 적당치 않았죠. 지원 기간도 6개월로 짧았고요.”
이 대표 자신이 1년 가까이 고생했기 때문에 최근 정부가 발표한 지원책이 더욱 피부에 와닿았다. 정부는 2021년 예산안에 1인 미디어 창작자와 신생 기업(스타트업)을 지원하는 데 55억 원을 새로 배정했다. 우선 미디어 신산업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1인 미디어에 특화된 육성(인큐베이팅) 시설을 만든다. 콘텐츠 제작 스튜디오가 중심이 될 ‘1인 미디어 콤플렉스’(가칭)는 30~50%를 자부담하면 최대 2년까지 입주할 수 있다. 또 1인 미디어 특화 집적 단지를 조성해 창업 기반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전·후방 연관 산업의 동반 성장을 꾀한다.
“우리는 운이 좋아서 선점한 덕에 6, 7개월 만에 수익을 냈지만, 매출이 느는 만큼 비용도 비례해서 늘더라고요. 촬영 공간과 영상 장비에 돈이 많이 들어가서 사업을 키워도 건물주와 카메라 회사만 좋은 거죠. 이번에 발표한 지원책대로 되면 비용이 엄청 줄기 때문에 초기 창작자한테는 진짜 좋은 거 같아요.”
현재 이 대표는 매달 200만 원이 넘는 사무실 임대료와 직원 세 명의 봉급을 감당하고 있다. 여기에 콘텐츠 저작권 사용료가 만만치 않다. 영상 제작에 필요한 사진과 영상을 사는 데 월 200만 원 가까이 들어간다.
“저희가 사무실과 촬영 장비를 365일 24시간 쓰지 않는 만큼 1인 미디어 창작자들이 모여 있으면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잖아요. 요즘에는 미디어끼리 출연해서 구독자를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협업도 많이 하거든요. 이런 일도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죠. 창작자들끼리 콘텐츠 저작권을 저렴하게 공동 구매하면 직접적인 도움이 될 겁니다. 비용을 줄여서 사업적 안정성을 올려주고, 실패해도 큰 부담이 없으니까 안전망이 되잖아요. 초기에 맨몸으로 부딪칠 때 솔직히 ‘왜 이런 거 없나’ 싶었어요. 이제 지원받는 분들은 훨씬 수월하겠죠.”
■“삶기술학교는 청년·지역 소멸 문제 해결사”
▶충남 서천군 한산면에 있는 삶기술학교의 웰컴센터인 ‘노란달팽이’ 앞에서 김정혁 ㈜자이엔트 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직원들이 공동체 만들기 워크숍에 참석한 주민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김정혁
김정혁 (주)자이엔트 대표
소곡주와 한산 모시로 유명한 충남 서천군 한산면은 여느 시골처럼 젊은이는 떠나고 어르신만 남아 있는 곳이었다. 최근 청년들이 몰려들면서 마을에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도시 생활에 지친 청년들이 빈 공간을 임대해 창업하고 마을의 명인들에게 모시 짜기, 소곡주 빚기 등을 배우며 삶의 방향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이런 변화는 2019년 행정안전부 공모로 시작된 ‘삶기술학교’ 때문이다. 지금까지 입학한 120명 가운데 53명이 지역에 정착했고, 아예 주소를 이전한 청년도 20명이 넘는다. 스스로 일자리를 창안해 15개의 창업팀이 생겼고, 한산면에 정착한 한 자립공동체는 저출생 극복을 위해 돌봄강사가 되어 교육 격차를 해소하고 있다. 빈집 13곳이 재생되고 청년 공유주택(셰어하우스) 9곳이 조성되면서 삶기술학교는 전국 청년 자립마을의 선도 사례가 됐다.
한산면 주민자치회와 함께 이 학교를 기획한 문화예술 사회적기업 (주)자이엔트의 김정혁 대표는 “삶기술학교는 교수도 학생도 없이 마을을 캠퍼스로 하는 실험대학”이라며 “정착한 청년들과 지역 기반으로 비즈니스 모델(기업의 사업 계획 또는 시스템)을 연구해 ‘협동형 커뮤니티 벤처’를 완성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2020년 하반기부터 한산면에는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기존 정착한 청년들의 ‘삶기술’을 중심으로 열 가지 ‘테마형 한 달 살기’가 운영된다. 커뮤니티 벤처의 첫 번째 사업인 ‘마을 호텔’은 9월 14일부터 시작됐다. 유휴 공간이었던 한산향교 유림회관은 공공 와이파이 및 5세대 이동통신(5G) 연계망을 구축하는 ‘2020년 첨단기술 활용 스마트타운 조성사업’과 연계해 ‘협업 공간(코워킹 스페이스)’으로 새롭게 탄생한다. 한산면에 정착한 청년 유목민(노마드)과 주민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으로 새 단장해 12월부터 연다. 김 대표는 “청년들이 지역 정책에 아이디어를 내면서 지역의 전통산업에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가고 있다”며 “도시에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삶의 질이 낮았던 청년들이 함께 자립공동체를 형성하면 지역은 자신의 사업 기회를 찾고 실험하는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역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는 청년과 청년이 필요한 지역 도시를 연결하는 청년 자립마을을 조성하는 데 기존 대비 750% 늘린 76억 5000만 원을 2021년 예산안에 반영했다. 2021년 수도권, 강원, 충남, 충북, 전북, 경남, 경북, 전남, 제주에 12개 자립마을을 새로 만들 예정이다. 낙후 지역에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공동 터전을 만든 뒤 지역 자원을 활용해 경제활동을 창출하도록 청년자립 활성화 프로그램으로 정착 및 교육을 지원한다. 이를 통해 일자리, 단절·고립 등 청년 문제와 원도심, 인구 소멸 등 지역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게 목표다. 김정혁 대표는 “청년 자립을 위한 성장 시스템을 지역과 함께 국가가 투자하면서 조금씩 나은 변화들이 생겨나고 있다”며 “지역혁신 모델로 자리 잡은 전국의 청년 자립마을이 서로 협력하면 균형발전과 성장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원낙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