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1일 새로운 세입자 보호 정책이 시행되었다. 현재 2년인 계약기간을 세입자(임차인)가 원하면 1회 갱신권을 보장해주는 계약갱신청구권, 임대료 인상률을 최대 연 5%로 제한한 임대료 상한제, 그리고 주택임대차 계약을 의무적으로 신고하게 하는 전월세 신고제가 주된 내용이다. 계약갱신청구권과 임대료 상한제는 법 공포와 함께 시행되었고 전월세 신고제는 전자시스템 구축 등 준비로 2021년 6월 실시될 예정이다.
기존 임대차 계약은 법적으로 2년 기간이 끝나면 이사해야 하는 불안과 임대료 인상에 상한이 없기 때문에 전세 폭등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세입자의 주거비 부담이 컸다. 세입자에게 1회 갱신권 보장과 임대료 상한제를 동시에 실시하는 것은 세입자의 주거 안정에 밑거름 구실을 한다.
더 나아가 세입자가 갱신할 권리를 갖고 연 5% 임대료 인상률 상한을 두고 협상할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주거권이라는 권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세입자가 자기의 이해를 표현하고 국가가 이를 법으로 존중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세입자는 이 사회의 존중받는 구성원이 되는 것이다. 임대인에 비해 사회적 힘이 약했던 세입자 쪽의 권리를 강화해 힘의 균형을 추구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반 확대에도 기여한다.
주택임대차 계약에 대해 임대인과 세입자에게 계약 후 30일 내 신고 의무를 부여한 전월세 신고제는 주거비 부담 완화를 위한 정책 인프라 역할을 해야 한다. 임대차 신고의 범위를 주택 형태(아파트·단독 다가구), 임차 형태(전·월세), 지역(지방·대도시), 보증금 액수에서 일부만 신고 의무로 할 것이 아니라 전체 임대차 계약으로 해야 한다. 아파트나 다세대주택 전세가격 추이, 전세가율, 전세의 월세화 추세, 월세 등을 지역별·주택 형태별, 소득수준별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해 각 대상별로 주거비 부담 완화를 위한 정책이 나와야 한다. 담보대출과 전세보증금이 매매가를 웃도는 ‘깡통 전세’를 예방하고, 전세 폭등에 대비하고, 전세의 월세화 추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주거복지 차원에서 월세 세입자에 대한 주거급여 등 주거비 보조정책의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장기공공임대주택 공급 위한 재정 확대를
최근 몇 년간 주택가격과 전세가격이 많이 올랐다. 정부는 주택정책의 중심을 1주택자나 세입자 등 실수요자에게 둔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주택정책의 중심을 실수요자에게 둔다면, 주택의 실수요자가 원하는 ‘소득으로 부담 가능하고, 거주하고 싶은 양질의 주택’을 분양이나 임대로 공급해야 한다. 이는 공공택지나 국공유지에서 공공분양주택이나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하는 방법밖에 없다.
특히 앞으로 민간 임대시장에서 갱신권과 임대료 상한제 그리고 표준임대료 제도가 시행되고 확대된다면, 민간 임대시장에서 주택 공급자 역할을 했던 임대인들이 임대사업에서 수익성의 한계를 느끼면서 민간주택 공급이 줄어들 개연성이 높다. 이에 따라 공공이 주도해 주택 공급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공공분양을 하더라도 분양자에게 이득이 가는 현재의 분양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세가격 수준으로 공공분양을 받고 장기적으로 거주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지대 차익을 공공이 환수하는 방식의 공공분양이 되어야 한다.
장기공공임대주택은 대규모로 확대해야 한다. 아울러 공공임대주택 공급방식에도 혁신이 필요하다. 공공임대주택의 디자인이나 주택시설을 개선하고, 입주자를 위한 맞춤형 복지가 결합되어야 한다. 고령 노인 관리, 질병 재활센터, 장애인·어린이 보육, 일자리 지원 등 공공시설과 사회적 관계망이 형성되도록 해야 한다.
또 중산층도 함께 거주할 수 있는 ‘어울 단지(소셜 믹스)’형이 되어야 한다. 단지별로 소득이 비슷한 사람끼리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동에 다양한 평수대를 넣어 같이 거주하도록 하는 것이 공동체 형성에 도움이 된다. 공공임대주택만 단지 구석에 덩그렇게 짓는 것이 아니라 사무실도 입주시키고 공공시설도 배치해 활력이 넘치게 하고, 입지도 역세권 등 접근성이 좋은 곳으로 해야 한다.
양질의 장기공공임대주택을 대규모로 확대 공급하기 위해서는 재정이 투입되어야 한다. 정부는 주택도시기금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지금까지 신도시를 건설하고 주택을 공급했다. 주택도시기금이 아무리 많아도 그 기금의 성격상 청약저축 가입자들과 주택채권 매입자들에게 이자와 원금을 상환해줘야 할 기금이다. 즉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 것이다.
역대 정부들은 ‘주거 순환의 공정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즉 공공 성격의 공공택지에서 주택 구매력이 있는 이들이 민간분양이나 공공분양을 받으면서 주택가격 상승의 혜택을 얻었는데도 주택 보유자들에게 적절한 보유세나 양도소득세를 부과하지 못했다. 주택 보유자들에게 공평과세를 실현해 이를 재정으로 확보했다면 양질의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공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라도 주택 보유자나 부동산 소유자들에게 부과된 보유세나 양도소득세 일부를 장기임대주택공급의 재정으로 확보해야 한다.
재건축 공급 의사결정을 조합에서 공공으로
세입자들이 선호하는 주거지는 도시 외곽의 신도시보다 기존 생활 기반시설이 있는 도시 내 재건축 아파트다. 1970년대 말부터 건축한 아파트의 노후화로 재건축 시기가 돌아오는 곳을 활용해 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런데 이곳의 재건축 아파트는 그동안 중대형 평형 위주로 공급해 없어진 세대수를 제외하면 신규 주택공급 물량이 그리 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가장 비싼 아파트가 되고, 나아가 주변 주택가격을 끌어올리는 집값 상승의 진앙지가 되었다. 부가가치가 높은 주택 투자상품 역할을 해온 것이다.
재건축 아파트는 저층을 초고층으로 층수를 높여주고, 용적률을 올리고, 도시기반시설을 확충해야 하는 등 공공이 결정하는 도시계획으로 가능하다. 이처럼 공공성이 있는데도 그 개발이익은 조합원, 건설사, 분양권 투자자, 초기 분양자에게 돌아갔고 조합 비리나 공사비 부풀리기 등 부정적인 모습이 끊이지 않았다 .
특히 재건축 아파트가 주변 주택가격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면서 집값 안정을 정책 우선순위에 둔 정부는 섣불리 재건축을 추진할 수 없게 되었다. 조합이나 건설사는 가장 비싼 시기에 분양해야 이익이 되기 때문에 시장이나 정부 규제에 따라 분양 건축 시기를 결정해야 하므로 계획적으로 주택공급 시기를 예측하기 어렵다.
이처럼 주택 수요는 많은데 주택 건설을 할 수 없는 상황은 건설산업 측면에서도 경제적 손실이다. 무엇보다 일부에게만 개발이익이 돌아가는 방식을 개혁해 개발이익을 회수하고 재건축 아파트를 계획적이면서 예측 가능하게 공급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 방안으로 관련 법을 개정해 조합이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는 방식에서 벗어나 공공이 시행 주체가 되어 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법적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주택 소유자는 낡은 아파트 대신 새 아파트를 제공받고 개발이익은 공공이 가져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번 세입자 보호 정책은 단순히 2년 계약기간 보장이나 임대료 5% 상한에만 있지 않다. 사회 구성원의 주거권을 보장하겠다는 의미이며 그 시작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주택·주거 정책을 발전시켜 사회 구성원 모두가 맞춤형 주거복지 시대를 누리길 소망한다.
박동수 서울세입자협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