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위 부터)푸투라와 쿠퍼 블랙 서체는 상당히 다른 표정과 언어를 갖는다./ 1803년 로버트 손이 발표한 패트페이스 글꼴/ 패트페이스로 디자인한 1840년경의 포스터
글자는 소리이기도 하다. 한국의 간판 문화를 보고 외국인들이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을 하는 이유도 글자가 뜻만 가진 게 아니라 소리도 갖고 있다는 것을 대변한다. 사람들은 글자가 단지 뜻에만 머무르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표정을 만들고 싶어 안달한다. 왜냐하면 뜻만 가진 글자만으로는 의사를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말할 때 다양한 억양을 활용해 의미를 강화하거나 약화한다. 어디 그뿐인가. 대화를 할 때는 표정이 더해지기까지 한다. 똑같은 문장을 온화한 표정으로 타이르듯이 말할 수도 있고, 그와는 달리 눈을 부릅뜨고 입술과 눈썹을 실룩거리면서 말할 수도 있다.
목소리로 말하는 것보다 문자로 말하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하는 ‘스마트폰 시대’에 그토록 많은 이모티콘이 개발되고 팔리는 건 글자가 가진 소리와 표정의 결핍을 보완하려는 이유다. 하지만 글자 자체만으로도 어느 정도 소리와 표정을 만들 수 있다. 가장 쉬운 것이 글꼴을 선택하는 것이다. 푸투라 소문자(그림 1)는 늘씬하고 키가 큰 소년 같고, 쿠퍼 블랙(그림 2)은 살이 통통한 귀여운 꼬마를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처음부터 활자가 다양했던 건 아니다. 서양에서 활자가 탄생한 것은 1450~1455년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했을 때다. 그 뒤로 3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활자는 그렇게 다양한 모양으로 개발되지 않았다. 오늘날 본문체라고 말하는, 가독성을 중시하는 점잖은 활자만이 존재했다. 활자에 소리와 표정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건 19세기 산업혁명이 본격화 되면서다.
▶19세기에 개발된 대단히 장식적인 서체
산업혁명 이후 활자에 소리·표정 담겨
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이 시작되자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물건을 판매해야 했다. 이로써 광고 행위가 시작되었는데, 이때 비로소 글자에 소리와 표정이 없다는 걸 인식했다. 시끄러운 시장에서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기 상품의 장점을 호소할 필요가 생겼을 때, 그제야 기존 활자들이 얼마나 얌전한지 깨달은 것이다. 1803년 로버트 손은 자신의 활자 주조소에서 그때까지 볼 수 없었던 굉장히 파격적인 활자(그림 3)를 발표한다. ‘패트페이스(Fatface)’라고 이름 붙인 이 글꼴은 기존 본문체 중 하나인 모던 로만체를 응용해 획의 대비를 극단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활자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손으로 쓰는 글자에서 발전했다. 손으로 글자를 쓰다 보면 굵은 획과 가는 획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것이 활자에도 반영되어, 예를 들어 M자의 세리프(획의 시작이나 끝부분에 있는 작은 돌출선) 부분은 굵기가 좀 더 얇다. 대체로 세로획이 가로획보다 굵은 편이고, M이나 W자처럼 같은 방향의 선이 반복되면 하나는 굵게, 하나는 가늘게 하는 것이 보기에 좋다.
아무튼 이런 굵기 차이가 있더라도 그 대비가 패트페이스만큼 극단적인 경우는 없었다. 산업혁명 이전까지 문맹률이 매우 높았으므로 활자는 늘 점잖은 귀족과 엘리트 계층의 전유물이었다. 그들의 보수성, 그러니까 변화를 거부하고 기존의 것을 편하게 보는 태도가 활자 디자인을 강력하게 통제했던 것이다. 하지만 엘리트에게는 상스럽게 보였을 패트페이스는 장사하는 사람들에게는 크게 환영받았다. 드디어 그들의 상품을 홍보하는 데 딱 적합한 활자를 찾은 것이다. 그것은 글자에 소리와 표정을 담은 것이기 때문이다.
패트페이스는 실질적인 디스플레이 활자의 시대를 연 것으로 평가받는다. 디스플레이 활자는 광고, 홍보를 위해 가독성을 희생하고 눈에 띄는 역할에 충실하게 디자인한 글꼴을 말한다. 오늘날에는 엄청나게 다양한 디스플레이 활자가 존재하지만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그런 개념이 없었던 것이다. 패트페이스는 굵기를 활용해 글자의 주목도를 높였다. 그 뒤 입체형, 반전형, 장식형 등 다양한 디자인의 활자들이 폭발적으로 개발되었다. 심지어는 꽃으로 장식한 ‘플라워스(flowers)’라는 범주의 아주 복잡하고 화려한 글꼴까지 등장했다.
▶1960년대 초, 미국에서 폴크스바겐 비틀의 광고 서체로 푸투라 라이트가 쓰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70년대에 나이키는 푸투라 엑스트라 볼드 서체로 디자인된 광고로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이뤘다.
굵기 차이만으로 다른 이야기 전하는 활자
이러한 디자인은 19세기에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활용되었다. 그것은 졸부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빅토리아 시대의 천박성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글자를 화려하게 만드는 것에 몰입해 글꼴 디자인 자체의 완성도는 많이 떨어졌다. 디스플레이 서체라고 해도 어느 정도의 가독성을 갖춰야 한다. 그리하여 20세기 중반 모더니즘 시대가 만개하면서 기업들은 완성도 높은 활자들을 활용하되 활자의 굵기 차이로 소리와 표정을 보완하고자 했다. 여기에 기업으로부터 큰 환영을 받은 글자 중 하나는 ‘푸투라(Futura)’다.
푸투라는 독일의 파울 레너가 1927년 발표한 것인데, 그 인기는 미국에서 훨씬 좋았다.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푸투라의 활용 사례는 나이키다. 나이키 로고에 쓰인 글자, ‘저스트 두 잇(Just do it)’이라는 유명한 슬로건, 나이키의 광고에는 언제나 푸투라 볼드체가 함께한다. 그냥 볼드도 아니고 엑스트라 볼드이므로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다.
나이키 광고의 성공 이후 수많은 기업도 엑스트라 볼드 푸투라를 이용했다. 이것의 성공 요인은 첫 번째는 완성도 높은 멋진 글꼴 디자인에 있고, 두 번째는 그것을 ‘굵게’ 눈에 띄게 해준 디자인에 있다. 간단하고 작은 변화지만 굵기 차이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푸투라 라이트와 푸투라 볼드는 전혀 다른 글꼴이다. 마치 화가 난 엄마의 얼굴과 온화한 엄마의 얼굴이 다른 얼굴이듯 말이다.
김신_ 홍익대 예술학과에서 미술 이론을 전공하고 월간 <디자인> 기자와 편집장, 대림미술관 부관장으로 일했다. 현재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