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어: 승리를 위하여│넷플릭스
다큐 <치어: 승리를 위하여>
“내 안의 편견을 걷고 정확히 봐라”
영화 <브링 잇 온>은 치어리딩(운동경기 등에서 조직적인 응원을 돕기 위한 군무)을 소재로 한 10대 영화였다. 치어리더를 건장한 쿼터백(미식축구의 포지션 중 하나)의 애인이나 멍청한 금발 백인 소녀가 아니라 승부욕이 강한 소녀들로 그리며 화제를 모았다.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치어: 승리를 위하여>는 그보다 더 나아간다. 미국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과 미국 프로농구팀 시카고 불스를 다룬 <더 라스트 댄스>와도 같은 감동을 준다.
<치어>는 치어리딩을 기본적으로 ‘스포츠’로 다룬다. <더 라스트 댄스>가 마이클 조던의 신화적 업적 이면의 인간적인 면모에 집중했다면, <치어>는 특정 그룹에서 압도적 인기를 누리는 치어리딩 내부의 구조, 체계와 그 안에서 치열하게 훈련하며 성공 신화를 쓰는 선수들의 여정을 따라간다. 그 과정에서 선수들의 캐릭터가 부각되고 드라마가 형성된다. 덕분에 <치어>는 미국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다큐멘터리의 출연자들은 넷플릭스 방영 후 <엘런 쇼> <나이트 쇼> 등에 출연하며 스타가 되었고,
에서는 한 코너를 통째로 이 캐릭터들을 패러디하는 코미디도 만들었다. 대체 왜 그랬을까?
<치어>의 주인공은 텍사스주 나바로대학의 치어리딩 팀이다. 나바로 팀은 전미 최고의 치어리딩을 선보이며 전미치어리딩대회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그 중심에는 모니카 앨다마 수석 코치가 있다. 그는 고교 시절 잠시 치어리딩을 했지만, 공부에 매진해 텍사스대학에서 경영학 석사까지 땄다. 텍사스대학은 미국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경영대학원으로, 모니카는 대도시 뉴욕으로 이주해 경력을 더 쌓아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갑작스러운 임신과 육아로 틀어졌고, 그는 텍사스에 머물러야 했다. 나바로대학이 그에게 치어리딩 코치를 제안한 것이 그때다. 모니카가 원했던 길은 아니지만 그는 이 제안을 수락하고, 자신의 경영학 이론을 치어리딩에 접목해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었다. 결과는? 전미치어리딩대회에서 우승하며 나바로대학을 치어리딩의 성지로 만들었다. 덕분에 나바로 팀은 10대 소녀들의 우상인 가비 버틀러라는 선수도 얻고, 치어리딩 장학금도 생겼다. 전국에서 치어리딩 꿈나무들이 나바로대학으로 몰려들었다. <치어>는 바로 그들이 어떻게 1년이라는 시간을 쏟아부어 2019년 데이토나대회에서 우승하는지를 보여준다.
<치어>가 주는 감동과 통찰은 남다른데, 핵심은 ‘우리는 어떤 영역이든 내 안의 편견을 걷고 정확히 봐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여러 의미로 한국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한, 숨은 명작 다큐멘터리다.
▶킬링이브│왓챠
독특한 영국 드라마 <킬링 이브>
“너무 웃기고 너무 슬프고 너무 좋다”
유력 정치인, 마피아 보스, 거액 기부를 하는 재벌 등이 잔혹하게 살해당한다. 이들을 죽인 살인마는 청부살인업자로 양심의 가책이나 망설임 없이 살인을 즐기는 사이코패스다. 그런데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못한 가치로 생각하는 그에게도 트라우마가 있다.
이 잔혹한 살인마를 쫓는 것은 정부 요원이다. 완벽주의자에 카리스마 넘치는 국장의 명령에 따라 비밀 수사팀을 꾸린 그는 명석한 두뇌와 동물적 감각으로 청부살인업자를 추적한다. 그와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새로운 비밀이 드러나고 사건은 더 심각해진다. 그는 이 범죄자를 추적할수록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이런 설정은 사실 뻔하다. 그러나 단 하나의 차별점으로 <킬링 이브>는 완전히 다른 드라마가 된다. 청부살인업자, 그를 뒤쫓는 정부 요원, 카리스마 넘치는 국장이 모두 여성이란 점이다. 이런 설정 하나만으로 뻔한 드라마는 매우 입체적이면서 다층적인 맥락으로 해석된다.
2018년 시즌1, 2020년 시즌3를 내놓은 <킬링 이브>는 정부 요원 ‘이브’를 맡은 샌드라 오와 청부살인업자 ‘빌라넬’을 연기한 조디 코머의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긴장뿐 아니라 성적 긴장도 함께한다. 살인범과 국가공무원의 이 애정 관계는 성소수자(LGBTQ)의 관점인 동시에 윤리적인 질문도 던진다. 특히 드라마에서 너무나 흔했던 클리셰(진부하거나 틀에 박힌 생각)가 뒤집히는 부분. 여기서 여성은 선한 인물도, 악한 인물도 아니다. 섹시하지만 남성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천진하고 유아적이지만 그걸로 도덕적 판단을 하게 만들지 않는다.
저 간극이 어떻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빌라넬은 매우 잔인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캐릭터고, 이브는 어딘지 답답하면서도 구석구석 공감할 만한 캐릭터다. ‘여성은 왜 이렇게 복잡한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인간이라서 복잡하다. 우리는 그저 이제껏 단순하게 설계된 여성 캐릭터에 익숙해졌을 뿐이다.
그래서 과연 ‘복잡함’이란 뭘까, 생각하게 된다. 복잡함이란 대상이 아니라 그 대상을 보는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말이다. 요컨대 그의 이해력, 상식, 가치관, 지식 등이 총체적으로 작동한 결과가 ‘복잡함’이 될 때,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대상을 타자로 만든다. 복잡함이 가치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는데도 우리는 쉽게 그걸 기준으로 가치판단을 하는 셈이다.
<킬링 이브>는 언론인이자 작가인 루크 제닝스의 소설이 원작이다. 드라마의 총괄 제작과 각본을 맡은 피비 윌러브리지는 영국의 코미디언이자 작가로서 이미 아마존 프라임의 화제작 <플리백>의 제작·각본·주연을 맡아 높은 역량을 증명했고, 코로나19로 개봉이 연기된 제임스 본드의 은퇴작 <007 노 타임 투 다이>의 각본에도 참여했다. 참고로 <플리백>은 ‘빌라넬의 일반인 버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상한 주인공의 복잡한 감정을 뒤쫓는 코미디다. 어쩌면 미친 것 같지만 동시에 사랑스럽고 복잡해서 지나치게 현실감 있는 영국 여자 이야기로, 너무 웃기고 너무 슬프고 너무 좋다.
차우진_ 음악평론가. 미디어 환경과 문화 수용자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청춘의 사운드> <대중음악의 이해> <아이돌: H.O.T.부터 소녀시대까지…> <한국의 인디 레이블> 등의 책을 썼고, 유료 콘텐츠 플랫폼 ‘퍼블리’에서 <음악 산업, 판이 달라진다> 리포트를 발행했다. 현재는 ‘스페이스 오디티’라는 스타트업에서 팬 문화, 콘텐츠, 미디어의 연결 구조를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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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