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 공덕·아현 지역의 아파트 단지│한겨레
확 달라지는 주택 임대차 시장
집 걱정 없는 삶, 공정한 시장질서, 편안한 주거환경. 정부가 2020년 5월 20일 발표한 ‘2020년 주거종합계획’의 세 가지 핵심 목표다. 이런 목표에 따라 정부는 투기적 주택 수요 억제에 초점을 맞춘 6·17대책과 7·10대책을 내놓았고,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의 주택 공급 확대를 뼈대로 한 8·4대책까지 발표했다. 수요와 공급을 아우르는 부동산 정책이 이처럼 짧은 기간에 압축적으로 쏟아지는 것은 이례적이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대책들은 주택 거래 제도에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오고, 시장의 수급과 가격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수요, 공급 대책의 일차적 정책 목표는 시장의 불안 심리를 해소하고 주거 안정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월세 시장 안정이 가장 시급한 과제
주거 안정에서도 가장 시급한 과제는 전월세 시장의 안정이다. 주택 수요·공급 정책의 효과는 어느 정도 시차를 거쳐야 시장의 본격적인 반응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전월세 시장은 정책 효과의 시차를 기다릴 수 없다. 전국 845만에 이르는 무주택 임차가구에게는 삶의 터전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를 담은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이 7월 31일부터 곧바로 시행되고, 전월세신고제 도입 법안인 ‘부동산 거래 신고 등에 관한 개정 법률’까지 8월 4일자로 공표되면서 주택 전월세 시장은 이미 격변기에 접어들었다.
새로운 임대차 시장 안정을 위한 제도는 시장 참가자들이 당장 적응해야 하는 거래 질서다. 이와 함께 8월 11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18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도 전월세 시장에 즉각 영향을 미치는 제도 변화다. 7·10대책 가운데 임대주택 등록제도의 변경 내용을 담은 특별법 개정안은 임대차 시장 안정을 위한 제도 시행과 연계된 법안이다. 이 역시 무주택 서민의 주거 안정과 전월세 가격 안정에 목적을 두고 있다.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전월세 시장은 수급과 가격 모두 다소 불안한 양상이 이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6~7월의 전세가격 상승에 대해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 시행 전에 집주인들이 미리 전세가격을 올려 계약을 체결한 경우가 많았고, 청구권제 시행으로 기존 계약의 갱신이 예정되면서 전세 물량이 일시적으로 시장에서 줄어든 데 따른 것”으로 파악했다.
따라서 새 제도 시행에 따른 전월세 시장 안정 효과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시장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불과 몇 달 사이에 전월세 가격이 급등락할 가능성도 없다. 부동산 시장 일각에서는 새 제도 시행으로 주택 임대 공급의 품귀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으나, 시장 불안을 부추기는 과도한 우려다.
주택과 같은 부동산은 말 그대로 움직일 수 없는 재화다. 가격 억제 요인이 생겼다고 해서 공급 총량이 갑자기 줄어들지 않는다. 땅값 상승에 제한을 둔다고 땅이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계약갱신청구권은 임차인이 희망하는 경우 1회에 한해 계약 갱신(2년)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이고, 상한제는 갱신 때 임대료 인상 한도를 5% 범위 내로 제한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임대차 계약기간이 남아 있는 세입자는 임차료 급등에 대한 걱정 없이 안심하고 거주할 수 있는 기간을 한 차례에 걸쳐 2년 더 확보할 수 있게 됐다. 2020년 8월 계약을 맺어 전세를 얻었다면 2024년 8월까지 안심 거주가 보장된다. 갱신청구권을 행사하는 전세 세입자에게 임대인이 일방적으로 월세 전환을 요구할 수도 없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 임대차 계약갱신이란 기존 계약과 같은 조건의 계약을 말하기 때문이다.
전월세 전환율 인하가 왜 중요한가?
문제는 예비 임차인이나 집을 옮겨야 하는 경우에는 이런 법적 보호 장치를 벗어난다는 점이다. 가구 분화나 결혼, 직장 이동이나 자녀 교육 등의 문제로 이사하면서 새로 집을 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임대차보호법이 무용지물이다. 중개시장을 통해 형성되는 전월세 호가가 지속적으로 오르거나 전세의 월세 전환이 가속화할 경우 신규 계약자의 주거비 부담은 크게 늘어 새 제도 도입 취지가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무주택 서민의 주거비 부담과 주거 불안 해소를 위해서는 더욱 정교한 후속 대책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실제 전월세 시장에 안착하고 실효성 있게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첫 번째 방안이 법정 전월세 전환율 하향 조정이다.
전월세 전환율이란 전세 보증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월 단위 차임(월세)으로 전환할 때 적용하는 산정률이다. 전환율이 높을수록 임차인에게는 전세보다 월세 부담이 크다는 의미이며 낮으면 그 반대다.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제7조의2) 시행령에서는 한국은행 기준금리에 대통령령으로 정한 3.5%를 더한 비율을 전월세 전환율로 명시하고 있다. 2020년 5월 한은이 기준금리를 0.5%로 낮춘 만큼 현재 법정 전월세 전환율은 연 4.0%인 것이다. 2%대 중반인 전세자금대출이나 주택담보대출 금리, 또는 1%대인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를 고려하면 임대인과 임차인 간 균형이 맞지 않는 비율이다.
이런 불균형은 주택 임대차 거래에서 전세의 월세 전환을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임차인으로서는 전세로 거주하는 경우보다 월세로 거주하는 경우의 주거비 부담이 더 커지는 결과가 초래된다. 정부는 저금리 시대의 임대인과 임차인 간 기회비용의 균형을 고려해 법정 전환율의 하향 조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조정 폭은 4.0%에서 2.5%다. 전환율 조정은 국회 법률 개정 없이 국무회의 의결을 통한 시행령 개정으로 가능하다. 정부는 시행령 개정과 입법예고를 통해 이르면 10월부터 임대차 계약 갱신에 하향 조정된 전환율이 적용되도록 할 방침이다.
법정 전월세 전환율은 기존 계약을 변경하거나 계약기간 2년이 지나 갱신할 경우에는 반드시 지켜야 하지만 신규 계약에까지 강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다. 따라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고, 신규 계약을 하는 임차인들은 법정 전환율 인하를 체감하기 어렵다.
국회에서는 이런 맹점을 보완하기 위한 입법 추진이 활발하다. 더불어민주당 조오섭 의원은 법정 전월세 전환율을 초과한 임대차 계약에 대해서는 임차인이 초과분에 대한 월세 또는 보증금 반환을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에는 임차인이 일정한 요건을 갖췄을 경우 법률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또 무소속 이용호 의원이 발의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전월세 전환율이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금융기관의 대출 평균금리를 초과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이를 어길 경우 2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되어 있다.
임차인 정보 열람권 및 분쟁조정기구 확대
정부는 새 제도 시행을 포함한 서민 주거 안정 대책이 조기에 시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하위 법령과 후속 조치 마련을 서두르기로 했다. 우선 임대인의 허위 계약갱신 거절 방지를 위해 임차인의 임대차 정보 열람권을 확대한다.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은 계약갱신청구권제 도입과 함께, 임대인이 직접 거주를 이유로 임차인의 갱신 요구를 거절하면서 실제로는 제3자에게 임대하는 경우 법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손해배상 책임의 실효성을 위해서는 임대인의 직접 거주를 이유로 계약 갱신 거절을 당한 임차인이 사후에 임대인의 실제 거주 여부나 제3자에게 임대되었는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따라 정부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임차인이 퇴거한 이후에도 해당 주택의 임대차 정보 현황을 열람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현재 개별 주택의 임대차 정보 현황은 집주인과 세입자, 근저당권자, 우선변제권을 승계한 금융기관 등이 볼 수 있다. 개정안은 여기에 계약갱신 요구가 거절된 임차인을 추가할 방침이다.
임대인과 임차인 간 신속한 분쟁 조정과 임차인 피해 구제를 위한 분쟁조정기구도 대폭 늘어난다. 국토부는 개정 ‘임대차 관계법’ 시행과 동시에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운영기관으로 법률구조공단 외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한국감정원을 추가한 바 있다. 이번에는 LH와 한국감정원이 운영하는 분쟁조정위원회 12곳의 위치 및 관할 범위를 새로 추가해 발표했다.
현재 6곳인 분쟁조정위원회는 2020년 연말까지 인천과 청주, 창원, 서울 북부, 전주 등 12곳으로 늘어난다. 2021년에는 제주와 성남, 울산, 고양, 세종, 포항 등을 추가해 18곳으로 확대된다. 국토부는 인구 50만 명 이상 도시에 최소 한 곳이라는 기준을 적용해 전국에 걸쳐 총 40여 곳의 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한다는 목표를 밝혔다.
공공임대주택 확대와 공급 유형 다변화
전월세 시장의 안정과 주거 복지 실현을 위해서는 공공임대주택의 공급 확대도 중요하다. 국토부 자료를 보면, 2018년 기준 장기공공임대주택 재고는 148만 4000호로 전체 주택 수 대비 7.1%다. 2008년과 비교해 3.7%포인트 늘어난 수준이지만 주거 복지체계가 탄탄한 나라에 견주면 여전히 미흡한 물량이다. 네덜란드(37.7%), 덴마크(21.2%), 오스트리아(20%) 등은 공공임대주택 비율이 전체 주택 재고의 20% 이상이다.
정부는 2020년 3월에 발표한 ‘주거복지로드맵 2.0’을 통해 2025년까지 장기공공임대주택 재고 240만 호, 전체 주택 대비 10%의 재고율 확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연평균 14만 호 이상의 공공임대주택 공급 계획을 세웠다.
공공임대주택 공급 유형의 다변화도 추진한다. 공공임대주택은 민간 임대시장의 교란 요인을 제어할 수 있을 만큼 재고가 확보돼야 하지만, 단순히 양적 확대에만 치중하다 보면 자칫 ‘저소득 취약계층의 주거 수단’이라는 낙인 효과로 기피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정부는 공공임대주택이 지역사회와 일반 주택시장으로부터 단절되지 않도록 공급의 질적 전환을 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우선 영구임대, 국민임대, 행복주택 등 기존 공공임대주택의 여러 유형을 하나로 통합하고 입주자의 자산과 소득, 생애주기 등에 따라 다양한 체계의 임대료를 부과하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통합형 공공임대는 2020년 하반기 경기도 남양주 별내지구와 과천지식정보타운에서 시범사업단지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며, 2022년부터는 모든 공공임대주택을 통합형으로 공급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집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투자의 대상이기 전에 ‘사람이 사는 곳’이다. 공공임대주택은 중산층도 싼값에 장기간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집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정부 목표와 계획대로 공급이 이뤄지면, 2025년에는 전체 무주택 임차가구의 10곳 중 3곳 이상이 공공임대에 거주할 수 있게 된다.
박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