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명 명지대 스마트모빌리티연구센터장
김현명 명지대 스마트모빌리티연구센터장 인터뷰
1930년대 대공황 당시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대적인 ‘새판(뉴딜) 짜기’를 통해 이를 극복하고 장기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2020년 한국은 코로나19 등으로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고 있다. 2025년까지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에 160조 원을 투입해 총 190만 1000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 중 디지털 뉴딜에는 데이터·네트워크·인공지능(D·N·A) 생태계 강화, 교육 인프라 디지털 전환, 비대면 산업 육성, 사회간접자본(SOC) 디지털화 등이 포함된다.
한국판 뉴딜이 일시적 경기부양책을 넘어 새로운 성장동력 구축을 위한 ‘새판 짜기’가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8월 13일 명지대 자연캠퍼스에서 김현명 스마트모빌리티연구센터장(교통공학과 교수)을 만나 ‘디지털 뉴딜’을 중심으로 의견을 들었다.
디지털 뉴딜이 추구해야 할 방향은?
김현명 교수는 “한국판 뉴딜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성장을 지속하는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뜻”이라며 “코로나19 이후 한국 사회에 대한 고민에서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 안전망 강화라는 세 개의 틀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코로나19 이전에도 경제성장률 침체와 4차 산업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실업 문제, 이용자·데이터의 플랫폼 독점 문제 등이 악화돼 ‘새판 짜기’는 필요했다고 말했다. 특히 “플랫폼 산업은 이전 산업보다 훨씬 강력한 독점 구도를 만들어낸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구글·애플·아마존·페이스북 등은 강력한 플랫폼을 기반으로 독점적 지위를 더욱 굳히고 있다.
그는 다만 디지털 뉴딜에서 누가 수혜자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독점의 병폐가 대공황의 원인이라고 진단해 뉴딜을 추진했고, 재임 연설에서 ‘뉴딜을 하려는 것은 부자를 더욱 부자로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풍요롭게 해주기 위한 것’이라고 밝혀 수혜 대상을 명확히 했다”고 그는 말했다.
루스벨트, 전기 공공재화 추진해 뉴딜 실현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중 테네시강 댐 건설은 당시 2차 산업의 근간이 되는 전기를 공공재로 보급하면서 관련 산업이 크게 부흥했다. 전기 비용이 줄면서 기업들의 이익이 급증했고, 신규 투자와 새로운 기업의 등장으로 이어져 수많은 고용 창출이 일어났다.
루스벨트 대통령도 처음부터 전기의 공공재화를 추진한 것은 아니었다. 테네시강 댐 개발은 ‘자동차 왕’ 헨리 포드 등이 입찰을 따냈지만 공화당 상원의원 조지 노리스가 자본가들에 맞서 무산시켰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상대당 출신의 노리스를 발탁해 ‘모두를 위한 전기(Electricity for all)’를 실현함으로써 국민 모두에게 물과 전기를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었다.
김 교수는 “전기는 미국의 미래 자원이기 때문에 공공재로 ‘모든 사람의 편익이 극대화될 수 있는 방향으로 활용돼야 한다’는 철학이 없었다면 독점은 더욱 심화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터 댐은 데이터라는 물을 댐에 가둘 계획은 있지만 누가 전기를 생산하고 소유할지 명확하지 않다. 데이터를 모았으면 데이터를 결합해 정보(Information)를 만들고, 여기에 인공지능(AI)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인 지식(Knowledge)까지 생산해 전기처럼 공공재로 보급해야 한다고 김 교수는 강조했다. 공공의 데이터를 쌓아서 공개만 할 게 아니라, 민간이 필요로 하는 문제를 풀어줄 수 있는 해결책과 활용 분석 기능까지 갖춘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댐에 모인 데이터만 공급할 경우 정보화·지식화 과정은 자본과 능력을 보유한 대기업만이 활용할 수 있다. 반면 정보화와 지식화까지 정부가 맡아 공공재로 보급하면 중견기업은 물론 젊은이들도 적은 돈으로 신생기업(스타트업)을 창업할 수 있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데이터 댐 수혜자 신생기업이 돼야
내비게이션 관련 정보와 지식의 활용을 예로 들었다. 택시 디지털 운행기록계(DTG)와 지도 데이터 등을 데이터 댐에 모은다. 택시 데이터를 정제하고 지도와 결합하면 택시의 속도 정보가 생성된다. 여기에 도메인 전문가와 인공지능(AI) 기술이 적용되면 출발 지점을 기준으로 통행시간 예측지도라는 지식을 만들 수 있다. 이는 서비스에 즉시 이용할 수 있는 지식으로, 아이디어만으로 내비게이션 신생기업을 창업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반면 가공되지 않은 데이터만 나열하면 데이터 결합에 많은 자금이 필요해 신생기업 창업은 어려워진다.
정보와 지식의 공공재화는 고용 창출과도 직결된다. 중소벤처기업부의 2020년 4월 자료에 따르면 기업이 10억 원을 유치하면 신생기업 단계(3년 이내)에는 5.0개의 일자리를 만들지만 3~7년에는 4.0개, 7년이 넘어서면 3.3개로 감소한다. 특히 4차 산업의 D·N·A 분야는 인공지능과 대량 자료(빅데이터)에 의해 기업이 성장하는 특징이 있어 성장할수록 투자와 고용창출 효과가 줄어든다. 더 많은 고용창출을 위해서는 데이터 댐의 수혜자가 D·N·A 산업에 신규 진출하는 기업과 신생기업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아이디어만으로 창업이 가능해지는 생태계가 만들어지면 대기업들도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고용해야 살아남는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는 ‘데이터 최대 산유국’
김 교수는 우리나라를 ‘데이터 최대 산유국’이라고 표현한다. 4차 산업 시대에 매우 뛰어난 조건을 갖췄다는 평가다.
“우리나라 국민은 정보기술(IT)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매일 엄청난 데이터를 생산한다. 대중교통만 해도 2018년 수도권에서 1년 동안 66억 6000만 건의 실적이 교통카드로 수집됐다”고 그는 설명했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퓨리서치’가 2019년 세계 27개 국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의 휴대전화 보급률은 100%에 달했고 95%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국민 1인당 데이터 생산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김 교수는 “센터를 짓고 서버를 구축하는 데이터 댐에 가장 많은 자금이 투입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데이터를 정보화·지식화하는 사업에도 균형 있게 투자해 공공재로 보급하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데이터 산유국’이라는 좋은 조건도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달라진다. 원유의 경우도 중동 일부 국가는 왕족이 소유하면서 일부 계층의 부를 쌓는 도구로 전락한 반면, 노르웨이는 원유를 통한 국부펀드로 어업 국가에서 IT 강국으로 변모했고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가 됐다.
현재 정부가 제시한 10대 대표과제 중에는 디지털 트윈만이 유일하게 데이터 정보화 사업에 해당된다고 그는 분석했다. 디지털 트윈은 현실 공간과 사물을 컴퓨터 가상공간에 구현하는 것으로 자율형자동차와 드론 등 신산업의 기반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는 “데이터 댐을 통해 만들어지고 가공되는 상품들은 최대한 공공재로 저렴하게 공급해야 한다”며 “정보화 단계까지 공공재화가 필요하며 지식화 단계는 생태계만 만들어주면 개인이나 기업이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접근성 낮춰 많은 사람 쓸 수 있도록 해야”
김 교수는 공공데이터 댐의 성공 사례로 2010년 호주 정부의 주도로 구축한 ‘호주도시연구기반시설망(AURIN·Australian Urban Research Infrastructure Network)’을 꼽았다. 초기에 교수들의 연구 자료에 주로 활용됐던 호주도시연구기반시설망은 호흡기 중증환자가 급증한 것을 계기로 민간의 참여가 가속화됐다.
당시 병원들이 연합해 역학조사를 벌이고도 성과를 얻지 못했지만 호주도시연구기반시설망의 데이터를 활용해 쉽게 원인을 찾았다. 대형 트럭의 운행 데이터를 결합해 건설 현장을 오가는 비포장도로 주변에 환자들이 분포한 사실을 밝혀냈고, 미세먼지가 원인임이 금방 드러났다. 공공데이터의 중요성을 깨달은 병원들이 의료 데이터를 내놓자 보험사를 시작으로 민간기업도 대거 합류하기 시작했다.
김 교수는 “디지털 뉴딜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확고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며 “루스벨트 행정부가 전기를 공공재로 공급하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했듯 데이터 역시 접근성을 낮춰 많은 사람이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철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익을 얻는 대상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기톱이나 믹서, 야간 독서 등 일반인들이 전기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해 국민의 동의를 얻어냈다.
김 교수는 “산업구조 재편을 통한 경제체질 개선이라는 단기 과제(디지털 뉴딜)와 지구온난화 대책과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장기 과제(그린 뉴딜), 과도기 고용불안에 대비한 고용·사회 안전망 구축과 사람투자 등 세 개 축의 균형이 좋다”고 한국판 뉴딜을 평가하고 “다만 추진 단계에서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걸러내 사업을 재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