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골바위
전설은 재미가 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전설이 재미없으면 생명력이 없다. 인어 이야기가 그렇다. 우리가 들은 바다에 사는 인어는 여성이었다. 긴 머리를 날리며 아름다운 자태로 바다를 유영하는 인어는 인간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로렐라이 언덕에서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람을 유혹하던 인어도 있고, 사랑을 위해 마녀에게 목소리를 빼앗긴 비련의 인어 공주도 있다. 아마도 인어의 전설을 만든 이는 뱃사람들로, 오랜 항해를 하며 이성에 대한 그리움이 인어의 전설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어를 당연히 여성으로 생각한다.
▶먼 바다에서 바라 본 수우도
그런데 ‘놀랍게도’ 한국에 남자 인어의 전설이 있다. 물론 여성 인어의 전설도 있다. 거문도의 인어 ‘신지끼’는 하얀 피부에 생머리를 한 아름다운 여성 인어다. 신지끼는 주로 달 밝은 밤이나 새벽에 나타나 절벽에 돌을 던지거나 소리를 질러 어부들을 태풍으로부터 구한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남자 인어의 주인공은 설운 장군이다. 설운 장군은 반인반어(半人半魚)로 바다를 호령하며 왜구를 물리쳤다고 전해진다. 삼천포 앞바다에 있는 수우도에는 설운 장군을 모시는 제당도 있고, 섬 주민들이 매년 장군을 기리는 제사도 지낸다. 인어 공주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설운 장군의 전설은 낯설지만, 살갑게 다가온다. 그 남자 인어의 전설을 찾아 수우도로 가보자.
▶고래바위 위에서 바라본 수우도 바닷가
통영 앞바다에 소처럼 떠 있는 ‘수우도’
삼천포항에서 배를 타고 30분 가면 수우도에 도착한다. 바로 옆에 있는 사량도는 이미 섬 트레킹의 명소로 유명하다. 하지만 수우도는 사량도의 그늘에 가려진 탓인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섬이다. 나무가 많고, 섬의 모습이 소를 닮았다고 해서 수우도(樹牛島)라고 한다. 삼천포항에서 남쪽으로 10㎞, 사량도에서 서쪽으로 3㎞ 해상에 자리한 수우도는 행정구역상으로는 경남 통영시 사량면에 속한다. 면적은 1.5㎢, 섬 둘레는 7㎞다. 20여 가구가 모여 사는 거주 인구 40명도 안 되는 작은 섬이다. 대부분 주민이 노인들이고, 홍합 양식으로 소득을 올린다. 식당도 없고 잡화점도 없다. 아직도 물질문명의 손을 타지 않은 수줍은 모습의 섬이다.
주말이면 등산객이 적지 않게 찾아오지만 대부분 유람선을 타고 들어와 섬의 산을 한 바퀴 돌고는 바로 빠져나간다. 먹을 것을 배낭에 짊어지고 오니 경제적으로 섬에 보탬이 되는 것은 없다.
8월 1일 2박 3일 일정으로 수우도에 들어갔다. 늘 꿈꾸던 한가로운 어촌의 일상을 맛보고 싶었다.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벽돌담은 정감 있는 벽화로 가득하다. 통영에서 3년 전 담에 그림을 그리는 봉사단이 와서 치장했다. 아이들이 없는 섬에 벽화로나마 귀여운 아이들이 골목을 뛰논다. 이제는 사라진 젊은이들이 벽화로나마 사랑을 속삭인다. 학생들이 없어 10년 전 폐교된 수우초등학교는 관광객을 위한 숙소로 개조했다.
▶해골바위에서 본 남해
첫날은 어슬렁어슬렁 마을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 골목길에는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부채를 부치며 이야기를 나누다 지나가는 외지인을 바라본다. 육지로 떠난 자식들을 떠올리며 안부를 걱정하는 표정이다. 저녁 무렵엔 몽돌해수욕장에 가서 일몰을 바라보았다. 둥근 자갈로 가득한 해변은 파도가 칠 때마다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낸다.
▶수우도의 매섬
암벽을 때리는 파도, 그 바다의 생명력
둘째 날 오전은 민박집 주인이 모는 배를 타고 섬을 돌기로 했다. 고래가 입을 벌린 모습의 고래바위, 파도와 비바람에 깎여나가 구멍이 숭숭 뚫려 해골을 연상시키는 해골바위를 배를 타고 감상한다. 해안 절벽을 밧줄을 타고 오르는 암벽 동호인들도 눈에 띈다. 마치 매의 부리처럼 날카로운 모습의 매섬에는 배를 대고 올라가본다.
섬 한 바퀴를 도는 데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유난히 동백나무가 눈에 많이 띈다. 멀리서 섬을 보면 동백나무잎이 반짝반짝 빛나, 수우도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은박산(해발 195m)으로 불린다. 섬 일주를 마친 뒤, 인심 좋은 선장은 잡은 생선을 몇 마리 그냥 준다. 싱싱하다. 양식하는 홍합과 물미역도 주며 홍합미역국을 끓여 먹으라고 한다.
오후엔 산행에 나선다. 20분 정도 가파른 길을 올라가자 고래바위가 나타난다. 고래바위에 서면 비취색 바다와 건너편 사량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어지는 신선봉의 아슬아슬한 낭떠러지에 서면, 어디선가 구름을 타고 신선이 나타날 것 같다.
조금 더 능선을 타니 해골바위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가파른 산길을 내려가니 오전에 배를 타고 보았던, 구멍 숭숭 뚫린 해골바위가 눈앞에 펼쳐진다. 조심스럽게 바위를 타고 해골바위 속으로 스며든다. 마치 정교하게 정으로 바위를 깨서 둥글둥글한 모양을 만든 것처럼 기하학 무늬가 자연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
편히 앉아 수평선을 바라본다. 설운 장군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발아래 세차게 암벽을 때리는 파도가 바다의 생명력을 일깨운다. 은박산을 거쳐 마을로 내려오는 길은 온통 동백숲이다. 세 시간 정도 걸린다. 홍합미역국으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수우마을 담에 그려진 벽화에 한 어린이가 다가서고 있다.
왜구를 내쫓다 음해에 시달린 설운 장군
3일째 오전에는 본격적으로 설운 장군을 만나러 갔다. 산 쪽으로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 설운 장군을 모시는 제당이 있다. 수백 년 된 고목 두 그루가 제당 바로 옆에서 신목(神木)의 위용을 드러낸다. 이제 기다리던 설운 장군 전설 속으로 빠져보자.
옛날 수우도에 부부가 살았다. 아이가 없어 치성을 들여 뒤늦게 아내가 임신했다. 열두 달 만에 아이가 태어났다. 첫돌이 지나고부터 바다에서 헤엄을 치며 놀았다. 자라면서 아이의 온몸에 비늘이 돋기 시작했고, 일곱 살이 되면서 겨드랑이에 아가미 같은 구멍이 생겼다. 아이는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바닷속을 헤엄쳐 다녔다. 청년이 됐다. 어느 날 수우도 앞바다에 왜구들이 나타났다. 바닷속을 헤엄치던 청년은 은박산 꼭대기로 솟아올라 거대한 부채로 바람을 일으켜 왜구를 내쫓았다. 노략질을 일삼던 왜구들은 혼비백산해 도망갔다. 그때부터 남해안 섬사람들은 청년을 설운 장군(또는 인어 장군)이라 불렀다.
장군 덕에 섬사람들은 왜구의 침략을 받지 않고 편안히 살게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설운 장군을 음해하는 헛소문이 돌았다. 반인반어인 괴물이 남해를 휩쓸며 어부들을 괴롭힌다는 것이다. 왕은 그 괴물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설운 장군은 물속에서 보름씩 숨어 있기도 했다. 조정에서는 지원군까지 보냈지만 괴물을 찾을 수 없었다. 설운 장군은 오히려 관아로 쳐들어가 판관의 부인을 납치해 데려가 아내로 삼았다. 아이까지 낳았다. 아내는 탈출할 기회를 노렸다.
▶설운 장군을 모신 제당인 지령사
풍어를 꿈꾸며 오늘도 ‘할바시’를 모신다
어느 날 설운 장군이 잠든 틈에 관군이 들이닥쳐 장군을 생포했다. 설운 장군은 한번 잠이 들면 며칠씩 자는 버릇이 있는데 아내가 그 기회를 노려 관군을 불렀다. 압송 도중 장군은 잠에서 깼다. 당황한 관군이 장군의 목을 쳐 죽이려 했으나 목이 떨어지면 다시 붙고, 목이 떨어지면 다시 붙어 죽일 수가 없었다. 판관 부인이 잘린 목에 메밀가루를 뿌리자 더 이상 목이 붙지 않았다. 섬 주민들을 위해서 산 민중의 영웅은 영원한 죽음을 맞이했다.
설운 장군이 죽자 왜구들의 노략질이 시작됐다. 섬사람들은 수우도에 제당을 짓고 장군의 위패를 모셨다. 그리고 장군이 죽임을 당한 음력 시월 보름날 제를 올렸다. 수우도 사람들은 장군의 제사를 잘 모시면 마을이 태평하고 풍어가 든다고 믿는다. 제당 안에는 설운 장군과 아내, 두 아이의 초상이 있다.
수우도 할머니들은 설운 장군을 ‘할바시’라고 부른다. 당제를 지내는 날은 동네잔치였다. 꽹과리를 두드리며 밤새 놀았다고 한다. 집집마다 정성껏 제물을 준비해 설운 장군을 모셨다. 이제는 다들 나이가 들어 육지에서 스님을 모셔와 제를 지낸다. 그렇게 우리의 남자 인어는 희미한 기억속으로 사라져 바다를 떠돌고 있다.
이길우_ <한겨레신문> 창간 작업에 참여해 34년간 취재기자로 활동했다. 한민족과 이 땅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찾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한민족의 무예, 공예, 민간신앙 등을 글과 사진을 통해 꾸준히 발굴, 소개한다. 저서로 <고수들은 건강하다>, 사진집 <신과 영혼의 몸짓 아첼레란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