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과 고통 게 물렀거라 ‘억척 아지매’ 나가신다

2020.09.14 최신호 보기

▶각종 해산물을 펼쳐놓고 손님을 맞는 자갈치 아지매

‘판때기 아지매’였다. 막 어선에서 내린 생선을 받아, 널빤지로 만든 좌대에 올려놓고 팔았다. 해삼과 멍게, 갈치와 고등어, 미역과 톳나물, 그리고 고래 고기가 아주머니들의 능숙한 손놀림을 거쳐 널빤지에 올려져서 손님을 기다렸다. 가난과 혼돈의 시기. 억척스럽게 돈을 벌어 자식들을 키웠다. 바닷바람에 피부가 거칠어지고, 짠물에 불어 손가락 지문이 사라졌지만, 아주머니들의 생활력은 시장 바닥에서 강인하게 존재했다. 비록 코로나19로 손님이 크게 줄었지만, 부산 자갈치시장은 판때기 아지매의 전통을 굳건히 이어가는 ‘자갈치 아지매’의 힘찬 숨결이 그대로 남아 있다.
자갈치 아지매는 자갈치시장의 오랜, 실제 주인공이다. 다소 거친 이미지로 다가오는 자갈치와 아지매의 결합은 일제강점기의 압박과 6·25전쟁의 고통, 그리고 산업화 시기의 분주함이 녹아들며 수산물 시장의 대명사가 됐다.

▶자갈치시장 상인들의 애환을 시로 표현한 신진련 시인│신진련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
8월 3일 오후 찾아간 부산 자갈치시장은 남항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비릿한 내음과 자갈치 아지매들이 손님을 부르는 잔잔하고도 진한 부산 사투리가 잘 어우러져 자갈치시장 특유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시장 골목 양옆으로 길게 이어지는 진열대에는 제철 생선과 해산물, 반건조 생선과 건어물이 서로 뽐내며 자리 잡고 있다. 매년 10월에 열리는 ‘자갈치 축제’는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라는 정겨운 구호를 내세우며 1992년부터 손꼽히는 해양수산물 관광축제로 자리 잡았으나, 2020년은 코로나19 여파로 취소된 상태.
자갈치라는 이름은 애초 이곳 시장이 자갈이 많은 곳에 생겼기 때문에 붙은 것이다. 1945년 광복 후에 ‘남포동시장’으로 불리다가 6·25전쟁 이후 ‘자갈밭에 있는 시장’이라는 뜻으로 ‘자갈치시장’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어시장에서 팔리던 물고기를 의미하는 ‘치’ 자가 자갈에 붙었다.
일제강점기인 1928년 건설된 남항은 당시 최대 어업 전진기지였다. 6·25전쟁 때는 전국에서 부산으로 몰려든 피란민들이 곳곳에 판잣집을 짓고, 일자리를 찾으러 다녔다. 많은 이들이 자갈치시장 근처에 노점을 열거나 지게꾼으로 일했다.

▶자갈치시장이라는 이름은 자갈이 많은 해변과 생선을 의미하는 ‘치’ 자가 합쳐진 것이다.

자갈치시장이 정식으로 시장 등록을 한 것은 1972년. 1985년에 큰 화재가 나서 점포 231개가 소실됐고, 현대식 건물로 개축해 다시 문을 열었다. 지금은 500여 점포가 있다.
부산 수산물 거리는 남항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로를 따라 수산물과 건어물 등을 판매하는 자갈치시장과 충무동 해안시장, 충무동 새벽시장을 포함한다. 이곳은 전국에서 거래되는 수산물과 건어물의 30~50%를 공급하고 있고,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어시장으로 꼽힌다. 그 중심에 자갈치시장이 있다. 현대식 건물과 재래식 골목이 공존하지만, 전통의 자갈치시장은 역시 노점 골목이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자갈치시장을 찾는 손님이 줄자 한 자갈치 아지매가 휴대전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자갈치시장에서 일하며 문학 혼 꽃피워
자갈치시장의 주인공인 아지매를 시로 표현한 시인이 있다. 신진련(59) 시인이다. 그는 직접 자갈치시장에서 20여 년간 해산물을 팔며 경험한 일들을 생생한 언어로 묘사했다. 자갈치시장이 시인의 직장이자, 문학 혼을 꽃피우게 한 현장인 셈이다. 우선 시인이 쓴 ‘욕갈치’라는 시를 감상해보자.
‘노점상 할머니가/ 갓 받아온 갈치를/ 좌판에 펼쳐놓았다/ 지나가던 남자가/ 삐져나온 갈치 꼬리를 밟았는지/ 할머니 입에서 욕설이 쏟아졌다/ 까만 봉지에/ 손질한 갈치와/ 잘못 디딘 발자국을 구겨 넣은 남자가/ 잘라낸 꼬리지느러미를 툭/ 발로 차고 간다/ 꼬리를 바닥에 늘어뜨린 채/ 눈먼 걸음을 기다리는/ 욕갈치들/ 싫지 않은 유혹인 듯/ 남자가 자꾸 뒤돌아본다/ 은갈치 꼬리가 유난히 길었다.’
복잡한 시장에서 좌판에 깔아놓은 갈치를 툭 치고 지나친, 술 취한 남자와 그것을 바라본 자갈치 아지매의 긴장감이 눈앞에 그려진다. 비록 자갈치 아지매가 욕설을 하더라도 그 욕설은 정겹게 느껴지고, 남자는 불쾌히 여기지 않는다.
신 시인은 창원에서 수학 보습학원을 운영하다 자갈치시장에서 1970년대부터 오징어 중도매업을 하던 아버지를 도와 일했다. 20여 년 전이다. 8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엔 남편과 함께 본격적으로 회사를 맡아 운영하고 있다. 서른 살 아들도 합류했으니 3대에 걸쳐 자갈치시장의 가족이 된 셈이다.
공판장에서 오징어를 사들여 구매자에게 넘기거나, 직접 소유한 배에서 잡은 생선을 갖고 경매에 참여한다. “자갈치 아줌마들이 겉으론 억척스럽게 보이지만, 참 따스하고 정겨운 마음을 갖고 있어요. 사귈수록 깊이 빠집니다.”

▶자갈치시장의 생선구잇집

“보고 느낀 것 쓰니 멋진 시 되더라”
신 씨가 시인이 된 이유는 생선 비린내였다. 그 사연을 들어보자.
“자갈치시장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가려고 전철을 탔어요. 빈자리가 나서 앉아 피곤해 깜박 잠이 들었어요. 눈을 뜨니까 그 칸에 아무도 없었어요. 정신 차리고 보니 상황이 이해됐어요. 신발에서 나는 진한 비린내가 주변 승객을 모두 옆 칸으로 도망가게 만든 거죠. 너무 창피해 다음 역에서 후다닥 내렸어요. 40분 정도 어두운 겨울 밤길을 걸어 집에 왔어요. 그때 결심했어요. 창피하다고 피하지 말자. 글로 모든 것을 기록하자고….”
신 씨는 8년 전부터 매일 자갈치시장의 경험을 일기로 쓰다, 압축된 언어인 시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시 동호회에서 시를 발표하다 2017년 문학지 <시와 소금>을 통해 늦깎이 시인으로 등단했다. 2019년에 출간한 첫 시집 <오늘을 경매하다〉(책펴냄열린시)에 자갈치시장을 소재로 한 시 60여 편을 실었다. 어시장 공판장의 경매 현장과 자갈치시장 노점상 풍경 등을 담았다.
“보고 느낀 것을 이야기하듯 쓰니까 남들이 멋진 시라고 했어요. 그래서 자신감을 갖고 시를 쓰기 시작했지요.”
자갈치시장에 있는 실제 상점 이름인 ‘모녀상회’라는 시는 자갈치시장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녀의 모습을 그렸다.
‘해물장조림을 하려고 전복을 사러 갔다/ 엄마와 딸이 함께 일하는 모녀상회/ 마흔 초반에 미혼인 큰딸은/ 새파란 귀밑머리 때부터 엄마를 도와/ 푸른 앞치마를 두르고 장화 해지도록/ 자갈치 젖은 바닥을 뛰어다녔다/ 해마다 제사 해물을 사던 집/ 아버지 돌아가신 후 거래처를 옮길까 해도/ 여전히 발길을 끊지 못하는 건/ 아직 그리운 거다/….’



수줍은 새색시에서 억척 아지매로
자갈치 아지매들의 갖가지 사연이 시인을 거치면 시로 탄생한다. ‘갈치 뿌리’는 자갈치시장에서 평생을 보낸 합천댁을 노래한다.
시 속에선 수줍은 새색시가 자갈치시장에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애쓰며 목소리 큰 자갈치 아지매로 변해가는 모습이 재현된다.
자갈치시장에는 먹거리도 많다. 특히 부산 앞바다에서 잡히는 싱싱한 곰장어를 재료로 하는 소금구이와 양념구이는 전국 미식가들의 발길을 끌어모은다. 곰장어 식당 골목이 있을 정도다. 자갈치시장 곳곳에 생선회 외에도 생선구이와 선짓국, 돼지껍데기볶음 등이 나그네들을 유혹한다. 자갈치 아지매들의 바지런한 손길이 정겹기만 하다.

 이길우_ <한겨레신문> 창간 작업에 참여해 34년간 취재기자로 활동했다. 한민족과 이 땅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찾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한민족의 무예, 공예, 민간신앙 등을 글과 사진을 통해 꾸준히 발굴, 소개한다. 저서로 <고수들은 건강하다>, 사진집 <신과 영혼의 몸짓 아첼레란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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