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필 CIEF 대표가 동애등에 사육장 앞에 서 있다.│이종필
길쭉하고 주름이 많은 곤충 애벌레. 그 녀석들이 꿈틀거리는 모습은 대다수 사람에게 유쾌하지 못한 기억이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지만 필자는 아직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송충이가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면 깜짝 놀라곤 한다.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곤충을 싫어하는 것 같다.
혐오·기피·박멸의 대상이었던 곤충의 애벌레가 최근 들어 식용이나 가축 사료의 원료로 주목받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간혹 곤충을 먹는 사람들이 있었다. 간이 안 좋은 옆집 아저씨는 굼벵이라 불리던 흰점박이꽃무지 애벌레 달인 물을 약으로 마셨고, 결혼을 앞둔 옆 동네 형은 단백질 덩어리라며 말벌 애벌레를 구워 먹었다. 비위가 약한 사람들은 직접 먹는 대신 이들 벌레를 잡아 닭장에 던져주곤 했다.
실제 과학적인 분석에 따르면 식용 곤충은 영양분 덩어리다. 단백질, 비타민, 불포화지방산(오메가 3, 6, 9) 등 다양한 영양소를 포함하고 있다. 번식력도 좋아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등이 식량난을 해결할 대안으로 주목하고 있다. 글로벌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2024년 세계 식용곤충 시장규모는 7억 1000만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한국 곤충 총목록(2010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곤충은 1만 4188종이다. 이들 곤충 중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식품 원료로 인정된 곤충은 백강잠(흰가루병으로 죽은 누에)·식용누에 유충(번데기)·메뚜기·갈색거저리 유충·흰점박이꽃무지 유충·아메리카왕거저리 유충·장수풍뎅이 유충·쌍별귀뚜라미 성충·수벌번데기 등 모두 9종이다.
▶사육시설에서 자라는 동애등에 모습
세상에서 가장 큰 곤충 사육·가공 공장
곤충은 사람이 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료로도 이용된다. 대표적인 곤충이 동애등에다. 파리목에 속해 파리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애벌레가 사료용 단백질원으로 활용된다. 주로 동물성 단백질을 필요로 하는 돼지나 닭 사료 또는 양식장에서 쓰인다.
동애등에는 파리목의 동애등엣과에 속하는 곤충으로 미국·인도·호주·베트남·한국 등 전 세계적으로 서식한다. 유기성 폐기물인 동물 사체, 가축의 분(糞), 음식물 쓰레기 등을 먹이로 살아가는데 일반적으로 집 안으로 침입하지 않는다. 사람을 물거나 성가시게 하지도 않는다. 국내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친환경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동애등에를 실내에서 대량 증식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돼 2011년 국가과학기술 우수성과 100선에 선정됐다.
일반인에게 친숙하지 않지만 국내에도 동애등에 애벌레를 이용해 사료용 단백질을 생산하는 기업이 있다. 전북 김제에 있는 씨아이이에프(CIEF)가 주인공이다. 대지 5만 2800m²(1만 6000평), 건물 면적 9900m²(3000평)에서 20억 마리의 동애등에 성충과 애벌레를 키우고 가공해 가축이나 물고기 사료용 단백질로 공급하고 있다. 자동화된 곤충 사육·가공 공장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다.
이종필 대표는 국가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기존에 하던 사업(승진에스티)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직접 동애등에 사육·가공 공장을 만들었다.
그는 “곤충 사업을 시작할 당시 음식물 쓰레기 처리 때문에 정부가 고민이라는 얘기를 듣고, 몇 년간 해결 방안을 찾다가 동애등에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고 판단해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종필 대표는 음식물 쓰레기로 동애등에를 키운다. 이 대표는 “처치 곤란인 음식물 쓰레기를 먹는 단백질 덩어리인 애벌레를 잘 말려 기름을 짜고 분쇄하면 훌륭한 사료로 만들 수 있다”며 “기름에 든 지방산은 가축의 면역력 증진에 좋고, 애벌레가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배출한 분변도 지렁이 분변처럼 훌륭한 거름”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적으로 음식물 쓰레기로 키운 곤충을 식품으로 팔 수 없다. 이 때문에 CIEF는 동애등에로 닭이나 돼지 사료용 단백질을 만든다. 하루에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양이 1만 5000~2만 톤인데 매립하거나 소각해야 한다. 연간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용만 2조 원에 이른다.
▶동애등에 가공공장 내부│이종필
“한국서 나오는 모든 음식물 쓰레기 처리할 것”
현재 세계적으로 실내에서 대량으로 동애등에를 증식, 사육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한 곳은 CIEF가 유일하다. CIEF는 하루 2~3톤(마른 것 기준)의 동애등에 단백질을 생산하는데, 거래처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고 생산 물량을 확대할 계획이다. CIEF는 국내 최대의 닭 공급 회사인 하림이 운영하는 사료회사 ‘천하제일’을 비롯한 사료회사들에 단백질을 공급하고 있다.
빌 게이츠가 1000만 달러를 투자해 설립한 ‘아그리프로테인’이라는 회사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동애등에 사료를 생산하지만, 실내가 아닌 실외에서 키운다.
그는 동애등에 예찬론자다. “사육 공장에서 성충의 알을 받아 부화시켜 애벌레로 키우기 때문에 공장만 지어놓으면 그 후에는 운영자금이 많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동애등에 사육은 따뜻한 사육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드는 난방비와 인건비를 제외하면 먹이도 음식물 쓰레기를 가공한 것을 사용한다.
이 대표는 “지금은 음식물 쓰레기로 만든 동애등에 먹이를 사오지만 처치 곤란인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해주니 나중에는 정부지원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사료를 만들 때 쓰이는 동물성 단백질과 옥수수·콩 등 식물성 단백질을 대체할 수 있어 미래 성장성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국 시·군·구에 동애등에 사육·가공 공장을 지어 한국에서 나오는 모든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고, 장기적으로는 해외에도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지환_ <조선비즈> 농업 전문기자.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전자신문> 등에서 기자로 산업 분야를 담당했다. 최근 농업이 유전공학, 정보통신, 기계공학, 환경공학 등의 기술과 밀접하다는 점을 깨닫고 농업 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