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누리집
K-팝뿐 아니라 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 새로운 한류의 흐름이 중요해지고, 또 그 과정에서 창작자, 콘텐츠, 1인 창작자 등의 말이 일상적으로 쓰이는 요즘이다. 이에 대해 여러 차례 강의도 하고 워크숍이나 상담도 하면서 나름대로 창작자가 성장하는 과정과 단계에 대해 정리해보는 중인데, 이들은 필연적으로 3단계를 거치며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재능’의 단계가 있다. 쉽게 말해 남에게 ‘칭찬받는’ 단계다. 이에 대해선 보통 유년기의 경험을 떠올리겠지만, 사실 나이와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내가 뭘 했는데 주변에서 잘한다는 얘기를 듣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게 동기부여가 되어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계속 하는 상태. 어릴 때 혹은 나이를 먹어서도 ‘나 재능 있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단계다. 그 과정을 통해 실력이 늘고, 나름의 노하우도 생기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자원’의 단계가 있다. 재능의 단계에서 어느 순간, 이걸 자기 진로로 생각하게 된다. 글을 쓴다면 ‘글쓰기로 먹고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혹은 실제로 돈을 받고 글을 쓰는 경험을 하는 단계다. 음악가라면 공연을 하거나 음원을 발표하면서 적게나마 수익을 경험한다. 디자인, 그림, 심지어 누리집을 만들거나 코딩을 하거나 모두 마찬가지다.
이때 흐름은 두 개의 방향으로 나뉜다. 하나는 제도교육을 통해 전문가 과정을 밟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곧장 현업으로 뛰어들어 전문가(프로페셔널, 돈 받고 일하기)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이 단계에서 전자가 많았다. 직무교육이나 제도교육 내에서 이런 기술을 습득하고, 필요에 따라 수료증이나 자격증으로 자신의 업무 역량을 증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방탄소년단 인스타그램
기술 발전 속도 못 따라가는 제도권
하지만 뉴미디어 환경에서는 후자, 그러니까 곧장 현장에 투입되며 경험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아진다. 기술의 발전 속도를 제도권이 따라가지 못할 때 벌어지는 일이다. 음악으로 치면, 최근 유튜브나 사운드 클라우드,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바로 ‘데뷔’하는 경우다. 한 명의 창작자, 예술가로 데뷔하는 과정 자체가 완전히 달라지는 상황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다시 말해 여기엔 새로운 기술과 환경이 중요하게 개입한다. ‘기술의 민주화’라고 할 만한 상황이 벌어지고, 이게 혁신으로 여겨진다.
개인의 자원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네트워크다. 소위 ‘인맥’이지만, 그 부정적인 느낌과 달리 좀 더 ‘동료’에 가까운 개념이다. 쉽게 말해, 이것저것 같이 하면서 어울리던 친구들이 어느새 각자 자기 분야에서 적절한 역할을 하면서 생기는 관계다. 그러는 동안 친구들이 어느 순간 업계의 주류가 되기도 한다. 돈도 없고 경험도 없던 시절을 지나, 대략 10년 후에 당사자들은 ‘우리는 주변인이었는데 이제는 주류네’라는 말도 하게 된다. 이렇게 경력, 인맥, 경험 등이 생기는 때가 자원의 단계다. 이 자원을 계속 활용하면서 일을 더 하고 결과적으로 경력의 성장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산’의 단계다. 자원의 단계에서 순환구조가 만들어지면 ‘자산’으로 넘어간다고 본다. 다시 말해 ‘재능’을 계속 갈고닦아서 먹고사는 방식이 아니라, 재능과 자원이 순환하면서 안정적·지속적으로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여기에는 경제가치도 있고, 부가가치도 포함된다. 생산적인 가치를 창출하면서 지속 가능성이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자산의 단계’다.
그런데 보통의 콘텐츠 창작자(그러니까 디자인, 영상, 편집, 문서 영역에 포함되는 생산자들)는 대체로 무형의 기술자다. 이들이 만드는 것은 제품·상품이 아니라 경험이다. 높은 품질의 경험을 제공하면서 부가가치를 얻는 것이 바로 창작자의 시장가치다. 재능과 자원의 단계에서는 혼자서도 가능하지만, 아무래도 혼자서 자산의 단계로 구체화하기는 어렵다.
이때 필요한 것이 미디어와 플랫폼이다. 21세기의 디지털 환경은 독점적 플랫폼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그리고 이 플랫폼 중심의 산업구조는 기존의 다른 영역들을 통합하거나 연결한다. 플랫폼은 그 내부에서 경제적인 순환구조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중요하다. 다시 말해 생산자, 사용자, 광고주가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각자 이득을 취하는 순환구조가 플랫폼의 전제 조건이다. 앞으로 많은 분야가 이렇게 바뀔 것이다.
일단 자원을 재정의해 보자.
1) 창작자가 가진 대부분의 가치는 명성 자본이다. ‘그 사람 일 잘하더라’가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진다. 2) 창작(크리에이티브)은 사실상 부가가치 사업이다. 3) 그래서 창작을 기반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이것들을 하나의 연결구조로 잇는 게 중요하다.
▶블랙핑크 유튜브 영상
일과 부가가치 연결고리 만들어야
(재능 기반의) 일과 (명성 기반의) 부가가치를 연결해 계속 순환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가능하고 또한 자신의 역량에 유리한 플랫폼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유튜브가 뜨니까 유튜브를 하자는 것보다는 이런 세부적인 전략들이 더 중요한 이유다. 앞으로 산업환경은, 바로 이렇게 개인 또는 소수 팀으로 일하려는 사람들에게 좀 더 유리하게 바뀔 수 있다. 그러므로 이건 전략의 문제다. 특히 코로나19 세계적 유행 이후의 삶은 노동환경뿐 아니라 일상과 생산, 소비 영역 전반에서 기존과 완전히 다른 뉴노멀 시대로 진입하는데, 이 과정에서 기존 가치와 새로운 가치가 교차하면서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이 ‘충돌’의 시간은 그러나 많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플랫폼이 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지만, 재능을 기반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대체로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플랫폼 환경이 다수의 보통 사람을 창작자로 전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누구나 예술가가 되고, 창작자가 되는 세상이 바로 지금이다.
차우진_ 음악평론가. 미디어 환경과 문화 수용자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청춘의 사운드> <대중음악의 이해> <아이돌: H.O.T.부터 소녀시대까지…> <한국의 인디 레이블> 등의 책을 썼고, 유료 콘텐츠 플랫폼 ‘퍼블리’에서 <음악 산업, 판이 달라진다> 리포트를 발행했다. 현재는 ‘스페이스 오디티’라는 스타트업에서 팬 문화, 콘텐츠, 미디어의 연결 구조를 고민 중이다.